단순한 옆나라 이상으로 꽤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곳
나는 스스로를 십덕(오+오타쿠)이라 일컬을 정도로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 있는 사람이다.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할 적에, 그러니까 잠들기 전에 애니메이션을 한 편이라도 보지 않으면 서운한 사람이 어느 순간 되어버렸다고. 꼬맹이 시절에는 TV 앞에 꼭 붙어서 애니메이션만을 틀어주던 채널에 한창 빠져있기는 했었지만, 다 큰 어른이 되어서 이렇게 애니메이션을 꾸준히 보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일본'이라는 나라와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한국어판 더빙으로 무수히 많은 애니메이션과 마주했었던 그 어린 날이다.
하루 일과 대부분을 TV에 쏟아부었던 어린 시절이었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할 즈음부터는 TV 애니메이션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졌었다. 중학교에 들어가고부터는 나름대로 학교에 묶여있는 시간이 늘어나기도 했고, 친구들과 함께 컴퓨터 게임을 시작하며 재미를 붙여갔던 탓도 있었다. 일본만화인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소년 만화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던 2010년대에 이르러서도 그쪽으로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 만화들의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는 드래곤볼을 이미 만화책으로 훑어보기도 했었으나 아주 심취했던 정도는 아니었다고. 당대 중고등학생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조금 못한 정도의 관심을 기울였을 뿐이었다. 우연히 TV에 방영되곤 하는 애니메이션을 잠깐잠깐씩 들여다봤을 뿐 지금처럼 푹 빠진 정도는 아니었다고. 어디까지나 내가 일본 애니메이션에 본격적으로 푹 빠져들게 된 것은 군대에서부터였다.
숱한 어려움들을 헤쳐나가야 했던 신임하사 시절을 포함해 경력을 쌓아나가도 결코 자유와는 근접하지 못했던 나의 4년 간의 군생활 동안, 일본의 소년 만화 애니메이션은 언제나 나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진정한 자유의 생김새가 어떤 것인지 잊지 않게 했다. 힘들고 고된 순간마다, 루피(원피스의 주인공)의 굴하지 않는 항해를 보면서, 나루토(나루토의 주인공)가 가진 정열적인 불의 의지를 가슴으로 느끼며, 인생에 열정을 다 바치는 삶을 지향하겠노라고 늘 다짐해 나갈 수 있었다. 때로는 진심을 다해 눈물을 흘렸고, 때로는 뛸 듯이 기뻐하며 그들과의 동고동락을 이어왔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바탕으로 나름대로의 향수도 느낄 수 있었고, 고난에 처해도 굴하지 않는 각각의 서사 자체가 내 삶과 맞닿아있어서 더없이 그런 애니메이션들에 공감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그때의 습관이 이어져 지금까지도 여전히 나는 한 편의 소년 만화 속에 살고 있는 중이다. 고난과 고통이 끊이지 않는 인생 속에서 나에게 애니메이션 한 편은 황량한 사막 가운데 자리 잡은 하나의 오아시스와도 같다. 잠시 쉬어가면서 목도 축일 수 있는 적절한 안식처 역할을, 애니메이션은 톡톡이 해주고 있다.
그렇게 일차적으로, 일본은 나에게 고마운 나라가 되어주었다. 그들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나의 힘겨웠던 시기를 이겨낼 힘을 나에게 준 셈이었으니 말이다. 인생은 당장에 닥쳐 있는 시련들만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을 돌파해 나가며 성장해 나가는 하나의 서사를 써나가는 것임을, 나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애니메이션 다음으로 내가 빠져들었던 것은 잔잔하고도 가슴 시린 로맨스 서사를 지닌 일본의 영화와 드라마였다.
어린 시절부터 보고 자랐던 한국의 로맨스 드라마나 영화가 지나치게 여성향적인 신데렐라 스토리가 주를 이루었던 탓에, 로맨스의 이상적인 모습을 남성이 여성에게 미치도록 헌신하는 장면들에서 찾곤 했었던 나였다. 사랑에 본격적으로 헤매기 시작했던 20대 초반에 들어서도 그런 생각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졌었다고(매체의 무서움은 바로 이런 점에 있다). 여성을 사랑받는 대상으로 한정하고, 그들에 맞춰 배려해 주면서 그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아름다운 사랑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랬기 때문에, 한국과는 대조적인 분위기를 지닌 일본 드라마나 영화는 나에게 하나의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더랬다. 정확히 한국의 것들과는 반대지점에 서서, 헌신하는 여성의 서사를 통해 남성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켜 주는 작품들이 일본에는 참 많았다. <내 첫사랑을 너에게 바친다>라든가, <지금 만나러 갑니다>라든가. 한국인 남성들이 일본 여성들의 이미지를 헌신적이라고 생각하게 한 데에 일본의 영화들이 큰 공헌을 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 외에 굳이 그런 서사가 아니더라도, 잔잔하면서도 가슴을 사무치도록 울리는 일본 특유의 감성을 사랑해 왔다.
여러 일본 영화들을 즐겨보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일본의 배우들도(특히 여배우들) 생겨났고, 그 배우들이 출연하는 드라마에도 자연히 눈길을 돌리게 됐다. 그런 식으로 정말 물 흐르듯 나는 일본 문화에 스며들었고, 일본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고 싶다는 욕구가 빳빳이 고개를 쳐들게 되었다고. 마침내, 나는 생각했다.
"일본에서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
당연히 살아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일본에 눌러앉아 평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은 결코 아니었고, 그렇다고 한국이라는 나라가 일본에 비해 싫은 것도 아니었다. 오직 일본 문화를 온전히 느껴보기 위해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서 매력을 느낀 것도 있었지만,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은은하면서도 소박하게 꾸며진 일본 시골의 풍경에 한껏 매료되었다는 점도 있었다. 살면서 그렇게까지 좋아할 수 있는 분위기를 찾아내는 기쁨은 좀처럼 흔치 않을 것만 같았고, 시간이 지나 돌이켜 봐도 그때 그 생각이 어느 정도는 들어맞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에 가서 살아본 선택은 내가 여태껏 해왔던 참 잘한 선택들 가운데 하나로 남아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제2외국어라는 이름으로 일본어를 접해왔던 나였기에, 언어 정도는 배우면 금방 익힐 수 있을 것이란 자신도 있었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회화였기 때문에, 많은 미디어들을 접했던 나에게는 꽤 유리한 부분도 있을 것이라고, 내심 생각했더랬다. 전역을 반년 정도 앞둔 시점부터, 자전거를 틈틈이 타는 와중에 그렇게 일본어 공부도 꾸준히 지속해 나갔다.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드라마를 볼 때에도 최대한 자막을 배제한 상태에서 눈과 귀로 담으려 노력했다. 그렇게 배우면 배울수록 일본어의 발음이나 억양들까지도 사랑하게 되었다고. 국어 특유의 딱딱한 느낌과 때때로 뚝- 하고 끊겨버리는 특성에 비해, 일본어는 받침이 없어 처음부터 끝까지 부드럽게 말하는 느낌을 주곤 했다. 뭐든지 결과보다는 과정에서 재미를 찾는 나에게는 더없이 즐거운 준비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게 일본 생활을 꿈에 그리며 계획을 세워나가던 나는, 자전거 일주를 마친 뒤 일본 워킹홀리데이 비자 준비에 박차를 가했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수월하게 비자를 얻어낼 수 있었다. 전역한 지 네 달이 지난 시점에서, 그렇게 물 흐르듯 나는 일본 땅을 무사히 밟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