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워킹 홀리데이

진정한 의미의 홀리데이라고는 할 수 없었던

by 봉필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가지고 일본 땅을 밟기 이전까지, 인생 통틀어 단 한 번도 해외에 가 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 해외여행은 사치 중의 사치로 여겨질 만큼, 변변찮은 나의 삶 속에서 누릴 만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컸었다. 그럼에도, 세계 일주라는 과감한 꿈 정도는 품고 살았던 시절이었다. 그것이 얼마만큼의 돈을 필요로 하는지, 혹은 어떤 종류의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까지는 전혀 헤아리거나 재지도 않은 상태로 막연하게 '버킷리스트'라는 무책임한 목록을 만들어 아무렇게나 집어넣어 놓고 꿈을 꾸던 시기. 누구에게나 그런 시기가 한 번쯤은 있지 않을까. 아무런 생각 없이 장래희망에 대통령이나 유명한 팝가수 같은 것들을 적어 내려가는 그런 시기 말이다. 그런 순수한 마음까지도 사치라고 손가락질을 한다면, 세상은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곳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다.


처음 발을 디딘 일본, 그러니까 오사카의 첫인상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곳이 한국인지 일본인지 모를 정도로 눈에 익은 풍경이었다. 찬찬히 뜯어봐야만 서서히 눈에 들어오는 한자 간판들과 낯선 언어들로 가득 도배된 주변의 모습들이, 그곳이 일본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려주는 느낌이었다. 특히 공항이나 대도심의 한복판은 한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번화가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기도 했다. 내가 신세를 지게 된 어학교의 숙소가 위치한 골목으로 들어서기 전까지도 일본에 왔다는 사실이 좀처럼 실감 나지 않았더랬다. 골목을 돌고 돌아 차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곳에 접어들면서부터 드라마에서인지 영화에서인지 본듯한 일본 특유의 풍경이 펼쳐졌다. 그제야, 일본에 왔다는 사실을 한걸음 한걸음마다 느낄 수가 있었다고.


숙소가 2인 1실이라는 말에 조금은 걱정했지만, 다행히 룸메이트는 조용한 성격의 동갑내기 한국인이었다. 나중에 약간의 불화로 숙소를 옮기는 사태까지 가기는 했지만,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 정도 불화를 일으킬 만큼 룸메이트가 모난 성격은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단순히 내가 상황적으로 힘들어서, 사람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것이겠지. 그도 그럴만했던 것이, 나의 초기 일본 적응기는 상당히 만만치 않은 것이었으니 말이다.


워킹 홀리데이 준비 당시에 약 200만 원 정도의 잔고가 계좌에 남아있었으나, 실제로 어학교 등록 및 기숙사 비용을 지불하고 나니, 잔고는 약 50만 원 정도의 금액으로 심각하게 줄어 있었다. 곧바로 아르바이트를 구해서 일을 해내면 되지 않겠냐는 아주 만만한 생각으로 당당히 그 50만 원 남짓한 돈을 쥔 채 오사카 땅에 발을 들였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봐도 정말 대책 없는 놈이 분명했다. 수중에 남은 돈이야 어찌 되었든, 태어나 처음으로 간 해외여행이라는 생각에 처음 일본에 도착했던 이틀에서 사흘간은 룸메이트와 오사카 관광도 즐겼다고. 본격적으로 일자리를 구하기 시작했던 것은 학교에 다니고부터의 일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면, 편의점 한편에 비치된 '타운 워크'라는 아르바이트 구인 책자가 새로 나왔는지 확인하고, 그것을 챙겨 귀가하곤 했었다. 책자 하나당 꼬박 반나절을 들여가며 처음 페이지부터 끝 페이지까지 급여와 일하는 시간들을 체크해 가면서 내가 일할 수 있을 만한 곳들을 추려내야 했다. 회화적인 측면에서 확실히 고려해야만 했던 점들이 많았다. 지난날들 덕분에 일본어를 듣는 쪽은 나름 익숙했기 때문에 보디랭귀지나 분위기를 파악하며 단기간 내에 습득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이 있었으나, 말하고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는 조금 더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일본 땅에 발을 딛고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처음부터 서빙 업무와 같은 것들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었다. 외국인도 환영한다 문구가 적혀있는 가게들을 추린 뒤, 언어적인 어려움이 느껴질 만한 일들은 하나하나 소거해 나갔다. 꽤나 시간을 들여 학교 공부를 병행하는 와중에도 하루에 한 군데 정도씩은 연락을 돌렸더랬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전화를 하게 된 곳이 '카니도라쿠'라는 게요리전문점이었다. 오사카 도톤보리 한가운데에 위치한 이곳 본점은, 커다란 게가 집게발을 까딱거리는 특이한 간판을 하고 있어 도톤보리 중심부에서도 특히나 눈에 띄는 가게 중 한 곳이다. 아마 오사카에 가본 사람이라면, 어떤 음식점인지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하이, 하이, 와카리마시타!"

(네, 네, 알겠습니다!)


워킹 홀리데이 카페글에서 간단하게 문자로 지원하는 방법보다는 전화 통화로 지원하는 것을 추천한다기에, 어버버 하는 수준의 일본어 실력은 개의치 않고 냅다 번호를 눌러댔던 나였다. 어차피 부딪쳐야 할 관문이고, 망설이다간 아르바이트 자리가 없어져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미 한두 군데에서 퇴짜를 맞은 뒤라, 이판사판의 마인드가 확실히 장착되어 있었다고. 바이토-노-켄데 렌라쿠시마시타-(아르바이트 건으로 연락드렸습니다). 인생은 운칠기삼이다. 회화 실력이 부족하다면, 기세로 밀고 나가면 된다. 아~ 소오데시타카(아~ 그렇습니까)로 시작한 직원의 목소리는 희망하는 보직에 대해서 나에게 몇 가지 선택을 요구했다. 조리바, ㅇㅇ바, 아라이바... 조리바는 느낌상 요리를 하는 일인 듯했고, 중간에 말한 단어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 일단 요리는 왠지 전문성이 없다고 쫓겨날 것만 같아, 선명하게 발음은 들었지만 뜻을 알지 못하는 아라이바를 자신 있게 외쳤다. 아라이바데! 오네가이시마스!(아라이바로 부탁드립니다). 전화기 너머 직원은 약간의 웃음소리를 흘리더니 곧바로 면접 일자를 알려주었다.


전화를 끊은 뒤, 곧바로 '아라이바'를 검색해 보았다. 아라이바는, 설거지칸을 뜻하는 단어였다. 설거지라... 나 지금 설거지 알바 지원하겠다고 한 거야? 생각보다 폼이 안 나는 아르바이트를 지원했다는 생각에 잠시 침울해졌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어차피, 언어적으로는 충분치 않으니 이런 궂은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나에게 좋을지도 모른다고. 오히려 잘된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에게 앞으로 닥쳐올 재앙들에 대해서는 까마득하게 몰랐었다. 하긴, 알 턱이 없다. 인생은 언제나 소리 소문 없이 우리를 고난의 낭떠러지로 떠밀곤 한다.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그러나 부지런히 조금씩, 조금씩...


다음날, 혹은 다다음날엔가 도톤보리 중심부에 있는 '카니도라쿠' 본점에 면접을 보러 갔다. 가게에 들어서자, 지배인인지 점장인지(아르바이트가 끝날 때까지도 알아내지 못했다) 상당히 인심이 좋아 보이는 얼굴을 한 50대의 중년 남성이 나를 맞아 주었다. 내가 외국인인 것을 감안한 면접 질문들이어서 그런지, 전화 통화로 들을 때보다 일본어를 듣는 것이 훨씬 수월했었다고. 나는 일본인과 대화를 원활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들떠서 아는 단어를 총동원해 가며 자신 있게 큰 소리로 답변을 뱉어댔다.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은 그 50대 일본인도 나를 좋게 봤는지 연신 웃으며 질문을 이어갔다. 마지막 질문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물음에 나는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야루키만만데스! 요로시쿠 오네가이시마스!

(의욕만땅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틀 안으로 문자로 통보가 갈 것이라는 말을 끝으로, 지배인인지 점장인지 모를 50대 남자와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몸을 돌려 가게를 나왔다. 그러면서 왠지 이 가게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어디서 나온 확신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그저 그 순간 나에게는 하나의 생각만이 떠갈 뿐이었다. 설거지, 잘할 수 있으려나.


이틀 뒤 저녁에 아르바이트 합격을 전하는 문자가 왔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일을 하러 나오라는 문자였다. 감격스러웠다. 일본에 입국한 지 단 10일 만에 일자리를 구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러기 쉽지 않았던 것 같은데? 상당히 순조로운 나날들이 펼쳐질 것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현실은 역시나 그렇게 녹록지는 않았다. 인생사 새옹지마다. 좋은 일이 그렇게 쉽게, 그것도 연이어 찾아오지는 않는다.


카니도라쿠 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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