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국토 종주길에 오르다
전역하기 반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자전거도 구비하고, 쉬는 날을 활용해 틈이 날 때마다 자전거를 타며 체력을 길러나갔다. 쉬는 날에 부대 근처 자전거길을 따라 쉴 새 없이 달리기도 하고, 본가에 자전거를 가지고 가 동네 자전거길을 누비고 다니기도 했었다. 가끔씩 휴가를 내어 실제 국토종주길 코스인 아라뱃길 쪽 한강 자전거 도로를 타보기도 하면서 만반의 준비를 해나갔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훈련단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나아졌다는 확신과 자신감이 들 때쯤, 나는 2016년 5월 31일 전역일을 맞이했다. 가족 여행과 친구들과의 미뤄 둔 술자리들을 차례차례 넘긴 뒤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7월이었다. 나의 자전거 여행은 여름이 바짝 다가와 있을 그 무렵, 시작되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강 주변 길이 자전거 길로 깔끔하게 닦여진 덕분에 나는 수월하게 전국일주에 나설 수 있었다. 처음에는 큰 강줄기를 따라 김포에서부터 부산까지 이어지는 '국토종주' 코스를 선택했다. 하루에 100km씩 달려 일주일 안에 완주할 계획을 세웠고, 정확히 6일째 되는 날 완주를 할 수 있었다. 이 길을 완주했다던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5일 정도면 완주가 가능하다고 했지만, 자전거 초보인 나는 하루가 더 걸린 셈이었다. 이틀째 되던 날 춘천에서 길을 헤맸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너무 여유를 부린 탓이었을까.
한강은 흔히 생각해 왔었던 것보다 한반도를 훨씬 길게 걸쳐 있는 강이었다. 서울과 경기도를 포함할 뿐만 아니라, 강원도에서 발원한 이 하천은 무려 충청북도까지 아주 길게 뻗어있었다. 가히 그 유래에 맞게 '큰 강'이라는 이름과 어울리는 수준의 깊고 넓음인 셈이다. 말이 국토종주 길이었지, 사실상 절반 이상은 한강길만을 달려갔다. 한강에 이어 영강, 그리고 낙동강, 이렇게 세 강 줄기를 따라 자전거를 달리면 김포에서 부산까지의 종주가 완료된다. 강 세 개 정도의 길이를 종주하는 것으로 우리나라를 크게 가로질러 끝에서 끝까지 달릴 수 있다니, 우리나라가 참 좁은 땅덩어리이기는 하구나 하는 생각도 어렴풋이 스쳤다.
하루에 100km씩을 자전거로 달리는 것은, 웬만한 자전거 동호인들에게는 코웃음거리도 안 되는 것이겠지만, 당시 나에게는 불타는 허벅지로 지옥길을 누비는 것과 같았다. 힘차게 종주를 떠난 첫날부터 허벅지에서 말 못 할 고통이 따랐고, 종아리 근육은 잠시라도 긴장을 늦추면 쥐가 나버릴 듯이 움찔거렸다. 극심한 허리 통증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종주 간 얻은 엉덩이 땀띠로는 한 달 넘게 고생을 해야 했다. 사서 고생이라는 말은, 그때의 나에게 아주 딱 들어맞는 말이었다.
강줄기를 따라 꽤나 험준한 고개들을 넘기를 수 차례, 마침내 부산에 도착했을 때에는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고통의 눈물이었는지, 감격의 눈물이었는지는 아직까지도 알 수가 없다. 여기저기 온몸이 성한 데가 없이 만신창이였으니, 감정을 제대로 기억할 리 만무하다. 마지막 날 오후, 국토종주 길의 마지막 지점에 당시 화물차 운전을 하던 아버지가 마중 나와 있었다. 내가 종주를 마무리하는 날에 맞춰, 부산까지 일거리를 잡고 내려온 것이다. 내 몸과 마찬가지로 만신창이가 된 자전거를 아버지 포터 화물칸에 싣고, 근처에 있던 큰아버지 집으로 향했다. 아버지와 큰아버지 그리고 나는 적당히 술을 걸치며 담소를 나누었다. 아버지는 큰아버지 앞에서 나를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며 추켜 세웠다. 김포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내려왔다니까요, 이 녀석이. 수줍게 웃으며 별 거 아니라며 겸손을 떨었지만, 입가에 뿌듯함을 머금은 미소는 가시지 않았다. 한 명의 아들로서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어엿한 남자로서 인정을 받는다는 뜻이기에 단순한 뿌듯함 이상의 감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김포에서 부산까지의 종주를 마치고, 10일 정도의 휴식 기간을 가진 뒤 곧바로 안동댐부터 시작하는 '4대강 종주 코스'를 달렸다. 4대강 종주 코스는 한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 이렇게 네 개의 강길을 일컫는 코스다. 처음 종주했던 국토종주길과 겹치는 부분이 어느 정도 있었고, 두 번째로 오른 종주길이었기에 처음 멋 모르고 덤볐을 때보다 훨씬 수월하게 주행해 나갈 수 있었다. 내가 국토종주를 하고 있다는 소식에 친구 한 놈이 이 4대강 종주길을 같이 달리자 하여 함께 안동댐에서부터 출발을 했지만, 녀석은 다리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사흘째 되던 날 절뚝거리며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어차피 혼자인 인생이다, 그런 생각으로 남은 코스를 묵묵히 완주해 나갔다. 이미 완주했던 한강길이 있었기에 천천히 달려 나가 두 번째 종주 역시 6일 만에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총 2주에 걸친 나의 자전거 종주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종주길 끝에 무언가 있을 것이라는 거창한 생각에서 달렸던 것이 아니다. 단지 4년 동안 지나치게 얽매여 있었던 내 몸에 자유의 바람을 불어넣어 주고 싶었달까. 그저 미친 듯이, 아무런 생각 없이 페달만을 밟아나가며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주변의 경관들을 온몸으로 즐기고 싶었다. 깨끗하게 뻗어있는 강, 우뚝 솟아있는 산봉우리들, 때때로 마주칠 수 있었던 고라니들, 그리고 내가 달리는 동안 지나쳤던, 나와 같은 길을 달렸던 사람들. 커다란 목적도, 구체적인 목표도 없었지만, 달렸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얻어갈 것이 많았다고 할 만한 여행이었다. 내가 이 땅에 자유로이 살아 숨 쉰다는 사실과 나에게 여전히 어딘가로 뻗어갈 열정과 체력이 있다는 사실은, 전역 이후에 내가 무엇을 하든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과 어느 정도의 확신을 나에게 안겨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자전거 여행은 처음부터 실패할 리가 없었던 대성공의 여정이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