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 진정한 자유를 향해

군생활을 마무리하며

by 봉필


나는 그렇게 해병대 중사로 전역할 수 있었다. 내가 지나치게 뛰어났다거나, 남들보다 더 괜찮은 성과를 이뤄서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성격상 업무를 하는 데에 있어서 대충 하지 못했고, 어린 나이에 남들보다 부족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남들에 비해 조금 더 열심히 맡은 바에 충실했을 뿐이었다. 그런 와중에 꽤 괜찮은 기회들이 따라와 당시로서는 쉽지 않았던 진급의 기회를 거머쥘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전차대대에서 2년 반, 1 연대에서 1년 반 정도의 생활을 끝으로 나의 4년간 군생활은 마무리되었다. 시원하지도, 섭섭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렇게 될 일이었다는 느낌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전반적으로 쉽지 않았던 4년간의 여정이었다. 체력적 한계에 부딪혔던 훈련단 시절을 거쳐 사회적인 위치에서의 한계를 경험해야만 했던 실무 부대에서의 생활, 그리고 그 속에서 복잡하게 얽혀만 갔던 인간관계들. 그로부터 비롯된 많은 문제와 고난들은 생각지도 못하게 나의 심신을 고통스럽게 옥죄였다. 괜찮은 판단과 선택들을 해내기 위해 늘 고심했고, 나름대로 실수를 최소화해 나가며, 나름대로, 적응할 수 있었던 나날들이었다. 어린 시절 숱한 전학의 경험들로부터 얻어냈던, 낯선 환경에 곧잘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은 그런 상황에서 나에게 생각지도 못할 큰 힘이 되어 주었을 것이란 생각이다. 어떤 방황의 길이 눈앞에 펼쳐진다 해도 헤쳐나갈 수 있는 용기는, 그렇게 점층적으로 쌓여가며 더욱더 견고해져 나갔다.


정말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군 생활이라는 고단한 방황길 가운데서 마주했고, 나는 운이 좋게도 몇몇의 사람들과 지금까지도 그 인연을 이어올 수 있었다. 신임 하사 시절, 험악한 인상에 굳센 카리스마로 무섭게만 느껴졌던 한 선배와는 쉬는 주말에 자전거를 타는 추억을 쌓으며 친해져, 서로의 전역 이후에도 형동생 사이로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같은 병과로 후반기 교육 때 친해져 12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술친구로 지내 온 선배도 있다. 1년 반이라는 기간 동안 병사와 간부 사이로 지냈지만, 가끔씩 모여 군생활의 회포를 풀곤 하는 보급병 출신의 친구와 형들도 있다.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느낄 수 있었던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서로 나누었던 터라, 사회에 나간 뒤에 서로 다른 모습들로 살아갈지언정 언제나 다시 만날 때면 그때의 감정들을 쉽게 되살려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그때의 내 모습을 다양하게 기억해 주는, 추억을 나누며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오직 군대라는 폐쇄적인 환경이었기에 개성도, 직장도, 성격도 달리하는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동고동락에서 '고(苦)'라는 글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80퍼센트 이상은 되지 않을까 싶은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여 본다.


군대 생활은 이성(異姓)에 대한 관심이라고 할 만한 것이 나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일깨워 주기도 했다. 철저하게 욕구를 억눌러야만 하는 긴 생활들 속에서 마침내 사랑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를 안겨주었고, 덕분에 몇 차례의 연애를 경험할 수 있었다. 많이 서투르고 거칠었지만 이성을 대하는 방법이라든지, 앞으로의 인생에서 어떤 식으로 사랑을 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나는 많은 것들을 배워나갔더랬다. 당시의 서투른 사랑에 혹여 상처를 입었을 지난 연인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지는 듯하지만, 그때의 나는, 사랑을 알기엔 너무나 어렸었다는 같잖은 변명을 덧붙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부디, 나를 잊고 잘 살아가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얼떨결에(이 단어만큼 적절한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열아홉이라는 나이에 부사관으로 입대해 4년이라는 세월을 버텨냈고, 나는 그렇게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무거운 중압감을 느껴가며 세상에 대해 알아나갔다. 마침내 전역이라는 순간을 맞이했을 때에는, 사회에 통념상으로 내세울 만한 커리어를 가지지 못한 상태이기는 했지만, 숱한 경험들을 온몸과 기억들에 새기어 입대 전과는 확연히 다른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인생은 하나의 마라톤과 같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경험을 통해 깨달은 자유와 책임의 의미,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메커니즘 등을 군대가 아닌 바깥세상에도 적용해 보기 위한 첫걸음 앞에 서게 된 시기였다. 일정하게 커리큘럼으로 정해져 있는 군대라는 특수한 사회에 발을 들일 때와는 사뭇 또 다른 떨림이 다가왔었다. 온몸으로 부딪쳐 나가며, 때로는 깨어지고 때로는 환희에 차 웃으며, 그렇게 홀로 돌파하고 개척해 나가야 하는 삶이 앞으로 펼쳐질 것이라는 사실은 한 남자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기 충분한 것이었다.


소년은 그렇게 어른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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