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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필 Nov 02. 2024

전역 이후의 삶 그려 나가기

여전히 구체적이지는 않았던


시간이 갈수록 꽤 여유로운 생활들을 할 수 있었다. 달이 갈수록, 해가 갈수록 나는 업무에 더 능숙해졌고, 선배들로 인정을 받음과 동시에 병사들로부터도 신임을 얻을 수 있었다. 확실히 군대에서는 짬(군경력을 나타내는 은어)만큼이나 명확하고 강력한 것이 없는 듯했다. 갈수록 더 무거운 책임도 짊어지게 되었고 그만큼 통장 잔고도 두둑이 늘어갔다. 그러는 동안 몇 번의 사랑 역시 지나갔다. 어쨌거나 나는 갇혀 있는 동안 웅크릴 수밖에 없었던 몸을 일으킬 준비를 해야만 했다. 아주 깊은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시원하게 켜기 위해서는 나름의 준비가 필요한 법이다. 


총 4년간의 군생활 가운데 절반 이상을 전차대대에서 보낸 뒤에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갈 기회가 생겼다. 고가 점수를 곧잘 주며 잘 대해주었던 주임원사는 나에게 남으라 하였지만, 나는 열악한 당시의 부대보다 더 나은 근무 환경의 군대를 경험해 보고 싶었다. 사단 내에서도 다른 부대에 비해 평이 좋지 못했던 전차대대에서 내 군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마침 1 연대 본부에 말썽을 부리는 보급하사가 있어 연대 보급담당관님께서 다른 인원을 원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나는 곧바로 부대 보급담당관을 통해 1 연대로 전출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야지."


생각보다 아주 간단히 나는 전차대대를 벗어날 수 있었다. 

연대는 확실히 대대급보다 훨씬 더 여유로웠고, 살 만한 곳이었다(그렇다고 전차대대가 못 살 곳이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각 부서 담당관들은 모두 웃으며 지냈고, 좀처럼 병사들을 나무라는 법이 없었다. '어차피 책임은 간부가 지는 것이고, 병사는 간부의 업무를 도와주는 친구들이니 괜히 분란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 내가 군 생활을 처음 시작하면서부터 느꼈던 당연한 감정들을 거의 모든 간부들이 생각하면서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그렇지 못했던 전차대대의 생활을 막 벗어난 참이어서, 꽤나 이상적인 광경들로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의 전역에 대한 마음을 돌리기에 한참은 역부족이었지만 말이다. 


나는 천천히 전역 이후의 삶에 대해 그려보기 시작했다. 바쁜 군생활 와중에도 남는 시간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생각을 이어가기는 했었다. 아무런 얽매임도 없는 상태에서 자유로이 전국을 누비고 싶단 생각에 자전거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고, 나의 여가 시간을 훌륭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해준 일본 애니메이션, 그리고 일본 드라마와 영화에 매료되어 일본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키워나갔다. 그 뒤의 일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아니, 생각해 볼 필요를 느끼지 못했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일단은 어디론가 떠난 뒤에, 더 넓은 세상을 마주한 뒤에 생각해 봐도 늦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군입대 전까지만 해도 들끓었던 글에 대한 사랑과 음악에 대한 열정은 한풀 꺾인 듯했다. 일단은 자유를 만끽하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해답인 듯이 하루하루 나아갔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중고등학교 친구들이 군대에 있거나 막 전역하고 복학을 했던 시기라, 이후의 인생길에 대해서 크게 조급하지 않았던 심정도 있었다. 여전히 방황하는 것이 나의 숙제인 것처럼 느껴졌고, 인생에 있어서 또렷한 무언가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문득 대한민국의 이럴 수밖에 없는 현실에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내가 성인이 되었을 당시에는 거의 모든 또래 아이들이 필수적으로 대학을 가야 한다는 생각에 갇혀 있었다. 그렇게 정식 의무 교육은 중학교까지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대학교까지가 '교육 과정'이라는 명목하에 우리들을 모두 한 길로만 나아가게 했다. 자연히, 앞으로의 삶에 대한 제대로 된 청사진이나 인생의 책임으로부터 더 많은 유예를 정당하게 허락받은 셈이다. 남자의 경우에는 군대 기간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20대 중반은 넘어서야 인생이라는 방황길에 대한 전반적인 걱정들을 떠안으며 현실에 대해 깨닫게 되는 것이다. 어딘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되었다. 


방황을 자처한 나야 그렇다 쳐도, 사회의 시스템을 착실히 따르는 사람들이 일정 나이가 지났음에도 좀처럼 어른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은 왠지 납득하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나중에 가서야 취업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인생에 대한 고민들을 털어놓는 친구들을 마주할 때마다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네가 나보다는 인생 즐기면서 살아온 것 같아서"


방황하고 부딪쳤어야 할 시기에 여전히 학교라는 집단에 발목이 붙잡혀 있었으니, 막상 거기서 떨어져 나온 뒤의 심정은 막막하고 답답하고 대책이 없을 만도 했다. 무려 20년이 넘게 사회의 시스템 속에서 움직이기만을 강요당하다가 자신의 삶을 개척하라며 뒤늦게 험한 세상에 툭! 하고 내던져지는 현실은 어딘지 모르게 무책임하면서 동시에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나쁘지는 않다. 나 역시 자유가 억압된 채 군대에 머무르다가 스물셋이라는 나이가 되어서야 세상에 부딪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당장에 구체적이지는 않아도, 우리는 먼저 세상에 부딪칠 계획을 세우면 된다. 당장 눈앞에 가슴을 끌어 오르게 하는 무언가를 찾아낸 다음, 힘껏 부딪쳐보자. 가슴을 끌어오는 게 없다고? 그럼, 찾을 때까지 자신을 아무 세상에나 던져보면 된다. 얼떨결에 군에 입대하고, 아무런 구체적인 계획도, 다시 돌아올 장소도 정하지 않은 채 여행을 계획했던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인생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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