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한적하고, 좀 더 일본스러운 곳으로
험난하게 막을 올렸던 오사카에서의 생활도 3개월 차에 접어들어서는 꽤 여유로울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도 어느 정도 손에 익어서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갈 수 있었고, 어학교의 친구들이나 선생님과는 더없이 친근하게 지낼 수 있었다. 좀처럼 스스로 청소를 하지 않는 룸메이트와는 사이가 여전히 좋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방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경계 덕분에 큰 충돌은 피할 수 있었다. 어차피 어학교에서의 한 학기인 3개월 동안만 오사카에 머물 작정이었으니 크게 걸릴 것도 없었다. 조금만 참으면 모두가 평화로울 수 있다면, 기꺼이 그 길을 택하리.
나에게 오사카는, 처음 정착한 일본의 동네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도 큰 의의가 있긴 했지만, 워낙에 그곳에서의 생활 자체가 힘겨웠기도 했고 스트레스 가득한 날들이 가득해서 좀처럼 긍정적이지 못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본디 사람이 많은 곳을 선호하지 않는 내가 365일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도톤보리 거리를 지나다니면서 아르바이트 출근을 해야 했다는 점에서도 그리 좋은 환경이라고는 말하기가 힘든 것이다. 나의 재정적 가난함과 대비되는 화려한 조명과, 유흥을 즐기는 사람들도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고. 사실, 내가 일본에 건너간 이유가 그런 대도시의 삶을 꿈꾸었기 때문도 아니어서, 목적과는 거리가 먼 오사카 생활을 지속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나에게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고 판단을 내리기도 했었다. 어디까지나 초기 정착을 위한 어학연수와 일종의 사전 답사와도 같은 느낌이었달까. 대도시 중심부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나갔기 때문에 초기 정착 비용을 마련한다는 점에서도 유리한 측면이 있기도 했다.
앞선 글에서 말했다시피, 나의 일본 워킹 홀리데이의 진짜 목적은, 일본의 문화를 알아가는 것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일본 국적을 가진 이들과 교류하며 문화적인 소통을 하기 위해 어학이 필요했던 것이고, 일본의 각 지역들을 돌아다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던 것이다. 사실, 초기 일본에 발을 디뎠을 때만 해도, 일본 전국을 자전거로 일주해 보겠다는 상당히 거창한 목표를 세우기도 했었지만, 그 목표는 초기의 가난을 겪으면서 점차 좌절되어 어느샌가 사라져 갔다. 당장에 먹고살 돈도 없는데 전국일주라니, 그것도 한국에서 해냈던 것과는 스케일에서도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정착한 지 3개월 차였던 12월부터는 본격적으로 다음 계획을 구체화해 나가야만 했다. 학교도 2, 3주 정도 뒤면 수료하게 되니 기숙사를 비워줘야만 했다. 그다음 거처를 미리 마련해두지 않으면 일정상 길거리에 나앉게 될 수도 있으니, 그런 점들을 상기하면서 생활을 이어나갔다.
큰 고민을 거칠 필요도 없이 다음 거주지는 교토로 정해졌다. 근방에서 가장 한적한 동네를 품고 있으면서도 대도시와는 크게 떨어져 있지 않아 일을 하면서 높은 급여를 받아낼 수도 있고, 동시에 일본의 전통적인 문화를 많이 간직하고 있는 곳. 일본 역사 속에서 천 년간 수도였던 교토를 어찌 함부로 지나칠 수가 있을까. 네이버도 다음과 같이 교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일본의 그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교토만큼 오래되지 않았고 교토만큼 새롭지 못하다
(출처 : 네이버 여행 정보)
그 어느 곳보다 오래되었고, 새로운 곳. 그 하나만으로도 살아봄직한 도시이지 않은가. 사실, 일본의 많은 지역들을 다녀본 것은 아니긴 하지만(도쿄도 안 가봤다), 간사이 지방에서 누군가 여행지를 추천해 달라고 하면 당연히 교토를 먼저 떠올리곤 한다. 할 것도, 먹을 것도, 볼거리도 너무나 넘쳐나는 곳. 한적하고 조용한 시골 동네들도 변두리에 많고,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관광 명소나 번화가들도 한 데 모여있는 곳이다. 가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을 당연히 먹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어학교에서는 어느새 시험기간이 다가왔고, 정신없이 바빴던 아르바이트는 여전했고, 방과 후에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던 술친구 이고리는 고국으로 돌아가버렸다. 남는 시간마다 교토의 방을 알아보거나, 어떤 일자리를 구해야 할지 찾아보아야 했기 때문에 내 삶에서는 여전히 '여유'라는 글자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오사카와 교토 사이의 혼란스러운 틈에서 나는 약간의 설렘과 긴장을 안고 꿋꿋이 생활을 해나갔다. 적당한 시점에 아르바이트를 그만둔다는 이야기도 미리 해두었다.
"꿈을 찾아 교토로 가는 건가?"
조리바의 셰프쯤 되는, 나보다는 다섯 살 정도 위의 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꺼내자, 하던 일을 멈추고서 나를 돌아보며 미소와 함께 그런 농담 비슷한 물음을 던져왔었다. 하이(네). 나 역시 웃으며 짧게 대답했다. 할 말을 마치고 뒤돌아 가는 내 등뒤로, 그 형은 일본을 마음껏 즐기라는 마지막 말을 흘렸다. 꿈이라, 사실 일본의 오사카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모든 일들이 꿈만 같은 나날들이었다. 답답한 군대에 갇혀 지내고 있을 때부터 일본에서 자유롭게 살아보기로 마음을 먹었었기에, 어학교에서의 공부나, 힘에 부치는 접시 닦는 일, 그 가운데 못 살게 구는 현지 일본인들의 등쌀, 그리고 가난을 극복해 가는 그 모든 과정들이 지난날에 내가 꿈꿔왔던 것들이었다. 내가 옮겨 갈 교토에서는 그런 오사카와는 또 다른 형태의 꿈이 펼쳐질 뿐이었다.
어학교에서의 모든 테스트가 마무리되었고, 아르바이트도 어느새 마지막 근무일이 되었다. 교토에서 머물 곳은 미리 계약을 해둔 상태였다. 예정대로라면 12월 27일에 맞춰 입주할 수 있었다. 3개월 간 이어온 오사카에서의 생활들이 끝나는구나, 하는 생각에 아쉽기도 하면서 후련하기도 했다. 시원 섭섭. 딱 그 정도의 단어가 어울리는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오사카의 마지막 나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