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도심 체질은 아닌가 봐
최악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았다고도 할 수 없었던 대도시 오사카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나는 그토록 원하던 한적하고 조용한 시골동네로의 이사를 감행했다. 기존에 지내던 오사카 난바 근처의 기숙사에서는 전철을 두 번 정도 갈아타야 하는 꽤나 먼 거리에 위치한 곳이었다. 3개월간 생활하면서 쌓인 짐들을 어깨에 짊어지고 북적이는 인파를 한참이나 헤치면서 이 전철, 저 전철 환승한 끝에 오사카의 어지러운 소음으로부터 완벽히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마침내 도착한 곳의 이름은 교토의 '아라시야마'였다. 낮에는 여러 나라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북적였지만, 이른 아침과 밤에는 더없이 가라앉아 곤충들의 우는 소리나 개구리울음소리만이 온 마을에 울려 퍼지는 곳이었다. 정말로 일본의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한적한 시골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그야말로 나의 마음에 쏙 들 만큼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계획하고 아라시야마로 향한 것은 아니었다. 오사카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질 때쯤 막연히 대도시가 아닌 작고 조용한 마을로 옮겨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지만,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기숙사 방을 비워줘야 하는 기간이 한 달 정도 남았을 무렵이 되어서야 워킹 홀리데이 인터넷 카페를 통해 알게 된 셰어하우스 소개 사이트를 통해 본격적으로 여러 방들을 둘러보기 시작했었다. 정확히 사이트의 이름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간사이 지방의 셰어하우스들을 한데 모아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숙소 앱과 같이 간편하게 안내해 주는 사이트였다. 그 사이트의 가장 좋은 점은 머물고 있는 사람들의 국적과 성별까지 표시해 준다는 점이었다. 처음부터 언급했었지만 나의 일본 워킹 홀리데이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일본인과의 문화적 교류였다. 나는, 아주 노골적으로 일본인들이 많은 셰어하우스에 들어갈 심산으로 사이트에서 소개하고 있는 집들을 샅샅이 뒤져보았고, 마침내 일본인 세 명, 프랑스인 한 명이 생활 중인 집을 찾아냈던 것이었다. 나는 곧바로 계약을 마쳤고, 기숙사 방을 빼야 하는 날짜에 맞춰 입주일까지 완벽하게 받아낼 수 있었다.
교토에 처음 발을 들인 날, 한큐 아라시야마 역에서 내려 계약한 집까지 걸어가는 동안의 풍경을 여전히 잊지 못한다. 아직 낮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이른 오전 시간, 쌀쌀한 12월의 막바지였지만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던 하늘에 커다랗게 떠 있는 태양으로부터 떨어지는 햇살은 그 어느 때보다 따사로웠다. 이른 오전이라 부지런한 몇몇 관광객들을 제외하고는 간간이 지나다니는 사람이라고는 평온한 얼굴을 한 마을 주민들이 전부였고, 곧 들이닥칠 관광객들에 대비해서 장사 채비에 여념이 없는 가게 주인들도 눈에 띄었다. 가게 사이로는 깔끔하게 잘 지은 절 건물들도 얼핏 보이기도 했다. 아라시야마 공원을 지나, 커다란 가츠라강 위를 길게 뻗어 있는 도게츠교를 건너면서 생각했다.
내가 머릿속에 그려왔었던 일본이 여기에 있었구나.
도게츠교를 지나 들어선 마을의 분위기는 더욱더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골목골목을 들어갈수록 관광지의 색채는 옅어졌고, 흔한 시골 동네의 풍경과도 같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집들 사이를 누비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내가 묵게 된 셰어하우스는 제대로 된 대문 하나 없이 좁은 통로를 통과하면 현관문이 바로 나오는 집이었다. 심지어 내 방에서 바깥 마루로 통하는 창문을 열어젖히면, 길을 잘못 든 행인과도 충분히 조우할 만한 심히 개방적인 구조였다. 처음엔 도둑이라도 들면 어쩌려고 그러지? 싶었지만, 지내다 보니 그럴만한 동네 분위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오히려 그런 허술한 구조마저 사랑하게 되었다.
오사카 난바에 위치한 기숙사와 학교, 그리고 도톤보리 중심부에 위치한 아르바이트 가게, 오사카에 지내던 시절 나의 동선 곳곳에는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딜 가든 북적이는 관광객들이나 밤늦은 유흥을 즐기기 위해 도심을 떠도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른 아침에는 쓰레기가 여기저기 흩날리는 지저분한 길거리와 도시의 풍경들을 눈에 담아야만 했다. 일본에 오기 전, 일본의 거리는 상당히 깨끗한 편이라는 이야기들을 자주 듣곤 했었는데, 오사카에서의 생활을 한 달 정도 이어간 시점에서는 그 말을 완벽하게 부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귀국한 뒤에도 누군가로부터 가끔씩 '일본 길거리 깨끗하다고 들었는데...'와 같은 말을 들을 때에도 나는 확신에 차서 고개를 힘껏 흔들 수 있었다. 그곳은 어쩌면 우리나라의 대도심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차이가 있다고 한다면, 간판이 일본어나 한자로 쓰여있다는 것과 지나다니는 사람들 대다수가 중국인이라는 사실 정도려나. 오사카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보면,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지나다니던 나의 모습과 그럴 때면 언제나 코끝으로 강하게 들어왔던 각종 양념에 버무린 음식 냄새와 간간이 느껴지는 술냄새들, 그리고 사람들의 땀냄새로 가득 찬 기억들이 떠간다.
반면에, 교토는 역에서 내린 첫 순간부터 모든 감각들이 자연으로 향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향긋한 풀내음, 잔잔하게 들려오는 강물 소리, 때때로 마주치는 주민들의 콧노래 소리도 아주 듣기 좋았다. 오사카에서는 좀처럼 들릴 일이 없던 풀벌레 소리나, 경쾌하게 울리는 아침의 새소리는 그 자체로 훌륭하여 인간이 만들어낸 음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 오사카에서의 스트레스는 교토에서의 삶으로 완전히 분해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좋은 사람들, 그리고 좋은 풍경들과 가까이하면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한 시절을 교토에서 보낼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