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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황해볼게요 Aug 29. 2024

행복은 강도보다 빈도

Day18  Camino de Santiago

해가 떠오르기 전, 하루를 시작한다. 요새 나의 하루는 꽤나 규칙적으로 흘러간다. 세상이 색을 돌려받기 전 눈을 뜨고 길을 걷기 시작한다. 길 위에서 간단한 아침을 먹으며 밝혀오는 해를 맞이한다. 오전에 야외테이블에 앉아 카페 콘 레체를 한잔 마신다.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숙소에 들어선다. 길 위에서 더럽혀진 몸을 깨끗이 하고 손으로 빨래를 하고 글을 쓴다. 그런 하루하루가 완벽하게 온전하다. 그 자체로 완성되어 있다. 그 이상의 무언가를 바라지 않는다. 행복하다.


 늘의 카페 콘 레체를 기대하며 어떤 마을에 들어섰다. 꽤나 규모감 있는 어떤 건축물을 만났다. 순례길을 걸으며 시골마을을 지나다 보면 오래된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힘을 잃지 않은, 강건해 보이는 건물들을 종종 마주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감추지 않고 크게 놀라곤 한다. 그래 마땅하다. 그 건축물의 앞에 위치한 카페의 야외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특별히 맛있지 않은 커피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그곳의 공간이 특별해서 일테다.


 길을 걷다 보면 Camino de Santiago가 적힌 표식들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위치한 장소, 그 뒤로 눈에 담기는 풍경, 표식의 종류는 자주 달라지곤 한다. 그것의 의미가 무엇이든, 여러 사람들이 하나의 방향성을 가지고 어떤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게 참 멋있게 느껴졌다.


 길을 걷는 동안 이온음료를 큰 사이즈로 구매해 마시고 싶다며 누나와 며칠 전부터 이야기했다. 오늘 마트에 들렀을 때, 누나가 신난 표정으로 1.5L 병을 들고 왔다. 가방에 담아두고서 한참을 기다렸다. 목이 마를 때까지, 갈증에 고통스러울 때까지 기다렸다. 단숨에 들이켠다. 반 병은 족히 단숨에 들이켠다. 숨이 차오를 때까지 들이킨다. 그 쾌감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길 위에서 느낄 수 있는 소중한 행복이었다. 행복은 강도보다 빈도다.


 오늘의 길은 유독 더웠다. 한국에서 느껴본 적 없는 건조한 여름과 나를 구워버리는 햇살에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순간이 좋았다. 다음부터는 해가 너무 강한 시간대를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너무 강한 햇살엔 내가 맥을 추지 못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준 그 순간이 좋았다. 이 길을 어떻게 즐겨내야 하는지를, 더 크게는 인생을 어떻게 즐기는지를 배울 수 있게 해주는 순간들을 좋아한다.


 숙소에 도착해선 얼른 수영장에 뛰어들었다. 누나랑 이야기하며 알캉스라고 표현했다. 이보다 더 화려하거나 더 좋은 것은 내겐 필요하지 않았다. 그 순간에 더 할 나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 충만하게 행복했다. 저녁으로는 바질파스타를 만들고 마트에서 사 온 족발요리를 에어프라이기에 조리했다. 따가운 햇살 아래 녹아가면서도 이고 지고 온 보람을 느낀다. 오랜만에 먹는 바질파스타 충분히 맛있었지만, 족발이 압도적이었다. 알베르게에 비치되어 있던 마늘파우더를 뿌려 구워 냈는데, 돼지지방의 풍미와 잘 어울리고 느끼함도 없었다.

 저녁을 먹고서 다시 수영장에 발을 담갔다. 낮아져 가는 해를 보며 누나와 눈을 맞추고 대화하는 시간이 좋았다. 물에서 노는 이들 덕에 다리가 살랑살랑 흔들리는 게 기분 좋았다.


18일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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