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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황해볼게요 Aug 28. 2024

불미스러운 일은 막아보는

Day17 Camino de Santiago

 아침을 먹지 않고 길을 나서려다 이탈리아 아저씨께 잡혔다. 어제 우리와 함께 머무른 순례자인 그는 길을 나서려는 우리에게 아침 준비 다 되었다며 먹고 가라며 들어오라고 했다. 이탈리안으로 말씀하셔서 정확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이눔시키들 아침도 안 먹고 어디 갈려고! 하시는 것 같았다. 분명했다.


 아침으로 커피와 빵을 먹었다. 함께 식사하던 이탈리안 아주머니 두 분에게 이태리어도 배웠다. 부오니시모, 베니시모. 맛있어, 아주 좋아. 오늘 시작이 베니시모!


 길을 걷다 작은 마을에서 클래식 벤츠를 마주쳤다. 헉 소리 나게 아름다웠다. 관리 상태도 완벽했고 실내도 무척 아름다웠다. 물론 신형 좋고 새것 좋지만 이것 또한 대단한 멋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나는 인생이 지나치게 심심하면 걱정거리를 만들기 위해 살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그 말에 참 오래도 웃었다.


 배가 고파 찾아 들어간 베이커리에서 바게트와 쿠키를 사들고 자리를 잡는다. 딱딱파삭하고 고소한 게 오늘도 맛있다. 게다가 속도 윤기 있고 촉촉한 바게트였다. 행복하다고 뱉어낸다. 길을 걸으며 긍정을 자주 말한다. 말하는 대로 된다고 믿는다. 우린 안 되는 게 없다며 자주 말한다. 우린 안 되는 게 없다.


 바게트가 썩 마음에 들어 다시 들어가서 포카치아까지 하나 사들고 살치존과 먹으며 다시 길을 나선다.


 더위에 지쳐가는 몸을 이끌고 눈에 보이는 바에 들어선다. 시원한 맥주 한잔을, 누나는 이온음료를 주문한다. 센스 있게 얼음까지 담아 컵을 내주신다. 목이 따가워서 더 이상 들이킬 수 없을 때까지 숨을 참고 들이킨다. 물로 씻어낼 수 없는 갈증이 있다. 더 이상의 상쾌함은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씻겨 내려가는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또 외친다, 행복해.


 오랫동안 차도 옆을 걷는 길이 이어졌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아래 구워지고 있었다. 누나와 이어폰을 나누어 끼고 팟캐스트를 들었다. 어글리어스라는 스타트업의 창업스토리와 가치관을 엿볼 수 있었다. 어딘가 한 구석을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게 무엇인지 다시 상기한다. 선한 영향력은 그런 것이어야 한다. 원하는 바가 사회에 이로운 것임과 동시에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성공에 다가가고 있는 이의 이야기를 널리 퍼트림으로 누군가가 동기부여를 얻는 것.


 알베르게에 도착한다. 넓은 잔디에 당나귀와 거위가 있었다. 단정한 색에 화려한 무늬를 가진 원피스를 입은 호스트가 있었다. 그녀는 자유롭고 단단해 보였다. 그녀의 웃음이 그러했고, 그녀가 하는 말이나 어투가 그러했다. 내가 갖는 많은 꿈 중, 하나의 모습을 그녀는 살아내고 있는 것 같았다.


 알베르게로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저녁으로 먹을 것들을 사 왔다. 흥미로운 것이 눈에 들어오기에 하나 골라 같이 데려왔다. 베이커리에서 사 온 포카치아를 구워 함께 먹었다. 녹진한 풍미를 기대한데 반해 짜고 단조로웠다. 조미료가 섞인 듯한 맛이었다.


 저녁으로는 볶음밥 같은 것과 토마토 파스타, 미트볼 즉석식품을 사 와 전자레인지에 조리해 먹었다. 같은 브랜드의 빠에야 즉석식품을 먹었을 때, 맛있던 기억이 있어 구매해 보았는데 영 실망스러웠다. 먹다가 이건 아니다 싶었다. 빌바오에서부터 고이 모셔온 라면을 두 개 꺼내온다. 스프하나에 칠리소스와 호스트가 내어준 매운 소스를 섞어둔다. 면을 삶아서 찬물에 헹구고 소스와 잘 비벼낸다, 우리의 두 번째 냉라면. 맛없는 걸로 배 채우는 일은 하지 않는다. 때때로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나곤 하지만 온 힘을 다해 그런 일은 만들지 않는다. 오늘의 온 힘은 성공했다. 피가 당기는 맛이 있다. 입에서 느껴지는 맛, 그 이상으로 나의 정신이 필요로 하는 그런 거.


17일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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