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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황해볼게요 Sep 02. 2024

자주 웃어보기

Day22 Camino de Santiago

 하루의 시작은 여명과 함께한다. 사과도, 일출도. 요즘은 걸으며 아침을 먹는 일이 잦아졌다. 걷는 걸 좋아하고 먹는 걸 좋아한다. 걸으며 무언갈 먹을 땐 뭐가 그리 웃지 자주 웃게 된다.


 어느 마을에 들러 카페 콘 레체를 마시고 마트에 가는 길에 장이 열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입구에 하얀 트럭이 있었고 츄러스를 튀겨내고 있었다. 우리보다 먼저 기다리고 있는 중년의 남성분이 있었다. 흰 옷을 입고 여유롭게 인사하는 주인장의 모습이 좋았다. 튀긴 음식을 판매하며 흰 옷을 입고 있는 게 어딘가 모르게 깔끔한 인상을 주었다. 그는 흥미롭게 바라보는 우리에게 츄로스 한 조각씩을 건넸다. 아, 이 집 장사 잘한다.

 한 번에 길게 반죽을 뽑아내 둥글게 모양내서 튀기고 가위로 잘라 콘모양 포장용기에 담아주었다. 우리 앞에 있던 아저씨는 15유로어치를 사갔다. 저 커다란 것이 한 줄 하고도 반은 더 들어갔다. 그 츄러스는 누굴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의 모습을 보며 주말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 다녀오며 츄러스 왕창 사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했다.

 나는 설탕을 빼달라고 부탁드렸다. 갓 튀겨진 그것은 손으로 집기 버거울 만큼 뜨거웠고 짭짤했다. 바삭하고 맛있었다. 잡스러운 끝 맛도 느껴지지 않는 게 깨끗한 기름에 튀긴 것 같았다. 한국에서 종종 맥도날드에 들러 프렌치프라이를 사들고 산책하곤 했다. 늘 소금을 빼고 주문해서 갓 튀겨주신 감자튀김을 받아 들고 뜨거운 것을 집어먹으며 산책하는 것을 즐겼다. 같은 맥락의 행복이 지구반대편에도 존재했다.


 자몽을 까먹으며 걸었다.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자몽이다. 오랜만에 마주한 그것을 보고 반가워하며 얼른 집어 들었다. 한국에서 먹는 그것보다 쌉쌀한 맛이 덜하고 달았다. 되게되게 맛있었다. 어릴 적, 자몽을 처음 먹을 때 이모부가 자몽은 속껍질까지 까먹는 게 맛있다며 직접 다 까주셨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 자몽은 늘 속껍질까지 제거하고 속살만 먹는다. 이젠 내가 직접 까고, 곁에 있는 이에게 그것을 나눈다. 먹고서 맛있다며 웃어 보이는 표정을 보며 같이 웃는다, 이모부도 그 순간이 즐거우셨겠지.


 가방의 어깨끈이 뜯어지기 시작해서 응급처치를 했다. 순례길을 준비하며 모자를 사고서 모자끈을 제거해 버리려고 했는데 누나가 쓸 곳이 있을 거라며 챙겨 와 주었다. 누나는 스스로 잔머리가 좋다며 칭찬했다. 우리는  이 가방 한국까지 들고 갈 수 있을 거라며 웃었다. 생활력 강한 우리가 좋았다.


 길을 걸으며 바게트와 햄을 먹었다. 오늘 먹은 햄은 한국의 분홍소시지 같은 맛이 났다. 누나는 이렇게 쉽게 베어물 수 있으면 안 된다며 이 햄은 맛이 없다고 했다. 그 말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음식에 관대한 누나가 어떤 포인트를 평가하는 걸 듣는 게 흥미로웠다. 내가 꽤나 많이 먹고서 더 이상은 못 먹겠다며 버려야겠다고 그랬더니 누나는 "네가 맛없는 음식에 오랜 시간 자비를 베풀었다."라고 하더라. 그 말에 그리도 한참을 웃었다.


 22일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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