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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황해볼게요 Jul 23. 2024

설레는 건

 벅차올랐다.

 퀸스타운 공항에 내리고서 높게 난 통창 밖으로 보이던 그 풍경은 나를 설레게 만들기 한 치의 부족함이 없었다. 자연이 주는 감동을 좋아한다. 그중에도 산이 갖는 굵곡진과 모남을 좋아한다. 건조하고 상쾌한 공기를 가슴 가득 부풀려 들이마시고 느리게 뱉어내고자면 그 무엇도 나의 편안을 방해하지 못한다. 내가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이었다. 공항을 중심으로 온 주변이 산으로 온전히 보존된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나는 공항에서 그것들을 바라보았으므로 나는 그것들에 온전히 둘러싸여 있었다. 온전했다. 입꼬리를 올리며 행복하다 말했다.


 렌터카에 앉았다. 처음으로 도요타의 핸들을 잡아들고 길을 나섰다. 3층이상의 건물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그 시야가 참 마음에 들더라. 언젠가 해외에서 생활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이리 아름다운 풍경을 갖고 시내에서도 높은 건물하나 없는 이런 곳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5개월 만에 운전대를 잡아들고 입꼬리를 올렸다. 도요타 사의 야리스 하이브리드 차량이었다. 정확한 제원은 확인해보지 않았으나 엔진은 3-4 기통 / 1000cc 초반대의 엔진인 것 같았다. 전기모터로만 주행할 때는 대부분의 전기/하이브리드 차량들이 그러하듯 매끈한 주행질감을 보여주었다. 토크가 충분히 느껴지면서도 아무런 진동이나 소음이 없으니 쾌적했다. 속도를 조금 올려 엔진이 공기를 흡입하기 시작하고 기름을 태우기 시작한다. 엔진과 전기모터의 변환은 매우 부드럽게 느껴졌다. 다만 냉간 시에 저출력 가솔린 엔진이 힘을 내기 위해 rpm을 올리며 거칠게 회전하는 질감은 썩 불쾌했다. 하부방음이 형편없으리만큼 미흡했다. 휠하우스에서 아스팔트 조각들이 튀어 오르는 소리를 실내로 여과 없이 전달했고, 하부에서 철판으로 된 부품들이 흔들리는 소리들이 끊임없이 운전자에게로 전달되었다. 속도를 100km/h까지만 올려도 A필러에서 공기가 흐르는 소리를 여지없이 실내로 유입시키며 불쾌한 요소를 만들었고, 방음의 부족은 스피커 품질의 저하로 이어졌다. 소음이 아쉬웠던 반면, 고속안정감은 좋다고 느껴졌다. 100,000km 가까이 주행한 자동차였고 렌터카이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가 거칠게 몰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차량임을 감안하고서 생각해 보았을 때 핸들떨림이나 얼라인먼트 틀어짐 같은 것들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고속에서도 핸들이 가볍다거나 조향안정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가장 큰 장점은 연비. 가벼운 차제, 작은 배기량, 하이브리드의 조합은 거칠게 내몰아도 연비를 20km/l 이하로 떨어뜨리지 않았다. 차량 이야기는 여기까지.


 첫 행선지는 나의 놀이터. 해외여행을 가면 늘 마트를 들러보는 편이다. 기회가 된다면 그 나라에서 접할 수 있는 식재료들을 먹어보려고 노력한다. Pak n save와 Woolworths에서 양고기, 양소시지, 등심베이컨, 닭모래집, 빵, 뇨끼, 밀크, 생과일주스, 채소, 처음 보는 품종의 사과들, 라면, 소스를 사들고 차에 올랐다. 시침이 4를 향해가며 해도 산맥을 넘어가고 노을이 지기 시작한다. 신기하게도 뉴질랜드에서의 일몰은 1시간 반가량 이어졌다. 입이 벌어지도록 아름다운 그 하늘색이 짧아서 아쉽지 않았다. 160km가량을 달리며 그 길 위에서 끝없이 변화하는 산맥을 따라 조금씩 색을 달리하는 그 노을의 풍경은 쉽게 잊히지 않을 듯하다.

 오로라라 확신할 수 없지만 오로라라고 우겨보고 싶은, 누군가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은 무엇을 마주했다. 운전하며 노을에 시선을 두고 감탄하며 달리다 구름 없는 하늘 위에 기다랗게 자리 잡은, 푸른 하늘에 유독 홀로 색을 달리하는 핑크빛의 무언가가 눈담겼다. 신기하다는 말이 부족한 감동이 있었다.


 3일 동안 머물 숙소, 테아나우 홀리데이 파크에 들어섰다. 체크인을 하려 하니 리셉션이 잠겨있기에 주위를 살피다 흰 봉투에 적힌 글씨를 발견하곤 입꼬리를 올린다. 이 글을 적어낸 사람의 표정이 눈에 보이는 듯한 밝은 글이 고마웠다. 게다가 춥지 않게 단독으로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는 방으로 업그레이드해주었다며 웃는 표정을 그려둔 게 귀엽더라. 방에 얼른 짐을 옮겨두고 사온 식재료들을 냉장고에 넣어두고서 서둘러 키친으로 향했다. 다만 서두르는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 하는 무엇이 존재했다. 힘들여 고개를 치켜들지 않아도 눈앞의 건물 뒤로 시야에 담기는 별들은 아름답다 그 이상의 어떤 표현이 필요했다. 그 장면은 이내 나의 걸음을 멈춰 세우고 고개를 치켜들게 만든다. 나의 언어로 표현해내지 못할 숨 막히는 무엇이 분명 존재했다. 살면서 마주한 것들 중 제일가는 작은 것들의 아름다움이었다. 그것들은 그들이 그들의 존재로서 누군가에게 놀라움을 선사할 수 있다는 걸 아는지 궁금해했다.


 저녁으로 양고기를 굽고 라면을 끓였다. 와인은 다른 두 가지 품종을 구매해 비교하며 마셔보았다. 소스로는 홀그레인 머스터드를 곁들였다. 뉴질랜드 양고기 품질이 좋다고 듣고서 왔는데 과연 이었다. 도축한 지 오래 지나지 않아서인지 기름향이 깨끗했고 잡스러운 뒷맛을 남기지 않았다. 스테이크처럼 구워 칼로 썰어먹었다. 근막은 따로 잘라내 두었다가 고기를 다 먹고서 고기 구운 팬에 천천히 튀겨내 먹었다.


 준비한 저녁메뉴를 다 먹고서 끝내기 아쉬워 닭모래집을 볶았다. 뉴질랜드까지 와서 닭모래집을 먹을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으나 마트에서 우연히 보고 신선해 보여서 집어왔다. 뜨겁게 달군 팬에 마늘기름을 내고 닭모래집과 양파를 넣어 센 불에 볶아내다 소금 후추 간을 하고서 빠르게 조리를 끝낸다. 닭모래집의 생명은 식감이다. 단순한 양념만을 더하기 때문에 잡내가 나지 않아야 하고 지나치게 오래 조리하지 않기 때문에 싱싱함이 생명이다. 잘 볶아낸 닭모래집은 아삭하고 탱글한 식감과 촉촉함이 살아있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맛있고 질리지 않는 그것을 나는 좋아한다.


 1일 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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