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그리고

<자유를 향한, 마음지도>20

by 이기담

이야기


82년 2월 마산 한일여실고 교정.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오늘은 졸업식. 째째의 엄마도 왔다. 째째의 엄마만 왔다. 아버지는 고3이 되기 전 1월에 세상을 떠났다. 피를 토하며, 아내에게 잘못 살아온 지난 삶들을 반복해 속죄한 뒤에.


엄마는 졸업식 하루 전 마산에 와 째째와 함께 여관방에서 잤다. 처음 마산에 오던 엄마처럼 그날도 엄마는 먹을거리를 해 왔다.


째째에게는 미래가 정해져 있었다. 대학 진학. 비록 야간 대학일지라도 서울에 있는 대학 진학.

째째는 대학에 붙었다. 모 대학 야간 국문학과.

넷째 언니는 째째가 붙을 가능성 있는 대학을 알아보고 원서를 내는 수고를 해주었다. 째째의 첫 번째 희망은 수학과, 그다음은 역사학과, 이도 저도 안 되면 국문학과. 야간 대학에는 수학과도 역사학과도 없었다. 그래서 째째는 국문학과에 원서를 냈고, 합격했다.


합격한 뒤 한 친구가 째째의 기숙사를 찾아왔다.

째째는 자신을 찾은 친구 앞에 섰다.


“너 서울에 있는 00 대학에 붙었지?”

“어.”

“나도 거기 붙었어.”


세상에! 세상에. 째째는 같은 대학 동문이 될 친구를 놀란 얼굴로 바라봤다.


“우리 둘 뿐이래. 4년제 대학에 붙은 건.”


째째는 몰랐다. 대학 준비를 몇 명이나 했는지, 얼마나 붙었는지. 째째의 3학년 담임은 어떤 정보도 주지 않았다. 담임은 완벽하게 무관심했다.


“어떻게 알았어, 너는?”

“우리 담임선생님이 알려줬어.”

“그랬구나.”

“언제 서울 가?”

“졸업하고 바로.”

“나도.”

“넌 서울 어디 있어? 있을 곳 정했어?”

“나? 난 언니랑 함께 살 거야. 넌?”

“난, 아직…….”


친구는 키가 컸고, 깡마른 아이였다.


드디어 졸업식이 시작됐다.

엄마는 감개한 표정으로 째째의 졸업식을 지켜봤다.


그날 졸업식에서 째째는 우등상을 받았다. 상장은 두툼한 국어사전. 이제껏 째째가 학교를 다니며 받은 첫 번째 상품 있는 상이었다.






덧붙이는 생각


엄마와 졸업식 때 찍은 사진은 지금 없다. 출가를 결심하면서 집 앞 공터에서 불태웠다.

나는 많은 것을 불태웠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써온 일기. 찍은 사진, 나를 붙들 힘들이 담긴 많은 것들. 결심만 앞서 부풀린 자의 행동이었다.


돌이켜보면 대학 진학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영어와 수학은 포기한 학력고사.

학력고사를 치른 마산의 고시장을 홀로 걸어 들어간 풍경이 기억난다. 주변에 늘어선 부모들의 간절한 기도와 응원들의 물결들. 그 물결 안으로 혼자 걸어가는 나의 모습.


뭐, 그렇다고 슬프진 않았다.


고3, 대학 진학을 두고 가장 또렷이 기억나는 건 고3 담임의 표정과 태도다.


철저히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그 담임의 얼굴을 길었다. 졸업 앨범을 보니 학교에서 직책을 가졌던 것 같다. 당연히 학교를 지배하는 회사의 요구에 충실해야 했을 것이다. 대학을 진학하는 학생에 대한 애정은 금물이었을 것이고.


지금은 안다. 공장도 학교도 나의 대학 진학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이 원한 건 학교를 졸업하고도 계속 공장에 남아있는 것. 3년의 시간 동안 숙련공이 된 우리들이 남아 일하는 것.


존재하는 모든 생명에게는 각자의 희망이 있는 것처럼, 공장도 학교도 그들 나름의 소망이 있었을 것이다.


졸업한 뒤, 대학도 졸업한 뒤, 학교를 찾은 적이 있다. 그때 고3 담임을 보았다. 그때도 표정은 같았다. 무관심. ‘너를 기억하나, 애정은 없다!’


내게는 선생님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없다.

초등학교 때, 오빠의 잘못을 내 잘못인 양 교무실에 긴 시간 세워두었던 선생님. 그 시간은 고문의 시간이었다.

그 반복되는 시간이 끝나면 나는 울면서 집으로 갔고, 엄마에게 하소연했다. 선생님이 내게 그리하였다고, 나를 지독히도 미워한다고.


언젠가 엄마는 다시 내가 다닌 학교로 온 선생님을 불러 세워 말했다고 했다.


“내 딸이요. 우리 제제가요, 대학을 다녀요!!”


그렇게 말했을 엄마의 태도와 엄마의 말을 들었을 선생님의 태도가 상상된다. 지독히도 가난했던 자식 많은 집의 막내딸. 말 없고, 코 찔찔이었던, 깡마른 여자 아이가 대학을 갔다고 말한 엄마의 마음. ‘네가 그토록 못살게 미워했던 우리 막내딸이 대학을 갔다!’


엄마는…… 아, 엄마는 나의 어떤 미래를 그 말 안에 품었을까. 어떤 당당한 미래를 품고 그리 복수하듯 힘차게 말했을까. 나는 그런 삶을 살고 있나…….


그 선생은 나를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엄마의 말에 황당했을 것이다. 행동하는 자와 당하는 자의 감정은 다르니까.


가끔 생각한다. 내가 인연 맺은 선생들은 왜 나를 그토록 미워했을까.

그러면서 나름 내린 결론은 이것.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

잘 보이기 위해 아부하지 않았기 때문.


나는 그저 나인 채로 있었다. 그랬을 뿐이다. 말없이. 생각에 잠긴 채로.


그러면서 생각한다. 관계에서는 제 그릇만큼, 제가 처한 상황만큼 받아들이고, 판단하고, 행동한다고. 이 또한 이 세상을 이루는 한 부분이라고. 나무에 달린 하나의 나뭇잎이라고.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언제 이 모두를 이해하고, 껴안고, 색칠하지 않고, 자유로워질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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