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 그 시절의 잠 쫓는 알약

<자유를 향한, 마음지도>19

by 이기담

이야기


“너, 또 복도에 나가려고?”

“응, 언니.”

“또 타이밍 먹었어?”

“응.”

“어떻게 견디니, 그러구…….”


아홉 시 50분. 곧 기숙사 방 불이 꺼질 시간이다. 째째는 다리가 접히는 작은 탁자와 책을 들고 불 꺼진 방을 나가 복도에 앉았다.


지금 째째의 근무시간은 오전반. 새벽 6시 반에 교대해 2시 반에 퇴근하고 학교에 간다.


2학년 겨울, 째째는 큰 결정을 했다. 대학에 가기로. 넷째 언니의 조언이 컸다.


고등학교를 진학할 때도 그랬지만 째째는 대학에 대한 희망보다는 출가에 온 마음이 가 있었다. 깨달아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것. 출가만이 그 꿈을 이룰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째째는 결단을 내리지 못했고, 다른 꿈도 꾸지 않는, 어정쩡한 상태였다.

그런 째째에게 넷째 언니는 말했다.


“대학을 가 보는 게 어떻겠니?”


째째에게는 네 명의 언니들이 있었다. 그중 넷째 언니가 째째에게 사랑을 쏟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째째의 손을 붙잡고 일기를 쓰게 한 것도 그 언니였다.


째째는 가끔 넷째 언니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편지에는 출가에 대한 째째의 마음이 자연스레 담겼다. 그 언니가 고2 겨울, 마산의 째째에게 내려왔다.


“대학요?”

“그래. 네가 아는 세상이 전부는 아니야. 일단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난 뒤 진로를 결정해도 되지 않겠니? 이 언니가 도와줄게.”


째째는 중학교를 졸업하던 때 엄마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2년 여가 지났는데 째째의 마음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이쪽도 저쪽도 선택하지 못한 채 주춤주춤.


“바로 대학에 가는 건 힘들 거야. 그럼 재수를 해. 한 번은 이 언니가 도와줄게.”


언니가 올라가고 째째는 제 마음을 들여다봤다. 출가에 대한 길과 대학을 가는 길. 지금 대학 가는 길을 선택한다고 해서 출가 길, 깨달음의 꿈을 버리는 건 아니었다.


째째는 대학을 가기로 했다.


하지만 현실은 막막 그 자체. 학교 선생님 그 누구도 대학을 진학하려는 째째를 도와주지 않았다. 어떤 정보도 주지 않았다. 당연히 매일 4시간의 수업 커리큘럼은 대학 진학을 위한 수업이 아니었다.


째째가 할 수 있는 건 참고서를 사서 무작정 공부하는 것, 잠을 줄이는 것.

째째는 잠을 자지 않기 위해 타이밍을 먹기 시작했다. 타이밍은 각성제. 약국 어디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타다다닥…….”


밤 열 시, 전등 스위치가 내려가는 기계음이 울리며 기숙사 방들 불이 꺼졌다.

째째는 방 앞 복도 앞에 앉아 좁고 길게 이어진 복도를 바라봤다. 이제 기숙사에서 불이 켜진 곳은 복도와 화장실 뿐이었다.

다섯 방쯤 건너 째째처럼 접이 탁자를 들고 앉은 한 아이가 보였다. 째째와 그 아이의 시선이 부딪쳤다. 옅은 미소가 잠깐 오고 갔다.


째째는 시선을 돌리고 강제로 각성된 정신을 모아 공부하기 시작했다.






덧붙이는 생각


지금도 잠에 대한 트라우마를 겪는다.

트라우마 풍경은 이런 것.


“여보, 벌써! 열두 시예요. 자야죠.”

“잠깐만. 잠깐만 있어 봐. 저것만 보고.”


남편과 나의 대화다. 남편은 잠을 늦추면 내일 출근의 부담이 늦춰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늦추려 하고, 나는 잠을 자지 못해 겪을 내일의 육체 피로를 염려하며 재촉하고.


동창들을 만났을 때 나눈 당시의 기억 중 단연 1위는 부족한 잠으로 겪은 고통에 대한 거였다.

“졸다가 미싱 바늘에 손톱이 찍혔잖아.”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졸았었어. 그럼 조장이 막 문을 두드려 깨웠어.”

“야간 마치고 학교 가면 거의 전멸이었지.”


내게 남은 지독한 졸음에 대한 기억은 걸으면서 졸았던 거. 제노바 공장을 에둘러 싼 길고 높은 길을 걸어 퇴근하며, 출근하며 졸았던 기억. 걸으며 졸다 다리가 꺾여 휘청, 넘어질 듯 몸이 흔들렸던 기억. 그 고통. 밤 10시 야간 출근 벨에 깨어나면서 겪은 지독한 힘듦.


언젠가 남편에게 물은 적이 있다.


“왜 잠을 안 자려고 해요?”

“잠을 자면 내일 출근해야 되잖아…….”


한집에 사는 가족도 하나의 명제를 두고 느끼는 감정은 과거의 경험에 따라, 처한 상황에 따라 이렇게 다르다.

누구에게 잠은 내일의 고통을 예비하는 시간.

누구에게 잠은 과거의 트라우마에 끌려다니는 교정된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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