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잔디

<자유를 향한, 마음지도>18

by 이기담

이야기


“엄마, 나 잔디 떼 가져가야 해.”

“잔디는 왜?”
“학교에서 가져오래.”

“그런 게 왜?”

“학교 운동장에 심을 거래.”

“얼매나?”


2학년 가을, 추석 귀경을 앞두고 한일여실고 120반 7200여 명 학생들에게는 숙제가 주어졌다. 각자 고향의 뗏장 잔디를 가지고 오는 것.


엄마와 째째는 잔디를 찾아 헤맸다. 고운 뗏장 잔디를 뗄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가장 좋은 곳은 묘지.


“안 되겠다. 고조할아버지 묘소에서 떼야겠다.”

“그래도 돼?”

“떼야 시간이 지나면 또 자라니 괜찮혀. 고조할아버지도 이해해 주실 것이다.”


잔디 떼를 뗄 때 중요한 것은 뿌리가 상하지 않게 하는 것. 더불어 죽지 않도록 흙까지 떼어내는 것. 필요한 도구는 삽이었다.


“네모 반듯하게 떼어야 가져가기도 심기도 좋을 것여.”


엄마는 삽을 들었다.

잔디 떼는 그렇게 떼어졌고, 째째는 다시 이별을 위해 엄마 앞에 섰다.


“우리 강아지 고생하겄네. 뗏장이 솔찬히 무건디. 저기 버스 온다.”


째째의 가방에는 엄마가 싸준 추석 음식들이 제법 무겁게 자리했고, 손에는 비닐에 싼 뗏장 잔디가 들려졌다.


“엄마 갈게.”


어김없이 차오르는 엄마의 눈물. 째째의 눈물. 째째는 버스에 올랐다. 엄마가 차 안 째째를 향해 손을 휘저었다.


“안녕 엄마. 엄마 안녕…….”


엄마는 째째 바라기를 하며 서 있었다. 째째가 달리는 버스 속도만큼 멀어지는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는 점점 작아지더니 점이 되었다.




덧붙이는 생각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 팔도잔디는.


그해 추석 연휴가 끝나고 등교하던 날. 아이들 손에는 저마다 고향에서 가지고 온 뗏장 잔디가 들려 있었다.

수십 년 만에 가 본 학교 운동장엔 그때 심은 잔디들이 촘촘하고 무성하게 잘 자라 있었다.


이른 봄, 긴 겨울을 견뎌낸 잔디는 누런 빛깔로 동창회로 뭉친 우리를 맞이했다. 우리는 그 잔디 위를 거닐고, 뛰었다. 깔깔거리며. 살아서 다시 왔으니, 모든 과거의 색칠은 살아남아 기억하는 자의 재량이었다.


“난 선생님께 혼났어. 뗏장 잔디가 좋지 않다고.”

“나도!”


다시 깔깔깔.

누군가 광고 이야기를 꺼냈다.


“그거 기억나니? 팔도잔디로 광고도 했잖아. 한일합섬이.”

“맞아 맞아. 기억나.”


자료를 찾아보니 광고 내레이션은 이러했다.


“언제부터인지 팔도의 소녀들이 고향에서 가져온 잔디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한 뼘씩의 잔디가 모여 팔도잔디. 작은 뜻이 모여 큰일을 이룬다는 것, 우리의 믿음입니다.”


이어지는 그림.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 졸업생 김옥란 씨가 아이 손을 잡고 나온다. 아이가 묻는다.

“엄마 잔디는 어딨어?”

이어서 칼라에 흰 줄이 있는 교복을 입은 단발머리 여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잔디를 심는 흑백 회상 장면이다.


팔도잔디를 생각하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당시 한일합섬 서울 본사에 주임으로 첫 근무를 한 사람의 추억 글이 있다. 글에서 그는 자신이 이 광고를 기획했다고 밝혀놓았다. 덧붙여 마산에 가면 대접을 받았노라고, 알고 보니 한일합섬이 수만 명의 거대한 기업이었고, 직급으로 따지니 부하 직원이 수만 명이었더라고. 그 수만 명 대부분은 여공들이었다고.


가슴이 좀 아렸다.

우리를 두고 벌어진 거대 기업의 의도가 이제야 보인 느낌이랄까. ‘작은 뜻이 모여 큰일을 이룬다’는 생각을 나는 그때 하지 못했다.

글을 쓰면서 가슴이 좀 슬픈 걸 보니, 아직도 과거에 색칠을 하고 있나 보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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