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향한, 마음지도>17
버스가 오수에 도착했다.
시외버스정류장에 사람들이 많았다. 째째는 버스에서 내리며 엄마를 찾았다.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째째의 마음이 시무룩해진다. 모래가 추석. 엄마는 추석 준비로 바쁠 것이다. 게다가 엄마는 째째가 탄 버스 시간을 알지 못한다.
학교의 모든 운영은 한일합섬 운영 사이클에 맞춰진다. 팔도, 제각각의 고향을 향해 떠나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는 단기방학에 들어갔다.
집에 가려면 다시 버스를 타야 한다. 오수에서 집까지는 10리. 걸어서 갈 수도 있었지만 째째는 그러지 않았다.
“엄마!!”
째째는 집으로 들어서며 소리쳤다.
“…….”
“엄마!!”
“쿨럭, 쿨럭…….”
엄마의 대답 대신 들려오는 아버지의 밭은기침. 째째는 아버지 방 앞에서 잠시 머뭇댔다.
“저 왔어요, 아부지.”
“쿨럭쿨럭쿨럭…….”
째째가 기침 소리 나는 방문을 열지 못하고 서 있는데 엄마가 째째를 불렀다.
“우리 제제 왔구나!”
“엄마! 어디 갔어!?”
설움이 왈칵. 째째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눈물 고인 째째를 엄마가 와락, 안았다.
그 밤, 째째는 엄마 곁에서 잠들었다. 달콤한 잠. 달콤한 꿈. 그러다 후드득, 잠에서 깼다.
엄마가 울고 있었다. 째째를 안고,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쓰다듬으며.
엄마가 째째를 쓰다듬으며 울음에 섞어 혼잣말을 했다.
“불쌍한 내 새끼. 불쌍한 우리 제제.”
“이 어린것을 그곳에 보내놓고……흐흑.”
“이 어린것이 벌어오는 돈을 받고……흐흐흑…….”
그것은 엄마의 한탄이었다. 딸에게는 차마 털어놓지 못한 엄마로서의 부끄러움과 한스러움이 담긴, 털어놓지 못한 엄마의 속마음.
째째는 깨어 듣고 있었으나, 알리지 못했다. 그래야 한다고, 마음이 말했다. 째째는 잠에서 안 깬 척 엄마의 속 깊은 마음을 깊이 호흡했다. 자식을 위해서는 목숨, ‘그까이 거’ 기꺼이 버릴 수 있는 엄마의 사랑을 차곡차곡 눌러 담았다.
대학에 들어와 페미니즘에 심취해 있을 때 엄마께 불효했다.
“엄만 왜 엄마 인생을 살지 않았어? 그렇게 살지! 왜 바보처럼 참고만 살았어? 아부지 같은 사람을 왜 못 떠났어?”
엄마의 반복되는 한탄을 들은 뒤였다. 엄마의 한탄은 한결같았다. 그러니까, 이런 것.
“니 아부지가…….”
“니 할머니가…….”
열여덟 살에 시집와 두 분과의 결별까지 겪은 어머니의 고통, 엄마 가슴에 차곡차곡 산처럼 쌓인 한에 대한 이야기. 참으며 살아야 했던 억울함에 대한 토로.
그때 나는 엄마의 삶이 용기 내지 못해 자초한 삶이어서라고 생각한 듯하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마땅히 그럴 수 있는 삶을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채 푸념한다고 여겼던 듯하다.
그때 지었던 엄마의 표정이 또렷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 저 어린것.’ 하는 눈빛.
엄마는 말했다.
“느그들이 줄줄이 있는데, 내가 어뜨케 신발을 고쳐 신어…… 느그들이 내만 쳐다보고 있는데…….”
엄마는 그 뒤 첫째 언니를 낳고, 살지 않기 위해 친정으로 갔던 일을 얘기하셨다. 딱 한 번 시도를 했었노라고. 그 뒤로는 다시 하지 않았노라고.
결혼하면서 어머니의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출가에 대한 긴 방황을 끝내고 세상 속에 남기로 한 뒤 몇 년. 결혼을 결심하게 됐다. 남편 될 사람은 오래 보고 안, 좋은 사람. 하지만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컸다. 불화한 부모님, 긴 세월 출가를 꿈꾼 독립적인 내 성향, 세상이 보여주는 불행한 부부의 모습들. 나는 오래 주춤거렸으나 결심했고, 결심의 가운데 엄마가 있었다.
“니가 결혼을 해야 내가 맘 편히 눈을 감을 것인디.”
그래도 오직 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외로웠다.
나는 결심했다. ‘엄마 같은 엄마가 되어야지, 엄마 아버지처럼 불화하지 말아야지.’
딸을 낳고 보니,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엄마의 희생이 나를 살게 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딸은 상상할 수 없는 크기로 내 삶을 변화시켰다. ‘기적’이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길 없는 존재였다.
기쁨 없이, 의무만으로 키워지는 게 자식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다짐만으로 남편과 사이좋게 살 수도 없었다.
여러 번의 다툼,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 중심에 딸이 있었다. 엄마도 그러했을 것이다.
오늘도 엄마를 생각한다.
갑자기 찾아온 추위에도 여전히 꽃을 피우는 베란다 채송화꽃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