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향한, 마음지도>16
휴무일. 째째는 버스에 오른다. 목적지는 마산에 있는 팔공산. 그 산의 암자.
휴무일은 일정치 않았다. 한 달에 한 번일 때도, 한 달에 두 번일 때도, 쉬는 날이 없을 때도 있었다. 휴일 일수는 공장의 생산 일정에 따라 달랐다.
휴무일의 시간은 달콤했다. 달콤한 만큼 아이들은 새벽부터 움직였다. 바다로, 시장으로, 영화관으로, 여기저기로. 기숙사에 남아 호젓해진 방을 홀로 쓰며 잠을 자고, 밀린 빨래를 하기도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째째가 주로 선택한 곳은 팔공산의 암자.
운동화를 신고 티셔츠를 입고, 먹을 것도 없이 단출하게 혼자 산을 오르면서 째째는 가슴에 담긴 출가의 꿈을 고민했다.
암자는 작았다. 그곳에는 고시공부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째째는 열린 문으로 부처님을 훔쳐보듯 보고, 가끔 보이는 스님의 움직임만 느낄 뿐, 암자 안으로 들어서지 못했다.
어릴 적 엄마 손을 잡고 가 본 절. 그 뒤로 째째가 스스로 마음을 내어 가 본 절은(중학교 수학여행 때 법주사를 가 본 적은 있다) 이곳이 두 번째였다. 당연히 부처님 앞 불공 절차도 알지 못했다. 마음에 자리 잡은 커다란 꿈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째째를 암자로 이끈 힘은 오직 하나, 중학교 2학년 때 찾아온 대자유의 마음. 마음의 모든 쇠사슬을 끊어내는 대자유의 느낌. 반드시 그 느낌을 일상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는 희망.
맴맴, 암자 주위만 한 바퀴, 두 바퀴. 잠시 바위 위에서 털썩.
째째는 그렇게 암자를 찾아 오르고 또 오르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돌아오는 길. 길에서 잿빛 승복을 입은 비구니 스님이라도 보는 날이면 가슴이 쿵, 온몸을 주저앉힐 듯 내려앉았다.
죄 지은 것 같은 느낌, 가야 될 길을 가지 않은 것 같은 무책임함. 약속한 일을 지키지 못한 것 같은 죄책감.
그렇게 반복해서 오르던 어느 날, 째째는 암자 옆 돌 위에서 미끄러졌다. 미끄러져 왼손 검지 손가락이 접혔다. 손가락은 금세 퉁퉁 부어올랐고, 통증도 심했다.
째째는 기숙사 앞 병원을 찾았다.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다. 의사가 엑스레이에 찍힌 괴상한 모양의 뼈들을 보며 혼자 온 째째에게 반말로 물었다.
“여기 뼈가 조각난 게 보이나?”
검은 바탕에 희게 드러난 뼈들. 그 뼈들 중 검지 손가락 중간 마디에 떨어져 나온 뼛조각이 보였다.
째째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지도 못한 채 의사를 보았다. 의사가 말했다.
“수술을 해서 제거해야 하는데…… 수술이 쉽지 않다. 보호자 동의가 필요한데, 받아올 수 있겠나?”
째째는 대답하지 못했다. 엄마는 멀리 있고, 수술을 하기 위해 엄마를 불러오는 일의 막막함이 덮쳤다. 째째는 겨우 물었다.
“안 하면…… 어떻게 돼요?”
“안 하몬…… 뭐 손가락이 툭 튀어나온 채로 사는 기지. 완전히 구부려지진 않을 기야. 뭐 그래도 사는 데 큰 지장은 읎어. 왼손을 쓰는 데도 큰 지장은 없을 기고.”
째째는 안심했다.
‘그러면 됐지, 뭐.’
가끔 사람들은 내 왼손 검지 손가락을 보고 묻는다.
“어머, 손가락이 왜 그래요?”
그러면 나는 대답한다.
“아, 이거요? 뼈가 조각나서 그래요. 수술해야 했는데, 못했어요.”
지금도 손가락은 구부려지지 않는다. 뭐, 그래도 그때 의사 말처럼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이것 말고 내 손에는 몇 개의 흉터가 있다.
공장에 들어간 첫해에 기계에 끼여 절단될 뻔~ 했다가 붙은 왼손 새끼손가락의 흉터,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전주 큰언니 집에 간 엄마 대신 식구들 식사 준비를 하다 칼에 베인, 왼손 약지 손가락의 지문마저 어그러뜨린 깊고 긴 흉터.
1학년 때 기계에 왼손가락이 끼어 절단될 뻔했을 때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안전사고를 낸 나를 자전거 뒤에 싣고 페달을 밟으며 내게 보인 주임의 태도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조심했어야지! 에이 참! 대체 뭔 생각을 하다 기계에 낀기가, 엉!? 에이 씨!”
그날 주임의 태도에서 나에 대한 걱정은 한 푼어치도 없었다. 주임의 염려는 오직 나의 안전사고로 자신이 당하게 될 질책에 대한 것뿐. 자전거 뒤에 실려 기계에 낀 새끼손가락을 움켜쥐고 나는 두려움에 떨었다.
흐르는 피와 다친 손가락의 통증과 쨍하게 빈 한일합섬 의무실까지 가는 공장의 그 텅 빈 길의 침묵이 뭉쳐서 남아있다. 이 사고로 왼손 새끼손가락의 손톱은 자라도 자라도 기형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잘못이 9할이다. 맞다. 나는 생각이 많았다. 생각이 생각을 낳고 그 생각이 또다시 생각을 낳는, 마치 이 지구 위 생명들의 탄생처럼 생각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이어지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대해야 하는, 사실적인 기계 앞에서 실수를 했다. 그리고 실수는 흉터로 남았다.
지금도 가끔 그런 실수를 한다. 운전을 하다가, 밥을 하다가, 청소를 하다가, 운동을 하다가.
육체와 환경의 사실적인 조우 앞에 생각에 빠져 있느라,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못하고 부상당한다. 사고를 일으킨다. 남에게 상처를 준다.
오우, 정신 차려야지!
세상의 명징함에 생각은 자칫 오염된 판단을 줄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