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긴 길 위에서 하룻밤 2

<자유를 향한, 마음지도>15

by 이기담

이야기


비는 그치지 않았다.

버스도 떠나지 못했다.

떠날 사람들은 떠났다.


째째는 여섯의 남자들과 식당 앞에 남겨졌다. 째째는 가지고 있는 돈으로 식당에서 밥을 사 먹었다.

째째는 돈을 벌었다. 째째가 마산에 와서 제일 좋은 건 돈을 번다는 거였다.


번 돈으로 책을 사 볼 수 있었고,

번 돈으로 독서신문과 일간지도 구독해 보았으며,

번 돈으로 영화도 보았다.

그리고,

번 돈으로 엄마를 도울 수 있었고,

번 돈으로 지금처럼 밥을 사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번 돈으로 구독하는 신문에는 나쁜 사람들 이야기가 많았다. 죽이고 싸우는 사건들. 모두 제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헤치는 이야기들이었다.

그 모든 이야기가 끊긴 길 위에 홀로 남겨진 째째를 포위해 왔다.


‘감당할 수 없는 폭력 앞에 놓인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째째는 알았다. 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곳에서 길이 뚫리기를 기다리는 것. 잠들지 않고 긴 밤 스스로를 지키는 것.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 다행히 식당 주인은 여자였다. 그것도 등치 큰 중년의 아주머니. 게다가 식당에서 음식을 만드는 다른 여자도 있었다.


“니, 여기서 자라!”


식당 주인아주머니가 도움을 손길을 내밀었다. 째째의 눈에 눈물이 왈칵, 차올라 흘렀다.
주인아주머니는 다시 말했다.


“여기 이래 문 닫고 나랑 저 함안댁이랑 같이 자면 된다.”


안쪽 방에는 바깥과 안을 구분하는 연약한 창호지 미닫이문이 있었다.


“저기 저 사람들 걱정 안 해도 된다.”


주인아주머니가 흘깃 문밖 남자들을 쳐다봤다.


‘잠들면 안 돼!’

‘절대로 자면 안 돼!!’


두 명의 아주머니 곁에 누워서도 째째는 끊임없이 마음을 다그쳤다. 하지만 졸음과의 싸움에서 승자는 언제나 졸음이었다. 졸음이 잡아끄는 늪 안으로 째째는 조금씩 끌려 들어갔다. 발이 빠지고, 다리가 빠지고, 허리가 잠기고…….


“드, 닥.”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 ‘위험해!’ 째째를 깨우는 마음의 소리.


‘흡!’


째째는 다급히 잠의 늪에서 깨어났다.






덧붙이는 생각


별일은 없었다.

그 밤, 자다 깨다를 반복하게 만들었던 공포의 실체는 바람, 그리고 식당 의자 위에서 잠든 남자들이 움직이면서 낸 소리.

다음날 가는 길은 막히고, 갔던 길은 뚫려 되돌아왔다.

지금도 그때 내게 손을 내밀어준 식당 주인아주머니를 생각한다.

누군가의 도움은 상황의 긴박과 상관없이 한 생명에게 거름이 된다. 이후 종종 그때 일이 떠올리며 아주머니께 감사한다.

찾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세세한 기억이 사라지고 없다. 식당의 이름도, 그곳의 위치도.


내게는 약점이 많다. 그중 한 가지가 기억력.

가끔 위안 삼아 세상 전체에 대한 관심이 지나쳐 세세한 기억력이 부족한 거라 위안하기도 한다. 더불어 사람들은(아니 세상 생명들 모두는) 타고난 저마다의 개성이 있고, 나는 이런 모습이라고.

그러면서 생각한다.


그날 나를 도와준 식당 아주머니의 날갯짓이 지금의 나를 만든 일부라고. 세상은 홀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니까. 홀로 만들어진 생명이 아니니까. 온 우주가 합심해야 가능한 존재이니까.

고마움에 대한 보답은 나 또한 그런 날갯짓 하나 퍼덕이는 일.



p.s; ‘나비효과’라는 용어는 기상예측 모델에서 연구에서 나온 개념이다. 나비의 날갯짓처럼 작은 움직임이 폭풍우와 같은 커다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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