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아닌 잠을 자게 되었다. 몸이란 집에서 통증이 숨을 쉬며 살아갈 동안 나는 조용히 구석으로 자리를 비켰다. 통증이 나를 점령하는 동안 나의 소중한 영역을 버리고 도망쳐야만 했다. 바짝 엎드렸다. 허리라는 첫 번째 이외의 모든 것은 의미가 없었다. 두 번째, 세 번째는 생각할 수 없었다. 내 몸의 새로운 지배자는 나를 절벽으로 밀치며 가진 것을 모두 버리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통증은 완벽히 나를 지배하였고 나 자신을 내어놓게 되었다. 오로지 살기 위해 살았다. 남겨진 자아의 흔적마저 점차 희미해지고 있었다.
나는 벼룩이었다. 종이컵 속에 벼룩 한 마리를 넣어 뒀다. 바로 튀어나왔다. 벼룩은 보통 자신의 몸체보다 100배 높이를 뛸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튀어나온 벼룩을 다시 집어넣었다. 벼룩은 튀어나왔다. 이러기를 반복하다가 종이컵 위를 유리로 덮어버렸다. 그때부터는 컵 안에 든 벼룩이다. 아무리 뛰어도 유리에 머리를 세게 부딪칠 뿐 컵을 빠져나갈 수 없다. 그렇게 종이컵에 유리를 며칠 놓아둔 후 치웠다. 벼룩은 종이컵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없었다. 자신이 더 높이 뛸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종이컵에 갇혀 살게 되었다. 유리 벽의 한계에 길들여진 것이다. 학습된 무기력. 병든 자들의 메커니즘은 정확히 이렇게 구축되어간다. 나는 벼룩이다. 허리라는 유리벽에 갇혀 뛰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억한다. 내가 뛰었던 날들을. 그럼에도 나는 지금 벼룩이다.
모두 다 버렸다고 생각했다. 얻은 것 없이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내가 허리를 고쳐가는 동안 내 주변을 이루는 것들이 자기만의 섬을 이루며 멀어져 갔다. 이전의 건강한 삶을 그리워했다. 악에 받쳤다. 통증의 칼날을 그을 때마다, 왜 내가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지, 모든 것을 억누르며 허리만을 위한 시간을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묻고 또 물었다. 그러면 죽고 싶어졌다. 이런 삶을 앞으로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포기하고 싶었다. 허리 아래를 도려내고 싶었다.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의미를 찾아야 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야 했다. 재미라고는 없는 삶에서 나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생존만을 위한 삶 속에서 무엇이 나를 살게 하는가.
상처를 통해 이른 결론은 생의 허무함이었다. 이전에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가치가 모두 무의미해져서 괴로웠고, 내가 무시했던 가치가 중요하게 느껴져서 당황스러웠다. 죽음을 가까이했다. 죽음과 가까이 있을 때야 비로소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았다. 희망과 절망의 차이가 겨우 한 글자인 것처럼 희극과 비극은 결코 단호하게 나눠지지 않았다. 별다를 게 없는 삶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감당할지는 내 몫이었다. 죽고 싶어도 떡볶이는 먹고 싶다는 다소 소박한 바람을 남긴 이도 죽지 않고 떡볶이를 먹으며 살아있는 것이 생(生)이었다. 인간 모두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한다. 9년 차 직장인도, 50살에 조기 은퇴한 아저씨도, 남을 위해 살았다고 생각하는 63세 아줌마도, 너무 앞만 보며 살았다고 자책하는 92세 할머니도, 모두 자신이 살았던 삶에 의문을 제기한다. 아픈 나만 머리 뜯고 있는 건 아닐 테다.
그래도 숨을 쉬고 눈을 떴다. 아프고 나서 발전한 나의 감각들을 끄집어내 본다. 하루에 하나밖에 못하는 단순한 삶이라도 내 삶의 어떤 부분은 좋아졌다고 믿고 싶다. 믿고 싶으면 믿으면 됐다. 통증에 시야를 가려 깨닫지 못했던 이점을 꼬박꼬박 쌓아보기로 했다. 부서진 세계를 보며 아무리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해도 아프지 않은 게 최선인걸 알지만 모순된 상태를 인지한 자아분열은 결과적으로 날 살리는 거니까.
하나, 우선순위를 결정하게 되었다. 절제는 나의 미덕이 아니었다. 가용할 에너지가 줄어든 만큼 이거 저거 다 해볼 수 없었다. 하루에 하나씩만 가능했다. 당장 기분파에서 탈퇴해야 했다. 감정보다 상황 파악이 우선이었다. 내게 주어진 선택지 중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매번 스스로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에게 "아니오."라고 단호히 말해야 했다. 재활 이외의 모든 것은 후순위였다. 상대적으로 쓸데없는 일은 하지 않고 사소한 것쯤은 미뤄둘 수 있었다. 허리 아픈데 청소가 뭐 대수야. 머리카락이 뒹굴어도 태연하게 안 본 척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 청소하기 싫으니까 아예 어지르지 않는 방법을 고안했고 집안일의 루틴이 생겼다. 삶이 간소화됐고 효율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했다.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생각했다면 계획을 세우고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둘, 관계가 소멸되었다. 관계에 쏟았던 에너지는 오롯이 나를 향하게 되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참 많은 사람을 돌봤었다. 특히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가득이었다. 공무원, 선생님, 로스쿨, 기자, 취업 등등. 주기적으로 전화해서 안부를 묻고 고민을 들어주었다. 자기소개서를 봐주고 내가 면접관이 되어 모의 면접 준비도 같이 했다. 1차 면접을 본 후 곧장 후기를 들려주고 2차 면접을 같이 준비를 하는 식이었다. 친구들의 시험일정에 맞춰 공부 스케줄을 체크하며 독려했다. 몇 시간이고 통화했고 내 일처럼 고민했다. 그들 모두 자신의 목표에 도달했고 예전만큼 나를 찾지 않았다. 먼저 연락하지 않으니 자연스레 간격이 벌어졌다. 내 할 일을 다했으니 언젠가는 물러날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헛헛했다. 나는 나만의 섬으로 향했다. 내가 더 이상 예전만큼 들어주고 도와줄 수가 없어서, 채워지지 않는 욕망들 틈으로 외로움이 쌓여 자신도 가누지 못해서, 힘들어서 멀어지길 택했다. 말 한마디에도 바스락거렸다. 여유가 멸망했고 친절함이 메말라갔다. 나도 이런 자신이 낯설었다. 다행인지 그들의 터에서 각자 삶을 사느라 나의 안위를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친구들의 자리를 나로 채워나갔다. 그러나 종종 딜레마에 빠졌다. 1년에 한 번 겨우 만든 약속 자리인데 허리 상태가 너무 좋지 않을 때, 나를 생각해야 하는가, 약속을 지켜야 하는가. 허리가 부서지지 않는 한 친구와 약속을 지키는 것을 선택하는 쪽이라서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존재하는 '약속' 자체를 내 인생에서 지워버렸다. 그렇게 점점 혼자가 되었고, 많은 시간이 남았고,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나를 빚어갔다. 상대를 더 위하려는 마음이 불쑥 찾아와도, 돕고 싶은 마음이 움찔거려도, 그러지 말고 널 먼저 생각하라고 허리가 다독였다.
셋, 그렇게 인생 내비게이션 재정비 시간을 얻게 되었다. 몸이 부서지도록 코앞만 보며 열심히 살려고 했던 것 같다. 원하지 않았지만 아파서 억지로 빈 시간을 얻게 되었다. 과거의 나처럼 살 수 없는 것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기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인생의 방향을 저절로 고민하게 되었다.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이었다. 변해야 했다. 다른 내 모습을 받아들이고 준비해야 했다. 덕분에 예전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것들을 하게 되었다. 몸에 핏 되는 옷을 입는 것이 싫고 민망해서 수영장에 가기 꺼려졌지만 허리 때문에 물속에서 운동해야 했기에 가게 됐다. 죽어도 싫다던 공무원이 되었다. 사랑했던 친구들과 헤어지고 책을 만났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겨우 살아냈다. 7년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다. 오히려 피하고 싶은 삶에 가까웠던 단조로운 삶이었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같은 시간에 오는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고, 같은 시간에 밥 먹고, 같은 시간에 수영장 가고, 같은 시간에 자는, 자극과 변화가 없는, 하루하루 반복되는 똑같은 삶. 조그만 변화에도 통증의 진폭이 커져서 고통스럽기에 오차 없는 삶은 중요했다. 단련되어갔다. 우습게도 지금은 이런 삶의 단조로움이 싫지만은 않다.
넷, 나에게 새로운 더듬이가 생겼다. 분명 곁에 존재하는 세상이었지만 안보였던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픈 사람을 생각보다 자주 만나게 되었다. 처음엔 평범해 보이고 싶어서 아픈 이야기를 피하거나 하지 않았지만 내 행동에 대한 각자의 해석으로 오해가 생기는 것을 알게 된 후 내 상태를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그럼 자신도 아프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생겼다. 다들 나름 슬픔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건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지만 지병이 있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을 줄은 몰랐다. 수영장에서 만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통해 노인의 삶을 엿볼 수 있었고, 생전 들어보지 못했던 질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의 아픔에 닿았다. 질병의 특성과 정도가 달라 백 프로 이해를 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과 슬픔을 함께 하려는 마음이 쌓여갔다.
경전철의 쓸모에 대해 생각했다. 경전철은 파산위기였고 심각한 부채상황으로 인해 언제 가동이 중단될지 모르는 상황에 처해있었다. 세금낭비인 경전철을 도대체 왜 만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경전철을 타 볼 생각도 안 했다. 예전에 나에게는 버스가 있었으니까. 그러나 아픈 이후 덜컹덜컹 대는 버스는 나에게 적합하지 않아서 매끄러운 철로로 이동해 흔들림이 적은 경전철을 이용하게 되었다. 많은 노인과 장애인을 경전철에서 마주쳤다. 엘리베이터도 마찬가지였다. 엘리베이터는 장애인과 노인, 임산부, 유모차의 전유물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엘리베이터가 어딨는지부터 확인하는 나를 발견한다. 노인과 장애인이 편한 길이 내게도 좋은 길이었다. 구부러지는 빨대가 누워서 생활하는 사람이 스스로 음료를 마실 수 있도록 발명된 것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유용한 것처럼 말이다.
무엇보다, 하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어서 점점 커지는 소망과 응축된 에너지, 그것들이 켜졌을 때의 불길을 기대하고 있다. 이렇게 원기옥을 모았다가 한 번에 분출할 때를 기다린다. 간절한 눈물은 그 누구도 멈출 수도 없고 이길 수도 없으니까. 언젠가는 빛이 고독한 우주를 가로질러 내게 올 거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그저 내 몫을 한다. 빛은 어둠 속에서도 존재하며 다만 보이지 않을 뿐이니까. 주저앉아버리고 싶은 마음을 이끌고 돌고 돌아 결국엔 생각하던 곳에 닿을 거라는 것을 마음에 새긴다. 응축된 에너지 세 스푼. 차분함 한 스푼. 공감력 반 스푼. 지금 내가 조금이라도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허리로부터 비롯되어 축적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벼룩이 다시 종이컵에서 탈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새끼 벼룩을 낳으면 어떨까. 튀어 오르는 본능이 잠재된 새끼 벼룩은 언제든 뛰쳐나갈 테고 그걸 본 어미 벼룩도 같이 뛸 수 있지 않을까. 7년째 새로운 나를 출산 중이다. 벼룩이 다시 뛰어오를 날을 기대하며 종이컵 안에서 꼼지락 대본다. 나는 기억하는 벼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