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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Jun 15. 2024

손에 쥐었다 뺏긴 기분!

이런, 행운이.

햇볕을 가득 품어 뜨겁게 달궈진 백사장이 눈부시도록 반짝이고 가까이 바다가 파도의 하얀 거품을 앞세워 유혹했다. 하지만 나는 불판의 하얀 소금 위 새우처럼 뜨겁게 달궈진 모래에 앉아 엉덩이 한 짝씩 뒤집으며 자외선을 온몸이 빨갛게 익어 뜨거울 대로 뜨거워진 상태로 시원한 바닷물 대신 아들과 모래놀이를 했다.


매년 8월 첫 주면 어김없이 간단 씨의 휴가가 시작된다. 여름휴가철에 맞춰 간단 씨 회사에서는 유명 해수욕장에 하계휴양소를 차려 전국에 흩어져 일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무료로 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우리 가족도 휴가철이면 하계휴양소를 찾아 물은 무서워해도 햇볕에 잘 구워진 금빛 모래를 사랑하는 아들 백사장에만 앉았다 왔다. 대부분 두꺼비집을 짓거나 모래놀이 세트로 각종 바닷가 친구들의 생과사를 결정하며 놀았다. 이마저도 코로나19 때는 완전히 폐쇄돼 뒤늦게 파도에 재미를 좀 붙여볼까 간 보기를 하던 아들은 7살 여름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코로나19 이후부터는 해수욕장 대신 전국 몇 곳의 펜션을 하계휴양소로 한 달간 대여해 숙소를 신청한 직원들에게 추첨 방식을 통해 선별 제공하고 있다. 이도 대가족이 이용하기 좋은 큰 평수는 수요가 많아 당첨될 확률이 극히 낮고 단출한 2-4인 가족이 머물기 좋은 작은 평수는 상대적으로 당첨 확률이 높은 편이다.


간단 씨도 매년 펜션 여러 곳을 신청했으나 정 없게도 추첨되지 않았음을 알리는 안내문자 딸랑 한 통이 끝이었다. 그렇게 몇 해 여름이 아쉬움으로 가득했지만 그 마음이야 건조한 여름 날씨에 쉽게 증발했고 이번만은 기필코 시원한 회사의 복지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즐겨보리라는 마음으로 반복해 신청 했다. 이 마음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고 간단 씨와 나는 머리를 맞대고 앉아 작은 핸드폰에 간절함을 보태 최대한 신중히 날짜를 선택했다.


역시 두드리는 자에게 문이 열린다고 하더니 과연 그랬다. 며칠 전 한 곳에 선정됐다는 반가운 소식이 남편 입을 통해 먼저 전해졌고 뒤이어 문자로 확인했다. 우리에게도 이런 행운이라며 아들과 나는 환호를 지르며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했고 서둘러 다이어리에 꼼꼼히 여름휴가지를 기록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그 여름 아들과 함께 해수욕장 백사장에 앉아 모래놀이 하던 내 손에서 모래알갱이가 빠져나가듯 금세 사라졌고 따뜻한 온기만 남기고 떠난 손의 허전했던 감촉만 남았다.


하계휴양소 결과발표에 오류가 확인되어 재추첨을 진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아, 이건 뭐 줬다 뺐는 것도 아니고......


이미 바닷가의 시원한 바람 맛을 본 탓에 예년에 비해 아쉬움은 월등히 컸다. 그러나 과연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차츰 뜨겁든 마음은 서서히 식어갔고 우리에게 기회가 한 번 더 찾아온 것일 수 있다는 희망회로가 깜빡이를 켜고 신호를 보내며 들어찼다.


지금은 곧 다시 발표될 그날의 행운을 기대하며 살짝 긴장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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