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인지 그림자인지 분간할 수 없는 어둠보다 짙은 어둠을 가진 사내가 내게 말을 걸어온다.
나는 말이여, 염라국 염라대왕 직속 사자 청 소속 저승사자여.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는 고양이같이 바짝 온몸의 털이 곤두서듯 등골이 오싹한다.
이건 뭔가. 여기는 어디인가. 꿈인가 생시인가. 이곳이 말로만 듣던 사후세계인가. 도통 천지 분간이 어렵다.
제…… 가 죽었나요?
어렵게 입을 달싹여 말을 걸어본다.
아이고, 놀랐구먼. 미안허요. 이래서 저승사자도 변장술을 좀 배워야 쓴다니께. 이승의 인간들 데리러 올 때 마중 이래 놀래니 내 심장이라도 어디 승하것소? 들썩들썩 아주 승가시게 뛰어.
이건 또 무슨 전개인가. 얼토당토않은 상황에 놀라 오 갈 데 없이 나대던 내 심장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조금씩 잠잠해진다.
내사 변장술을 배우고 잡아도 좀체 시간이 안 나부러. 어찌나 데리고 갈 인간이 많은지. 근로 기준 시간 준수가 뭐여! 항상 초과 근무에 연장근로여. 우리 염라국도 이렇게 저승사자를 막 부려 먹어야 스간디.
뭐야 이건 또. 지금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사람 앞에서 할 말인가.
참말로 돈이 무서버. 요로코롬 불평 불만해도 시키는 대로 일을 항께. 어데 일을 내 마음대로 그만 둘수 있간디. 묵고는 살아야 항께. 목구멍이 포도청이여.
어리벙벙한 나는 그냥 저승사자의 입만 쳐다본다.
내가 저승사자인 건 맞는데 그짝을 지금 데리러 온 건 아니여.
도대체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저승사자가 하는 말의 뜻을 가늠하기 어렵다.
그럼…… 여기에 무슨 일로….
말끝을 흐리며 물었다.
내가 칙칙하고 거무스름한 옷만 입고 이름도 저승사자라 무섭게 보이겠지만 심성은 꽃같이 고와. 그러니 겁내지 말더라고.
생각할수록 밑도 끝도 없는 말들의 연속이다.
그러니껭, 내가 그짝을 데리러 오기는 올 거여. 오늘이 아니라 사흘 후에 말이여.
사흘 후라고, 이건 더 황당하다. 언제부터 사후세계에 예약제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나. 익히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에 놀랄 뿐이다. 암튼 다 차치하고라도 나를 데려간다는 건 맞는 말이잖아.
내 나이 지금 마흔 하고도 여덟이다. 올해부터는 만 나이로 아마 한다지. 그럼 마흔여섯. 체 쉰이 안 됐다.
백번양보해 죽음에는 나이순이 아니니 그렇다 치자. 그렇다면 어디가 많이 아픈가? 이도 아니다. 그럼, 사람들에게 몹쓸 짓을 했나? 그럴만한 주제도 못 된다.
제가 무엇 때문에 사흘 후에 죽나요?
그야 저승 명부에 이름이 떡하니 올라 져 있으니 데려가는 거지
혹시, 잘못된 거 아닌가요. 저는 정말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거든요. 다른 사람들 등 처먹은 적도 없어요. 그렇다고 지금 몹쓸 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왜요? 왜 저인가요?
억울했다. 억울함이 저승사자고 뭐고 눈에 뵈는 게 없게 했다. 아무 말 대잔치같이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에…. 그러니껭 내가 그짝이 이렇게 억울해할까 봬서 이렇게 기간을 미리 알려 주는 거 아닌가.
우이씨, 지금 이것도 배려라고 뻐기나. 배려 한 번 기똥차네.
예고도 없이 비명횡사해 가족하고 작별 인사도 못해 한이 많이 맺힐까배 이리 미리 와 알려주는구먼. 그 짝이 아무리 억울허고 원통혀도 그라면 안되쟈. 내맨치로 죽음을 미리 알려주는 배려심 많은 저승사자헌티 고맙다고 넙죽 절을 해도 모자랄 판에 말이여.
이건 또 듣고 보니 저승사자 말에 설득이 된다. 정말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지, 그래도 죽음이 눈앞에 있다는데 어느 누가 ‘내 죽음 미리 알려줘 고맙습니다.’ 할까. 턱없다.
사흘 있다 데리러 올 텡께 이승과 작별 잘하소. 미련 냄기지 말고잉. 안 그럼 저승으로 가는데 탈 생깅께.
이 말을 끝으로 내 앞의 저승사자는 모습을 홀연히 감췄다.
나는 멍하지 저승사자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다 뒤늦게 따라붙은 생각에 잠긴다.
저승사자 말마따나 고마운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작별의 시간을, 나로 인해 섭섭하거나 서운했던 사람에게 사과할 수 있는 시간을 줬다. 누가 그랬던가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라고. 이승에서 나의 삶을 마무리할 기회를 준거다. 소중한 시간에 감사하자.
사흘이다. 사흘 동안 나는 무얼 해야 할까. 무얼 할 수 있을까. 갑자기 고민이 곱절에 곱절이 된다.
남의 편인 큰 사람은 쉰을 훌쩍 넘겼으니 스스로 알아 앞가림할 거다. 쪼금 슬퍼하다 금방 일어설 거란 말이다. 문제는 아직 열 한 살인 아들이다.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어리다고 하기엔 머리가 제법 컸고, 그렇다고 청소년이라고 하기엔 사리 분별이 어림도 없다. 그래도 책을 많이 읽었으니, 특히 어둡고 무서운 책을 많이 읽었으니 죽음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수월하지는 않을까. 내가 걱정하는 만큼 죽음에 대해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닌 게 아닐까? 이런 생각들로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그래! 우선순위를 정하자. 할 수 없는 것은 과감히 버리고 사흘 동안에 가능한 것만 골라 하자.
우선 먼저 도서관에 가자. 죽음과 관련된 어둡고 무서운 것은 됐고, 될 수 있는 한 유쾌하게 풀어낸 책으로 몇 권 빌리자.
집에서 최대한 편안하게 기대 누워 아들과 함께 읽자. 죽음이 생각만큼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나누자. 우선 이게 급선무다.
이별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고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시키자. 남들보다 성미 급한 엄마 탓에 조금 일찍 죽음을 알게 해 미안하다고 말하자. 많이 미안하고.
안쓰럽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 이후 함께 가고 싶었던 곳을 가자. 함께 먹고 싶었던 것도 마음껏 먹자. 많이 많이 해주고 싶었던 사랑한다는 말도 두 번 다시 할 수 없으니 마음껏 하자. 또 무얼 더 해주지. 그래, 마음껏 부비부비하자. 이제 제법 머리 컸다고 스킨십을 부끄러워해 아꼈던 포옹도 아낌없이 하자. 지금밖에 없다고. 너의 따뜻한 온기를 저승에서도 소중하게 잊지 않겠다고 말해주자.
마지막으로 무엇을 더 해야 할까. 그래 살아 있는 동안 장례식을 하자.
죽어 영혼의 눈으로 누가 왔나 안 왔나 따지지 말자. 누가 더 울었나 덜 울었나 양도 재지 말자. 죽어서까지 뒤끝 작렬하는 건 추잡스럽다.
살아생전 손을 잡고 악수하자. 서로의 마지막 온기를 나누자. 뜨겁게 포옹하자. 가슴이 맞닿아 서로를 향해 뜨겁게 뛰는 열기를 마지막까지 나누자. 이렇게 서로의 온기와 뜨거움을 간직하고 행복하게 이별하자. 그리고 나로 인해 상처받았거나 서운했던 이들에게도 전화를 하자. 미안했다고, 잘못했다고 말하자. 두고두고 마음에 짐처럼 무거웠던 마음을 버리고 떠나자. 이 마음 버리지 못해 죽어서도 구천을 떠도는 령(靈)이 되고 싶지 않다.
누군가 끝이 시작이란 말을 하지 않았는가. 이승에서 질긴 인연 미련 남기지 말고 싹둑 자르고 저승으로 가 새롭게 살아보자. 행복한 저승 생활로 언젠가 만나게 될 사랑하는 그들을 기다리자.
이 모든 것을 하기에 사흘도 짧지 않다. 충분하다. 나에게 남은 사흘 결코 그냥 흘려버리지 말자. 이승에서의 짧고 행복했던 순간들과 인사하자. 나 없이도 잘 먹고 잘 살아라고 외치자.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