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유죄

그냥 앉아 있었을 뿐입니다.

by 핑크뚱

유난히 붉습니다. 제법 혀끝을 얼얼하게 하는 매운맛도 있습니다. 얼마 전 동생 네에서 받아 온 햇 고춧가루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올해 김장을 포기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느 해보다 김치에 대한 갈망이 깊습니다. 마트에서 조금씩 사 먹으면 된다 생각했는데 고물가 시대는 주부에게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게 합니다.


저의 노동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배추를 샀습니다. 김치를 담그기로 했습니다. 마침 좋은 고춧가루도 있으니깐요. 여태 경험상 배추 절이기가 만만치 않았는데 이번에는 제법 잘 절여졌습니다. 양념도 재료가 좋아서 일까요 맛이 괜찮습니다. 신이 납니다. 잘 절여진 배추를 깨끗이 씻고 물도 잘 뺐습니다. 긴 밤 잘 숙성된 양념을 배추 사이사이 마르며 손이 입으로 계속계속 들어갑니다. 간을 본다는 이유입니다. 너무 맛있습니다.


김치통에 잘 담아 하루 정도 실온에서 숙성시켜 김치냉장고에 넣겠습니다. 조금 익은 김치가 먹고 싶어서입니다. 이제 뒷정리만 남았습니다. 설거지를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배가 아픕니다. 급합니다. 바로 화장실로 달려갑니다. 과했습니다. 간을 무리하게 자주, 많이 봤습니다. 제법 매콤한 김치가 예민한 장을 그냥 둘 리 없습니다.


배앓이하는 아이 배를 쓰다듬듯 아픈 배를 움켜잡았습니다. '또각' 소리와 함께 몸이 기우뚱했습니다. 정말 저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거짓말 아닙니다. 배가 아팠고 배를 쓰다듬었을 뿐인데 변기 커버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아찔했습니다. 황당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아무거나 군은 요즘 입버릇처럼 저에게 뱃살 공주님, 뱃살 공주님 합니다. 저의 통통하게 넘치는 배를 보며 하는 말입니다. 얼마 전에는 책을 읽는 제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리며 말했습니다.

"엄마는 유죄입니다."

읽던 책을 덮고 아들을 쳐다봤습니다

"엥... 뭐라는 거야?"

"엄마는 얼굴이 예쁘니깐 유죄. 살이 너무 많이 쪘으니깐 유죄. 모두 유죄입니다."


이때는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지만 둘이 웃고 넘겼습니다. 하지만 웃고 넘겨서 될 일이 아닌 게 되었습니다.

변기 커버 사태로 저는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입버릇처럼 하던 다이어트가 시급해졌습니다. 이러다 온 집안 기물파손죄로 고발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