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를 뽑으며

_가시가 박혀도 나무는 자란다

by 야간비행


슬픈 마음을 안고 집으로 오는 길에

전깃줄에 걸린 밤하늘 아래로

앙상한 가지에 걸린 은행나뭇잎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가로등 빛이 전깃줄 사이로 잘게 쪼개져

은행나뭇잎을 노랗게 비출 때

차가운 밤공기마저도

미지근하다고 느껴졌다.


내 마음과 다르게

거리는 아름답기만 하고

여전히 나는 배가 고프고

저녁거리 따위를 걱정하고 있었다.


"정신 안 차릴 거예요?"

오후에 들었던 날카롭게 가시 돋친 말이

내 몸 한편 어딘가에 깊숙이 박혀있었지만

나는 그가 가시 많은 나무임을 알고 있다.


불규칙적으로 뾰족한 가시를 세우는 것도

이따금 이유 없이 가시를 내미는 것도 안다.

하지만 한낱 가시나무임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나는 함부로 내 가시를 내어 주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날은 비극 같은 시나리오로

내 마음에 이유 없이 푹 찔러 넣지만

나는 그냥 불투명한 유리구슬의 형태로

알 수 없이 굴러가기만 할 뿐,


데굴데굴 정신없이 돌고 돌다 보면

내 안의 가시들은 다 닳고 닳아서

뿌리 깊은 단단한 나무의

거름이 되리라.


아스라이 연기처럼 바스러질 것 같은 날에도

나는 그냥 하염없이 굴러간다.

이리저리

너는 내 속도 모르고 눈치 없이 찌르겠지만


거대한 나무로 길러내기 위해

비옥한 가시들을 삼키고 또 삼키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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