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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산송이 Jun 12. 2022

'우리'의 뻔뻔함 1

힘든 건 '너', 좋은 건 '우리'

어김없이 요양원 스토리입니다. 어떻게 보면 2년이 채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들을 지나며 겪었던 많은 일들은 저로 하여금 참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한 것 같습니다. 세상에 얼마나 뻔뻔하고 못난 사람이 많은지, 그 반대로 내가 얼마나 내 실속을 못 챙기고 바보처럼, 순둥이처럼만 살아왔는지를 정말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이번 글은 빌드업이 꽤 깁니다. 타이틀에 적은 내용을 본격적으로 말하기 앞서 그 전에 설명해야 하는 사건들을 천천히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호흡 맞춰가면서 잘 따라와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요양원에서 근무한 지 한 6개월 쯤 됐을까요. 본래 '요양원 공익'이라 함은 요양원과 관련된 사무를 보조하는 게 본 역할인데, 요양원 사장님께서 '인건비 절약'의 느낌으로 저희를 이곳 저곳 마음대로 부려먹는다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르신들 들어드리고 옮겨드리고 온갖 뒷일 도맡아서 하는 거로도 이미 빡센 복무라고 생각했었는데, 하루는 사장님이 갑자기 저와 같이 일하는 형들을 불러모으고선 쌩뚱맞게 '망치'를 주시는 겁니다. 당시 일하던 요양원이 5층이었는데, 저희보고 10층을 올라가라더니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10층 건물 바깥에 가면 오래되고 낡은 타일들이 있거든? 그거 가서 망치로 순번 돌아가면서 깨."


엥? 하는 생각 뿐이더군요. 갑자기 10층 베란다에 가서 타일바닥을 망치로 깨라는 게 무슨 경우인가요. 당시 저희와 같이 일했던 요양원 국장님도 그 일에 같이 동원되셨는데, 화가 나기도 하고 이유를 모르겠어서 국장님께 이유를 여쭤봤었습니다. 국장님이 요양원에서 공익을 제외하고는 유일한 남자셨고, 오신지 얼마 안되시기도 했다보니 이런 노동에 자주 투입되셨었거든요.


 "국장님, 갑자기 10층 베란다 타일바닥을 왜 깨라는 거에요?"

 "사장님 말씀으로는 10층에다가도 요양원을 하나 더 지을 생각인데, 공사업체에 문의해보니까 건물 밖 베란다 타일이 울퉁불퉁하면 방수 바닥 작업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했다네. 그래서 지금 그 울퉁불퉁한거 망치로 깨서 평평하게 하라시는 거 같어."


얘기를 듣자마자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요양원에서 힘 쓰는 사람들이 없다보니 매일같이 어르신들을 들고 옮기는 노동을 저 포함 공익 3명이서 보조했었습니다. 어르신 돌보시는 보호사분들이 다 연로하셔서 힘 쓰는 사람의 도움이 절대적이었거든요. 근데 이게 어르신들이 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보니 체중 전체를 그냥 저희에게 맡기십니다. 한 마디로 엄청 무겁고, 허리 어깨에 부담이 굉장히 많이 갑니다. 그래서 공익 한 명이 더 있고 없고가 그 차이가 엄청 커요. 


이 업무만 하는 거만으로도 이미 에너지 풀차징이었는데, 맙소사, 공사 직원들을 고용해야 할 바닥 타일 깨는 작업을 인건비 아끼겠다고 공익들이랑 국장님으로 돌려막은 겁니다. 타일을 깨게 할 거면 요양원 업무를 아예 배제시켜주기라도 하던가, 그것도 아니었죠. 어르신 보조하는 일에도 인력이 부족해서 요양원 일은 요양원 일대로 해야하니, 국장님은 계속 타일 깨고, 공익들끼리 순번 정해서 돌아가면서 타일을 깨라는 거였습니다.


이렇게 초록색 방수 바닥 작업을 하려면 바닥이 평평해야 한답니다.

국장님께서는 본래 회사에서 고위직 맡으시면서 대접받으며 일하시다가 정년퇴직하시고 일자리를 찾아 요양원으로 오신 거였는데, 저희는 돌아가면서라도 깨지 나이 60 다 돼가시는 국장님은 종일 타일 깨고 계실 거 생각하니 너무 죄송스럽더군요. 


너무나도 하기 싫었지만, 국장님께서 묵묵히 하시길래 저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가 무작정 망치 뚜들기면서 타일을 깼습니다. 놀랍게도, 망치라는 위험한 도구로 일을 시킴에도 제공해줬던 보호장비는 단 한 개도 없었습니다. 그나마 목장갑 정도? 게다가 그 때가 9월쯤 되는 가을이었어서, 높은 층에선 바람도 엄청 불었었어요. 타일을 깰 때마다 흩뿌려지는 수많은 시멘트 가루들이 바람을 타고 제 눈을 쑤시더군요. 거짓말 아니고 눈 충혈까지 됐었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 타일을 깼을까요. 몸은 먼지 투성이에, 망치 내려치는 충격이 손에 그대로 전달돼서 손바닥은 다 퉁퉁 붓고,  바닥을 깨는 작업이다보니 계속 앉아있거나 허리를 굽히고 일을 해서 안 아픈 관절이 없었습니다. 과장이 심해보일 수 있을 거 같은데, 당시 어르신 들다가 허리랑 어깨에 무리가 많이 왔어서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삭신이 쑤셨었어요. 몸에 좋은 노동이 아니라, 몸을 망가뜨리는 노동이었으니까요.


그렇게 막노동을 끝내고 내려가자마자 어르신 점심 수발에, 휠체어 앉아 계신 어르신 침대 눕혀드리기에 아주 그냥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추가 노동을 했습니다. 면적은 넓은데 겨우 2-3명이서 진행하는 타일깨기가 금방 끝이 날까요. 이 루틴을 거진 일주일을 반복했던 것 같습니다. 


지나가던 초등학생도 '돈 아끼려고 사장이 머리 굴렸네.' 라는 걸 알 수 있을만큼 열약한 상황에서 막노동을 진행했었다보니, 속으로 온갖 불만과 화를 끌어안고 있었음에도 은근한 '보상'을 기대했었습니다. 기존 업무에서 완전히 벗어난 빡센 일을 시켰으니, 어떤 형태로든 -가령 그게 '공가' 든, 맛있는 음식이든, 조기 퇴근이든- 이 고생을 메꿔주는 리워드가 있겠지, 싶었던 것이죠.


하지만 그런 건 개뿔도 없었습니다. 망치를 돌려드리며 사장님께 일을 끝냈다고 말씀드리니 저를 쳐다도 안 보시면서 딱 한 마디 하시더군요.


 "어, 그래 수고했다."


이 이후로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최대한 근무지에 누를 끼치지 않고, 원만하게 생활하려고 노력했었던 게 오히려 이런 가당치 않은 막노동을 합리화시키는 빌미가 됐던 겁니다. 싫은 티도 내고, 불합리한 거엔 목소리를 냈어야 했는데, 이렇게 묵묵히 한다고 해서 나의 노력과 고생을 단 한 톨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야 했는데, 그걸 일하고 6개월이나 돼서야 비로소 느꼈습니다.


생각해보니 이번 일 이전에도 정말 어이없는 일들을 많이 시켰었습니다. 저 혼자서 요양원 베란다 창문을 전부 다 청소하라고 하질 않나, 정부 24를 가입해서 1층부터 5층 건물까지의 모든 상점과 이용시설의 면적을 뽑아내라는 일을 시키질 않나, 비 온 다음 날 10층 베란다가 물에 잠겼으니 그걸 큰 통 들고 가서 죄다 빼버리라고 하질 않나.. 할 때마다 '내가 대체 이 짓을 왜 해야하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근무 초반이었기 때문에, 굳이 얼굴 붉혀가며 2년 동안 지낼 곳에서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고 싶었기 때문에 다 참고 넘겼었는데, 이번 타일 일을 계기로 제 인내심의 한계점이 무너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정말 '아픈' 복무요원이었습니다. 고3 당시 '갑상선 기능 항진증'이라는 자가면역질환을 얻게 됐고, 그 뒤로 매일마다 약을 먹으며 치료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갑상선 항진증은 우리 몸의 신진대사에 관여하는 갑상선 호르몬이 필요 이상으로 분비되는 면역질환입니다. 겉으로 상처가 나거나 아픈 게 보이는 병이 아니다보니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질 못하는데, 항진증에 심하게 걸리면 몸이 굉장히 망가집니다. 가만히 있어도 신진대사에 관여하는 호르몬이 온 몸을 휘감아대니 늘 몸이 지치고 피곤하고 쳐집니다. 심할 땐 가만히 앉아있어도 심장박동수가 140을 넘고 그랬었어요. 온 몸이 무기력해지고, 더위도 굉장히 많이 타고,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 질환입니다.


물론 약물로 치료를 하고는 있었지만, 이게 몸 컨디션에 따라 확 나빠지는 타이밍이 자주 오는데 딱 저 9월 즈음이 제 몸이 악화되는 시점이었어요. 증상이 심할 때는 어르신을 드는 건 고사하고 제자리에 가만히 서있는데도 힘이 부치고 어지러웠습니다. 하지만 요양원 그 어떤 직원도 이걸 알아주지 않았어요. 겉으로는 멀쩡해보이는 데다가 저랑 같이 일하는 공익 형 2명은 모두 몸무게 미달로 들어온, 사실상 아픈 곳이 없는 공익들이라 '얘네들 아프지도 않은데 운 좋게 군대 안 간 놈들'이라는 프레임이 강했거든요. 겉보기엔 말끔해보이는 놈이 자꾸 힘없다, 아프다고 하니, 그냥 일하기 싫어서 꾀병 내지는 핑계를 댄다고 생각한 겁니다.


이대로 가다간 도저히 스트레스 받고 힘들어서 못 지내겠다고 생각한 저는 이 일련의 사건 이후로 '굳건한 결심'을 합니다. 같이 일하는 사회복무요원들끼리 말을 맞춰서 요양원에 정식으로 '불만을 제기'하자는 거였어요. 당시 같이 일하던 형들도 비규칙적으로 떠밀려지는 요양원 땜빵 업무에 굉장히 화가 뻗쳐있는 상황이었거든요. 저희 3명은 그렇게 일종의 '탄원서' 같은 편지를 적어 그간 우리가 느꼈던 답답함과 개선사항을 표출해보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호기롭게 시작했던 '탄원서 제출 플랜'. 하지만 제가 누굽니까. 세상 모든 '억까'를 끌어안는 살아있는 미라클 아닙니까. 이미 벌어진 일만으로도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제가 이번 주제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부분들은 바로 이 탄원서를 제출하기로 결심한 이후부터 시작됐습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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