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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산송이 Nov 19. 2021

'익숙함'의 무서움 - 상

나도 모르게 무뎌져가는...

가지고 있는 요양원 사진이라곤 요양원건물 옥상 하늘 사진 뿐이네요.

 다시 한 번 사회복무요원 시절 이야기입니다. 그렇게나 힘들어했던, 그리고 전역 전까지도 늘 요양원이 주는 낯설음에 놀랐던 저였지만, 정말 무서운 표현이 있죠.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어느새 요양원 패턴을 체화한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힘든 거랑 별개로 사시사철 요양원에서만 생활하다보니 그 곳에 익숙해지고 적응해버린 겁니다. 오늘 주섬주섬 꺼내 볼 보따리는 이 '익숙함'이 제 등 뒤를 서늘하게 했었던 경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요양원 근무를 시작한지 채 두 달이 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근무 중 하나가 점심시간 어르신들의 식사를 수발하는 것이었는데, 복무를 시작하자마자 식사수발을 해드렸던 어르신이 계셨습니다. 나이가 많으신 할머니셨는데, 치매증상이 심해 아무 말도 못하셨을 뿐 아니라, 고관절 골절, 다리 골절, 척추 휨, 욕창 등 온갖 병을 다 가지고 계셨던 안타까운 어르신이셨어요.

 

 비위가 강한 편이 아니라 처음엔 어르신 특유의 고약한 냄새와 흉측하기 그지없던 욕창 때문에 점심시간이 오는 게 제일 싫었었습니다. 그래도 꾸역꾸역 대답도 못하시는 어르신께 말씀도 드리고 친해지려고 노력하며 식사수발을 했고, 어느 순간에는 시키지 않아도 제가 알아서 어르신 식사를 도와드릴 정도로 수발이 편해졌습니다. 말이 도와드리는 거지, 제가 어르신 입 벌리는 타이밍을 순간포착해서 정확히 숟가락을 넣어야하는, 일종의 미션과도 같은 수발이었죠. 어쨌거나, 나름 어르신께 두 달 넘게 밥을 드리면서 있는 듯 없는 듯 정이 많이 붙었었습니다.


 그렇게 여느 때와 같이 요양원에 출근을 했는데, 어르신 침대가 칸막이로 다 가려져있더군요. 간호사 선생님들께서 정말 바쁘게 산소통을 옮기시고, 한 쪽에선 보호자분들께서 발을 동동 구르며 울고 계셨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 언젠가는 겪을 일일 수도 있겠거니 하는 생각은 있었지만, 막상 현실로 마주하니 그 섬짓한 이질감은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습니다. 응급처치 후에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으셨는지, 간호사 선생님들께서 어르신 침대를 급히 1인 치료실로 옮기시더라구요. 그 때 선생님들을 돕기 위해 어르신 침대로 가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안 그래도 마르셨던 분의 눈이 심할 정도로 퀭하게 움푹 들어간 모습, '핏기없다' 라는 표현이 정말 무서운 말이구나 싶을 정도의 창백하고 새파란 피부, 힘없이 축 늘어진 팔과 다리까지. 10초가 채 안되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때의 모습은 23살동안 겪은 그 어떤 것보다도 충격적이었습니다. 영화 속 죽어가는 사람을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공포감과 소름돋는 공기가 온 몸을 둘러싸더군요.


 놀란 가슴이 진정이 안 되어 당시 그 어르신 방을 케어하고 계시던 보호사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뭔가 어르신과의 접점이 있는 사람을 찾아가 놀란 마음을 덜어내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침대가 빠지면서 텅 비어버린 방 한 쪽을 치우고 계시던 보호사 선생님께 다가가 말씀을 건넸습니다. "제가 드리는 밥을 받아드셨던 분이 이렇게 자리에 안 계시니까 기분이 상당히 복잡하고 뒤숭숭한 것 같아요. 짧지 않은 시간동안 어르신과 정도 붙었는데, 어제만 해도 밥을 드시던 분이 이렇게 사라져버리니까 허무하고 무섭네요. 더 오랜 시간 어르신이랑 지내신 선생님께선 충격이 더 크시겠어요."


 겁먹은 햇병아리 주제에 누굴 위로하나 싶겠지만, 당시 낯선 광경에 정신을 못 차리던 와중에도 보호사 선생님께선 얼마나 힘드시고 안타까우실까 싶어 나름 용기내서 드렸던 위로였습니다. 24시간 내내 어르신과 함께 했던 보호사 선생님께서야말로 저보다 상심이 크실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인생에서 반전과 배신은 멀리 있지 않다고들 하죠. 순간 제 귀에 들려온 보호사 선생님의 말씀은 그 이후 제가 요양원을 바라보는 시각을 상당히 바꿔줬을 정도로 놀랍고 당황스러웠습니다.

 

 "갈 때 돼서 갔는데 뭘 그리 우울해하고 앉았어~! 아이고 난 이 어르신 때문에 너무 힘들었는데 잘 됐지 뭐."


 한 사람의 죽음을 '잘 됐다' 라고 표현하는 보호사 선생님의 말씀에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아무리 어르신 케어가 힘들었다고 해도 그렇지 저렇게 아무렇지 않아 하면서 오히려 홀가분하다는 듯이 행동하시는 게 맞는 건가. 핏기가 싹 가셔 마치 드라큘라 같았던 어르신의 모습, 짜증나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내가 드리는 밥을 열심히 드셨을 때의 뿌듯한 기억, 죽어가는 어르신을 보며 눈물 흘리는 보호자, 긴박한 분위기 속 적막이 맴도는 요양원, 그리고 이 모든 것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던하고 태연하게 빈 자리를 청소하는 보호사 선생님. 이 모든 게 복잡하게 꼬이고 얽히면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역하고 쓴 느낌이었달까요.


 불난 제 기분에 부채질 하는 건지, 치매 증상이 좀 덜하셨던 어르신 한 분이 제 옆으로 오시더니 혀를 끌끌 차며 보호자분들께 손가락질을 하고 욕을 하시더군요. "저 싯팔 것들 평소엔 한 번도 안 찾아오더니 지 애미 뒤진다니까 찾아와서 눈물 흘리는 거 봐. 저거 다 악어의 눈물이야 에잉 쯧쯧, 저 육시럴 것들."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는 애달픈(?) 보호자의 뒷모습을 저만치에서 바라보면서, 앞으로 요양원에서 더 보내야 할 1년 반이라는 시간이 끔찍하고 아득하게 다가왔습니다. 이제는 어느정도 적응을 끝마쳤다 싶었던 제 요양원 생활에 큰 타격을 입혔던 하루가 그렇게 무겁고도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하'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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