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적당한 불안이 주는 유익에 대해서 조언한다. 일상에 불안이 없어도 문제이고, 지나쳐도 불안에 마비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뭐든지 적당한 건 나쁘지 않아 보인다.
먼저, 불안이 우리 삶에 주는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자.
불안이 없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면 죽은 사람이다.
불안이라는 건 무언가 다가올 안 좋은 것에 대해서 내가 예측하고 그다음에 대비하려고 하는 일종의 초조함이다. 불안이 없으면 아무런 대비를 안 한다. 그런데 불안이 합리적인 행동을 가능하게 한다. 이성과 논리와 합리를 추구하는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합리적으로 만드는 건 지금 불안하기 때문이다.
불안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에 공감한다. 적당한 불안으로 오늘 나는 복직 전에 필요한 관련법을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고 있다. 복직 전 살 집을 구하고, 계약을 했다. 살 집에 필요한 물품목록을 작성하고 근무복을 세탁소에 맡겼다.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준비를 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불안은 비합리적인 감정 같아 보여도 결과적으로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해낸다.
지금 적절하게 불안해야 적절하게 시험 준비를 한다. 하나도 불안하지 않으면 시험공부를 안 한다. 죽을 만큼 불안하다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인간을 움직이게 만드는 게 불안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점 좋은 학생들, 공부 잘하는 학생들, 일하는 직장인들은 적당하게 불안하기 때문에 일을 잘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불안은 언제든지 움직이게 만드는 파트너이다. 불안이 없다면 인간은 죽은 존재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불안에게 영원히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이다. 불안의 노예가 되면 곤란하다.
과거 정신과 외래진료에서 불안장애로 인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환자를 만난 적이 있었다. 너무 과한 불안은 일상을 마비시켰다. 옆에서 특정 생각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환자에게 불안을 일으키는 생각은 실제하고 사실처럼 느꼈을 것이다. 여기서 불안은 인생에서 필요한 부분일 수 있지만 불안이 삶을 압도하면 문제가 된다.
두 번째, 불안 이용하기이다.
불안을 잘 쓰는 사람이 있다. 자이가르닉 효과는 수행이 잘 된 일보다는 미완성이거나 실수가 있었던 일을 더 잘 기억하는 증상이다. 미완성 효과라고도 한다. 완료 안 된 것들에 대해서는 계속 신경을 놓지 말고 긴장을 늦추지 말라고 하면 불안을 느끼게 된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나 과제를 더 잘 수행할 수 있는 원동력이 불안이다. 미션이 완료되면 긴장이 풀려 오히려 망각 상태에 빠질 수 있다. 불안이 에너지원이 될 수 있도록 불안을 적절히 관리해주는 능력이 필요하다.
누가 불안의 노예가 되는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무언가를 애당초 시작을 하지 못한다. 불안에 매번 져온 사람이다. 불안을 이용해서 나의 무기로 쓰는 사람이 있다. 불안에 매번 져서 불안이 예상되는 것만으로도 또 불안해져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우리 인간에게 평생에 따라다니는 필요악이 불안이다.
나는 불안의 노예인가? 아니면 불안을 이용해서 나의 무기로 쓰는 사람인가? 돌아보게 된다. 불안의 노예가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마비상태인 적이 있었다. 때로는 앞날이 막막하고 두려울 때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행동하고 움직였다. 불안을 나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기만 하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 달랐다. 바라기는 불안에 압도되기보다 불안을 적절하게 이용했으면 좋겠다. 불안과 맞설 때 지는 게임보다 이기는 게임을 해보고 싶다.
세 번째, 불안에 지지 않는 법이다.
불안을 잘 쓰는 사람은 불안과 친구하고 불안과 마주 앉아서 불안을 잘 부려야 한다.
일단 불안을 이기기 위해서는 내 삶에 불안이 늘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불안과 친숙해져야 한다. 불안으로부터 시선을 피하지 말고 직면해야 한다.
불안하다면 예전보다 더 잘게 쪼개라. 불안한 사람들은 모호하고 막막하니까 불안한 것이다. 불안하다면 ‘분할’하고 ‘구체화’하자. 예측 가능하게 잘게 쪼개라. 가장 만만한 걸 봐라. 그놈부터 조져라. 그놈을 확실하게 끝내버려라. 10%로 1승을 거둔다. 잘게 쪼개진 것을 해치울 때마다 에너지가 생긴다. 그 에너지가 바로 마음의 근력 같은 것이다.
불안할 땐 무조건 잘게 쪼개서 유치할 정도로 만만하게 만들어라.
불안은 모호하고 막막함에서 온다는 사실을 백번 공감한다. 그 막막함과 모호함을 해결하는 길은 구체화이고 쪼개는 것이다. 구체화되고 예측 가능하다는 것은 불안지수를 낮추는 좋은 도구가 된다. 지금 내 눈앞에 불안을 높이는 뭔가가 있는가? 그 상황을 구체화시키고 예측 가능하게 잘게 쪼개 보자. 그리고 가장 만만한 것부터 행동으로 옮겨보자. 만만한 것부터 행동으로 옮기다 보면 그다음 만만한 녀석이 보일 것이다. 점차 마음의 힘이 생겨 더 이상 불안은 방해물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불안으로 인해 내가 더 움직이고 있음을 인식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오늘 영상을 보면서 불안을 바라보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동일한 선상에서 불안을 어떻게 바라보냐에 따라 불안의 노예가 되기도 하고,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 가슴 아프지만 불안장애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특정 사고와 행동으로 인해 불안장애를 겪고 있다. 그들의 입장이 되지 않고서는 함부로 그들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설사 치료자의 입장에서 그들을 대면한 경험이 있었다 해도 차마 그럴 수 없다. 그들의 고통 섞인 메아리가 내 귓가에 들리기 때문이다.
불안을 바라보는 시각은 제각각 다르다. 우리는 다양한 매체와 책을 통해서 기존에 불안의 개념을 재정의하고 재발견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바로 눈앞에 복직을 앞두고 있다. 이 상황에서 불안을 잘 이용하면 에너지원이 될 수 있고 내 삶의 파트너임을 인정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불안이 내 삶에 그렇게 나쁜 요소만은 아니다.
아직까지 불안은 나에게 불편한 감정이다. 그럼에도 불안은 삶을 계획해서 움직이게 한다. 비록 두렵고 막막할지라도 만만한 녀석부터 맞서 싸워 이겨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