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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끼 Feb 24. 2023

도스토옙스키, 백야

온순한 여인

단편소설을 읽는 것에 맛이 들렸다. 도스토옙스키의 단편들도 읽어보고 싶어서 주문을 했다. 첫 번째로 수록된 '약한 마음'은 솔직히 별로였다. 도스토옙스키의 특유의 장황한 느낌이 유독 강했고 그에 반해 빵빵 터지는 느낌은 약해서 그런가 읽기 어려웠다. 하지만 첫 번째를 그렇게 스타트를 끊어서 그런가 오히려 다음 소설들을 읽기 수월했다. 표제목으로 선정한 '백야'를 먼저 언급해야겠다. 

페테르부르크의 몽상가가 나스텐카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사흘 정도의 이야기이다. 도스토옙스키도 이런 서정적인 글 쓸 수 있다!라고 생각이 들지? 하면서 츄라이하는 거 같았다. 소설 자체는 훌륭했으나 역시 도스토옙스키는 이런 서정적인 사랑 이야기보다는 좀 더 인간의 괴로운 내면을 표현하는 것에 재주가 있다고 생각한다. '백야'의 전체적으로 황홀한 꿈을 꾸다가 깨어나 그 황홀함이 이제 지나갔음에 애석한 느낌을 받았다. 페테르부르크의 몽상가가 나스텐카와의 사랑을 이루지만 행복은 정말 짧게 지나가고 나스텐카는 원래 약혼자를 보자마자 바로 달려가버린다. 조금 잔인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어쩌면 그는 단 한순간이나마 너의 심장 곁에 머물기 위해 창조된 것은 아닐까.....?"라는 이반 투르게네프의 문장으로 시작한다. 소설을 함축적으로 요약한 문장이다. 

정말 행복한 순간이 짧게 지나갔을 때의 그 애석함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백야'를 읽고 헛헛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백야'도 좋았지만 하나를 뽑는다면 '온순한 여인'을 뽑고 싶다. 사실 이 책을 거의 다 읽다가 스마일 라식을 하느라 일주일간 덮어뒀기 때문에 잊어버린 단편도 있을 거 같다. 하지만 '온순한 여인'은 퍽 강렬한 인상을 줘서 그런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뭔가 비슷한 심리상태를 겪어봐서 그럴 것이다. 

전당포 주인이 주인공인데 좀 악에 받쳐있는 느낌이 든다. 군에서 불명예 전역당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까? 하지만 장교 시절에도 그래 보이긴 했다. 아내에게 사랑을 표현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결국 아내는 남편을 증오하게 되어 죽이려 하고 그 과정에서도 침묵으로 대처했다. 결국 아내에게 진정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자신의 진심을 표현하지만 그때는 이미 아내는 남편을 사랑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남편의 사랑을 알게 되었지만 이제는 도저히 그를 사랑할 수 없음에 절망하며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주인공은 5분만 단 5분만 있으면 지나갈 감정이었다고 하지만 모르겠다. 운명이란 단 1초도 허용해 주지 않는다. 

나도 감정 표현에 솔직하지 못하고 침묵을 무기로 쓰며 상대방이 내 마음을 다 알아주기 바란 적이 많은 거 같다. 물론 소설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런 성향을 일부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흥미롭게 읽기도 했지만 두렵기도 했다. 솔직하지 못해서 생기는 오해라는 것이 참 안타까운 거 같다. 사람의 불행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솔직하지 못해서 생기는 불행을 더욱 애석하게 여기는 것은 내가 그래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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