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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 Sep 14. 2021

한 조각 땅의 책임 [헤르만 헤세의 정원 일의 즐거움]

헤르만 헤세 _ 정원 일의 즐거움




<데미안> <싯다르타> <수레바퀴 아래서>의 작가로 우리에게 친숙한 헤르만 헤세는 훌륭한 정원사였다. 그는 인생의 후반기를 대부분 정원을 가꾸고 보살피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는데 1차 세계대전 당시 애국주의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출판을 금지당하고 세인들에게 세상모르고 정원이나 가꾸는 사람으로 비난받기도 했다.



전쟁 이후 그는 스위스 시골 마을에서 심리치료를 받으며 꽃과 풍경을 그리기에 몰두했고 그때의 정원을 그린 시와 그림, 편지를 묶어 만든 단행본이 바로 이 책이다.








친구여. 한번 일주일 또는 열흘 동안 꽃병 속에 꽂힌 채 시들어 가는 백일홍 다발을 관찰해 보게. 그 후에도 꽃다발이 남아 있다면 매일 몇 차례 아주 자세히 살펴보게. 싱싱할 때는 더할 나위 없이 현란하고 황홀하던 빛이 이제 섬세해지고 지쳐 아주 부드럽게 바래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일세. 그저께만 해도 오렌지색이었던 꽃이 이제는 노란색으로 변하고, 내일모레쯤이 되면 얇은 청동을 입힌 듯한 회색이 되겠지.



친구여. 꽃잎의 뒤쪽도 세심하게 들여다보게. 줄기가 꺾이면 갑자기 꽃잎의 그늘진 면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그때 빛의 유희가 일어나고 천국으로의 여행이. 점점 더 정신적인 것으로 넘어가는 죽음이 일어나게 되네. 다른 꽃들의 세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잃어버린 색들이, 기이하게 광물의 빛을 띠고, 고산을 띤 녹색, 청동색으로 변화하면서 여기서 꿈을 꾸고 있다네.



친구여. 우리 동료들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 우리 같은 이들은 모두 사라지고 말 위험에 처해 있지. 미국 취향으로 변한 현대인들의 음악성이란 전축을 소유하는 것이고, 반짝거리는 니스 칠이 잘 된 자동차가 그들에게는 아름다움의 세계에 속하는 물건이 되고 말았거든. 그렇게 만족하고 즐기는 반쪽자리 인간에게 시험 삼아 한번 예술 수업을 해보게.



꽃이 시드는 것, 장밋빛이 밝은 잿빛으로 변하는 모습을 생생하고 감동적인 것으로, 온갖 생명과 모든 아름다움의 비밀로서 함께 체험하도록 가르쳐보게나. 겉보기에는 저렇게 둔감하고 저주스러울 만큼 건강한, 돈과 기계에 매달리는 인간이 바보처럼 행복에 젖어 한 세대 가량을 흘려보내고 나면, 그다음에 아마 그들은 의사나 선생, 예술가, 마술사들을 찾아가 많은 돈을 주고 자신들을 다시 아름다움의 비밀로, 영혼의 비밀로 이끌어달라고 요청하게 될 것이네.





"나는 유감스럽게도 쉽고 편안하게 사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는데, 그건 아름답게 사는 것이다." _303p




꽃과 나무는 그 이름만 들어도 마음 어딘가가 평온해지는 기분이 든다. 아카시아, 담쟁이덩굴, 히아신스, 카네이션, 튤립, 목련... 그의 정원에 초대된 기분으로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상상 속 정원의 모습이 글 너머로 보이는 듯하다.


헤르만 헤세는 아네모네를 심고 글을 썼다. 혼란스럽고 부조리한 상황에서도 봄을 기대하며 작은 정원에 콩, 샐러드, 레세다와 겨자 씨앗을 뿌렸다. 생명체의 덧없는 순환을 경험하며 앞서 죽어간 식물의 잔해를 거름 삼는다. 글을 쓰는 일과 아네모네를 심는 일은 같은 무게를 지녔을 것이다.








아주 이따금, 씨앗을 뿌리고 수확하는 어느 한순간, 땅 위의 모든 피조물 가운데 유독 우리 인간만이 이 같은 사물의 순환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사물의 불멸성에 만족하지 못하고, 한 번뿐인 인생인 양 자기만의 것, 별나고 특별한 것을 소유하려는 인간의 의지가 기이하게만 여겨지는 것이다. _17p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 말은 자연의 매력이 마음에 들고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기뻐하면서도 들판을 마구 짓밟고, 마침내는 꽃과 가지를 꺾는다 ... 그런 식으로 그들은 자연을 사랑하는 것이다. ... 그런 애정을 기억하면서, 자신들의 선량한 마음에 스스로 감동하는 것이다. _301p






<데미안>엔 사랑과 죽음이 반복된다. 몽환적이고 암울한 색채가 작품 전체를 지배하지만 주인공 싱클레어는 끝내 자신의 내면 성장을 목격한다. 누구나 한 번쯤 정신적 방황 속에서 길을 잃은 적 있을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발표된 <데미안>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 안의 목소리를 듣고,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그 힘은 여전히 유효하다. 싱클레어의 고통만큼은 아니더라도 나 또한 알을 깨고 날아가고픈 사람이기 때문이다. 헤르만 헤세가 이토록 울림 있는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백일홍 다발에서도 삶과 죽음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특별한 정원사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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