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올리지 못했다. 지역아동센터 돌봄교사로서 업세이를 연재할 야심찬 계획을 품고 브런치북을 그럴싸하게 만들어둔지 벌써 몇개월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현업에 있었기 때문에 혹시라도 신상이 밝혀질만한 내용을 올리고 싶진 않았다는 점이 가장 크겠지만, 한편으론 계약 만료가 올해 말이니 그때까지 아직 시간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젠 시간이 정말로 없다. 남편의 근무지 이전과 우리의 이사, 그에 따른 나의 결혼준비로 인해 생각보다 빨리 이 도시에서의 삶을 마무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퇴사일은 5월 31일로 확정되었다. 남은 날들에서 주말을 제외하면 정확히 15일이다. 다시 말해 내가 센터의 아이들과 지낼 수 있는 기간이 고작해야 보름밖에 남지 않았단 얘기다.
언제였던가. 내가 떠날 날이 정확치 않아 막연히 계약 만료 시점이 그날이 아닐런지 생각하고 있던 때였다. 몇몇 아이들의 공부를 봐주고 있던 차에 옆에 앉아있던 사회복무요원 한 분이 내게 물었다. "선생님은 계약이 언제 끝나시죠?" 그들이 내 일을 보조하고 있는 입장이라 궁금할 수 있겠지 싶었다. 아이들 앞이었지만 어차피 언젠간 알아야 할 거란 생각에 별다른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 "12월 31일 계약 만료에요." 그러자 바로 내 옆에 있던 3학년 여자아이가 더듬거리며 내게 물었다. "어...그러면...박쌤, 가요?" 아이의 눈동자 위로 대번에 물기가 차올랐다.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시울이 빨개지기 시작하는 걸 보고 '아차, 이런 말은 조심했어야 하는데' 싶었다. 아이는 끝끝내 내게 내년 여름방학 때 놀러오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서야 안심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여기서 넘칠만큼 사랑받고 있다는 걸 실감한 날이었다.
우리 엄마는 가끔 내게 말하곤 한다. 자신은 누구든 처음 만날 때 이미 그와 헤어지는 날이 어떨지를 생각해본다고. 하지만 나는 누군가와의 첫 만남에서, 그리고 사귐이 이어지는 내내 그와의 작별인사를 떠올려본 적이 없다. "나는 오래오래 이 사람 곁에 있을 거야."라고 의식적으로 다짐하는 것도 아니면서 이상하게도 항상 그렇게 된다. 당연히 헤어짐을 충분히 준비하질 못한다. 그리고 그와 헤어지는 날이 오면 슬퍼하거나 씁쓸해하거나 실망하거나 서운해하거나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도 여전히 만날 때 헤어짐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 편이 더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다. 한때는 엄마의 말을 따라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의 이별을 미리 준비하기도 했었지만, 그들에게 더 잘하게 되긴커녕 오히려 내 마음의 방어막만 더 두터워지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었다. 정답은 없다. 누군가에겐 작별을 의식하는 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그것을 의식치 않는 것이 각각 도움이 된다.
이곳에서의 직장생활은 불과 보름 남짓 남았을 뿐이며 내가 떠난다고 아이들에게 공식적으로 알리는 건 마지막 주 월요일. 그동안 나는 지금껏 내가 살아온 방식대로의 마지막 인사를 준비해야겠다. 그때까진 작별이란 단어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있을 거라는 뜻이다.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과 아무런 차이 없이 아이들을 평소처럼 대하겠다는 얘기다. 누군가를 만날 때 항상 헤어짐을 먼저 생각하라는 엄마의 조언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 내가 일년 반동안 몸담았던 이 센터뿐만이 아니라 내가 누리고 있고 앞으로 내게 생겨날 모든 관계가 다 똑같다.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사람들처럼 안심한 채로 나와 너 모두를 편안히 해주고 싶다. 끝이 없는 관계처럼 마음껏 좋아하고 사랑하고 안아주려 한다. 작별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