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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Nov 09. 2024

두 얼굴

2024 11 9

https://youtu.be/wqh9GKAtZzo?si=YAnYrrbUGh-0ug0T


 Stanley Kubrick


 이곳에 온 지 2년이 흘렀을 즈음. 아주 깊은 곳 파묻힌 듯했던 기억이 그 모습을 드러낸 때였다. 모래알 속 아직 쓸려가지 않은 것처럼.

 그들은 진주를 발견했다 말한다. 남쪽 정보기관이 내 있는 곳을 확인하게 된 때다. 그들은 여전히 글자들을 모으고 소리들을 모은다. 그게 그들 일상이라면, 집착의 채집에 매달린 끝에 겨우 손톱만한 조각 하나를 수집하는 게 그들 일이라지만, 그들 임무가 사람들에 무언가를 전하고 또  닿게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영화는 연극처럼 막을 올리고 청바지를 입은 한 미국인 관광객이 객석에 앉는다. 평양 시민들 사이에 낀 그 모습은.

 그는 그 영화에서 날 느꼈다 말한다. 그들에겐 새로운 발견이자 놀랄 만한 소식을 전해온다. 그 자의 이름은 리키였다.

 "감독 이름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내 심장은 크게 박동하고 요동치며. 날 가운데에 둔 조용한 전쟁이 시작된 걸 알았을 때, 순간 내 몸 속 돌던 피마저 모두 멈출 듯했으며.

 "무명이란 말인가?"

 이름 없는 한 남자가 평양 거리를 떠돈다.

 이젠 끼니를 거르지 않고 밥 먹는다. 맛없는 불고기가 나와도 먹는다. 이제 이곳 생활에 적응했다. 차를 몰고 달아나려다 붙잡혀와 몇 주간 근신 처분을 받았던 걸 제외하면 말썽 없이 지냈다. 유지신이 화장실에 갔을 때, 실수로 그가 식탁 위 올려둔 차 키를 몰래 주머니에 집어 넣었던 걸.

 집 앞 세워져 있던 차 문을 열고 무작정 운전대를 잡고 평양을 벗어나려 했던 것이다. 그때 그 시도를 도운 건 다치아 자동차였다.

 그 검은 차는 경로조차 알 수 없이 남쪽을 향해 달렸으며. 그 짧고도 긴 여정을.

 불도 켜져 있지 않은 터널을 지날 때, 무시무시한 포유류의 목구멍을 지나듯 요란한 소리가 울려대는 걸 들었고.

 초라한 한 건물을 스쳐지나고 그곳에 차 한 대가 세워져 있는 걸 본다.

 차는 결국 사리원의 한 포장되지 않은 도로에 멈춰 선다. 사치스럽게도 길바닥에 기름을 줄줄 흘리며 왔던 걸. 불을 붙이면 지나온 모든 기억을 태울 수 있을지도.

 하루 여섯 시간 또 교육 영상을 봐야 했고 한동안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그 해 10월 베이징의 스페인 대사관을 통해 탈북한 자가 평양 시민들 정보가 담긴 파일을 가지고 나왔는데 그곳에 내 이름은 없었다. 내 손에는 공민증이 쥐어지지 않았기에.

 그때까지도 그들은 해변에서 사라진 한 남자가 먼바다에서 떠밀려와 산 채로 나타날 걸 상상 못했을 테다. 차갑게도 그건 이미 관심 밖의 일이었음을.

 내 눈동자는 정처 잃은 듯 창밖 어딘가를 주시할 뿐이었음을. 그곳이 방 안이든 차 안이든. 난 그저 걷고 싶을 따름이었다.

 원하는 걸 먹고 식량을 배급받지 못해 굶주릴 염려도 하지 않지만 어딘가 허전하다. 또 외롭다. 그 도시에는 날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음에도.

 그 고양이는 날 알아봤을지도. 고양이 한쪽 눈은 인간들이 만들어 끼워 넣은 렌즈일지도 모르는 걸. 남은 한쪽 눈이 움직이는 대로, 나 또한 그저 고개 돌아가는 대로 세상을 볼 뿐이었는지 모른다.

 어느 길 나무 옆 앉은 고양이를 오래도록 주시했는데. 지금 내 모습 이 표정을 담아 그곳으로 보내달라는 듯 말이다. 그곳에선 그런 이야기들이.

 지하 술집, 호텔 라운지 같은 곳에서나 오고 갈 그런 여유로운 이야기들. 국가 가장 비밀스러운 집단이 북한에 몇 마리의 고양이를 투입시켰다는 그 이야기는.

 "여기 고양이들은 먹을 게 있습니까?"

 라 부장은 질문을 알 수 없어했다. 그 가여운 것에 대한 조그마한 걱정을. 그러고 보니 이곳에선 고양이를 처음 본 듯했다.

 "쥐나 벌레들을 잡아 먹지 않겠습니까?"

 고양이에게 밥 주는 사람도 없고, 그렇기에 그 가여운 몸을 불쌍히 여길 사람 또한 없는 것이다. 이들은 그 존재를 의심조차 않는 듯했다. 내 눈에는 그렇게만 보였음을.

 쭈그리고 앉아 그 동물을 관찰하고 실험하는 흰옷 입은 연구원들이 그곳에는 없었으며.

 "고양이 등은 예민하죠. 이렇게 등을 만지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라 부장은 그 모습을 이상하다는 듯 보고 있었는데.

 "제 오랜 친구가 가르쳐준 겁니다."

 그때 난 친구를 그런 눈 그런 시선으로 봤던지.

 그 자의 발목 형태로 한 인간을 기억한다 말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고양이들은 그렇게.

 라 부장은 그 얼룩덜룩한 고양이에 큰 관심 없는 듯했다. 묘하고도 또 묘한 그 동물을. 그와 난 그렇게 그 고양이 앞을 떠나온다.


 그들 모습이라 할 만한 배우는 찾지 못해 식당 주인은 등장시키지 않았고. 아랍인이 운영하는 식당, 저녁 8시.

 대신 우린 팔에 털 많은 남자를 찾아냈으며 그 팔이 불쑥 프레임 속으로 들어오는 장면을 그렸다. 끝내 실현시키고야 만.

 문 차장이 그를 만나기 위해 그곳으로 향하고. JD에게서 메시지 한 통이 도착한다.

 미국인을 연기할 배우가 필요했지만. 우주를 여행하다 인간 만나는 일만큼이나 힘든 일을. 그러다 마주친 그 모습이 되려 당혹스러운 감정처럼 서 있지는 않을지.

 그를 처음 봤을 때 난 그 남자가 키 크고 머리 노랗다는 걸 알았다. 장은호가 그를 데려와 내 앞에 세웠을 때, 하지만 그 얼굴이 내겐.

 그는 배우가 아니라 외무성에 소속된 자라는 걸 알았을 때 난. 무뚝뚝하게도 먼저 입을 열지도 손을 내밀지도 않던 그는.

 그 이름은 숀 클레멘스였다. 2차 대전 때 태어나 냉전시대를 경험하고 자란, 공산주의에 맞서 싸워야 한다 교육받은 그는 군인이 되어 그들에 총부리까지 겨눈다. 그는 조지 클레멘스라는 자다. 숀은 1962년 월북한 미군 출신 조지 클레멘스의 아들이었다.

 "인사들 나누십시오."

 그런 숀의 과거는 모두 지워진 듯 오직 클레멘스 선생이라 불릴 얼굴만이 남은 상태로. 심지어 그는 한글 이름까지 갖고 있었는데 흔한 이름이어서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 영어 발음은 어설펐고 연기력은 화면에 담기 힘든 수준이어서 괴로웠다. 무엇보다 그는 날 경계해 다가가기 어려웠으며. 턱이 앞으로 나올 정도로 고개 들려 있었고.

 그의 어머니는 도나라는 이름을 가진 루마니아인이었다고 한다. 그 여자는 죽고 없다. 자기 뜻과 상관없이 그곳으로 끌려간.

 그래도 그 얼굴에는 극적인 명암이 존재했기에, 그게 어쩌면 처음 구상까지 바꿔가며 그를 활용하려 한 결정적인 이유였는지 모른다.

 그는 말한다.

 "평양에서 그를 본 사람이 있어."

 "영화감독?"

 그렇게 그는 내가 쓴 한 문장을 읽으며 대사했고. 끝내 만족할 만한 연기는 아니었음에도.

 그 도시에서 그를 본 사람이 있었다는 그 말은, 그저 소문으로 취급되고 말.

 그들은 그런 걸 피워 올렸다 끄는 사이였으며. 두 사람은 각자 주머니에서 서로가 흥미로워할 만한 이야기들을 꺼낸다.

 "내 친구 조세핀이 들려준 이야기지."

 담배 많이 피우는 뚱뚱한 여자, 그 여자를 그런 식으로 떠올리곤 하던 나였음을.

 그 둥근 손목에 채워진 팔찌를 볼 때 난 안심했고. 그 여자 등을 뒤에서 보고 있으면 마치 늦은 저녁 TV를 켜고 소파에 반쯤 누운 듯한 기분을 느꼈으며.

 그 여자는 늘 그리 이야기했다. 영화는 꿈이어야 한다고.

 "JD라는 자를 알고 있습니까?"

 "미국 영상문화 사절단으로 파견됐다는데, 알 수 없는 거죠 뭐."

 그러고는 너털웃음 짓는다. 한편으로는 그들 만남을 지켜보고 감시하는 또 다른 눈들이 다.

 그들은 그저 친구 사이일 뿐이며, JD,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이었다. 쉬라즈에서 피자 한 판을.

 두 남자는 이제 우리가 이런 일로 만나는 것도 지겹다 할 만큼 가까운 사이였고. 자기 아내 자식들과는 그런 시간을 보낸 지 꽤 오래였기 때문이다. 그런 처지인 건 문 차장 또한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슬프고도 또 슬픈 그 장면을. 실은 자존심마저 팔아 서로 이익을 추구하는 게 그 세계의 일이었음을.

 문 차장 아내가 묻는다.

 "누구 만나고 왔어?"

 그러면 그는 말하겠지. 대학교 동창이라고.

 그들 역시 그런 일을 하기 전엔 알지 못했다. 물고기 한 마리를 기 위해 줄을 만들었는데 하나씩 이어 붙이니 결국 그물이 되고 말았던 걸.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리면 괜한 오해를 살까 맥주를 마시지도 서로 권하지도 않으며. 두 남자는 술도 마시지 않은 채 그렇게 깊은 밤을 보낸다.

 문 차장 머릿속에선 그 이름 세 글자가 지워지지 않고. 다음날 아침, 서류 한 뭉치를 손에 쥐고, 또 앉아 오른쪽 왼쪽으로 다리를 바꿔 꼬는 등.

 그들은 정치적 입장을 가져서는 안되는 자들이라는 걸 암시하기 위한 그 연출을.

 "그 감독이 거기서 뭐한대?"

 그 팔 다리를 꾸밀 옷도 필요하거니와, 그렇다고 날 노동하지 않는 사람으로 오해하지는 말길. 내 뇌는 매일 밤 초콜릿을 요구할 만큼 소모가 컸으니 말이다.

 때론 배우들이 멋진 말을 하도록 애쓰고. 본능적으로 난 영화 속에 내 흔적을 남기려 했다.


 난 여전히 꿈꾸고 있었다. 아직 포기하지 않았음을. 어떻게 하면 날 보게 할까, 그 떨구어낼 수 없는 지긋지긋한 본능을.

 그들이 날 짐작했다는 단서는 그런 것이었다. 한쪽 팔을 턱에 괴어 있던 그는 얼굴을 똑바로 세워 말한다. 내 시선이 그들을 향할 때.

 그 눈은 여기저기 앉은 각자 다른 주장을 하는 자들을 본다. 아메리카 대륙의 인간들. 조금씩 다른 법 아래 자신들이 서로 다르다는 걸 인지하는. 워싱톤 국장 아래 몇몇이 모여 토론을 벌인다.

 "몇 가지 근거가 있죠. 그는 늘 스탠리 큐브릭 연출을 따라 하려 해요. 그 영화 속에 그런 장면이 있었습니다. 두 남자가 머리 맞대고 대화하는 장면이 말이에요. 거의 닿을 듯이 말이죠."

 이 지구의 평화를 위한 일에 푹 빠진 자들의 이야기는.

 영화감독에게 카메라는 안경 같은 것, 그걸 벗으면 무엇도 또렷이 볼 수 없는 눈먼 자들의 이야기. 그래, 난 스탠리 큐브릭 목 동물이야! 그들 대화를 들으며 난 그리 읊조릴 뿐이었다.

 기울어진 두 얼굴이 머리 위 어딘가에 꼭짓점을 만드는 듯 형상하는 것, 그게 일생 이루어야 할 목표와 같은 것이었다면.

 "그게 이유가 될 수 있습니까?"

 나도 모르게 그런 무늬를 내 피부로 옮겨 살게 된 건지도.

 그에게서 배운 것들, 잊은 듯했던 그 영화 속 장면들을 다시 떠올리게 할 만큼 그 집요한 무리들이.

 내가 존경해마지 않던 그 영화감독은 과거 미 중앙정보부의 세뇌 실험 계획을 '시계 태엽 오렌지'라는 영화를 통해 풍자한다.

 "그가 한 일이 다시 영국 청소년들에 영향 끼치는 걸 우린 봤죠. 그 영화 구성의 묘는 수미상관 구조를 띄고 있다는 겁니다."

 서로의 유전적 성질을 쫓아 다시 처음으로 되돌리려는 그 본성을. 그렇다면 그 언어가 낳은 자들이 과연 누구였단 말인가.

 "영화의 첫 대사는 이렇습니다."

 '눈을 크게 감아라!'

 워싱톤 국장 두 눈이 시종일관 그 말을 심각한 듯 읽는다.

 "엔딩에서는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이 흐르죠."

 영화마다 한 번씩은 꼭 여자가 계단을 뛰어 오르도록 하고. 또한 반드시 등장하고야 마는 장면이었는데.

 훤한 집 갑자기 불이 꺼지는 일도, 그런데 그건 이곳의 전력 사정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결코 의도한 게 아니었음을.

 문 차장이 그런 날 확인하려 한다. 자기 부하 오른팔을 구내식당으로 부른 자리에서 그리 말한다.

 "지금 나한텐 바위와 보가 없잖아."

 그 앞에는 플라스틱 물 한 병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걔들이 보를 내게 할 수 있을까?"

 모두 밥 먹고 떠나고 없는 자리에서, 이젠 둘만 남은 텅 빈 공간 안에서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속이고 또 속인다. 모든 걸 의심하고 부정하라. 문 차장이 가진 철학이자 그 건물에 있는 모든 자들이 가져야 할 습성이었다.

 "친구 한 명이 있습니다."

 그들은 북경에 머무르는 한 보위부 요원을 포섭할 계획을 세우고. 그가 다시 북으로 가면 돌아올 땐 진정 스파이가 되어있길 바란 것이었다.

 "그 친구는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어합니다."

 어쩌면 그 친구의 친구도 꿈이었을지 모를. 평생 이어 붙은 인연들마저 버리고서라도. 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것처럼 다른 땅에서 또 피고 싶음을.

 믿음과 배신에 대한 걱정 희망은 그들 손을 떠난 지 오래였기에. 내 편이 적이 되어 올 때 무너질 그 감정을 부여잡는 법 또한 알게 됐기에.

 문 차장, 그는 더는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네 꿈을, 제3국에서의 삶을 우리가 지원하겠다고."

 지금쯤 그는 북경의 어느 쓸쓸한 거리를 걷고 있을지도.

 화면이 바뀌고 데이 워싱톤이 문을 연 뒤 걸어 들어오고. 커다란 문을 슬며시 밀치며 두 다리를 드러낸 그는.

 아프리카 땅이 품은 씨앗은 이제 그 모양이 조금 달라졌음을. 다른 냄새 다른 분위기가 전해져온다. 그는 앉아 에스프레소 한 잔을 주문하고. 그러고는 말한다. 자신에게 친구 한 명이 있다는 사실을.

 그는 평양에 있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를 안다 말한다. 또한 그곳에는 웃을 줄 모르는 얼굴이 있다고.

 "You know I'm saying?"

  에스프레소 잔을 쥔 손은, 그의 가늘고 긴 손가락은 마치 당기지도 않을 방아쇠를 그대로 둔 것처럼.

 그가 편지를 보내왔다. 평양에 있는, 아주 점잖고 근엄하기까지 한 자가 말이다. Dear my friend라 적은 끝에.

 '언젠가 우리 꼭 만나기를'

 모스크바 영화제에 그가 초청될 것이다. 차 한 대를 준비해달라. 우린 그를 떠나보낼 준비가 됐다.

 그 속에 든 다른 이야기들은 끝내 전해주지 않는 그였다. 그는 그 편지 속 글자들을 소중한듯 간직한다. 그들은 서로에게 안경을 선물하는 사이였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 편지를 주고 받는 사이다. 그 카페는 지하철 선로 아래의 할시 스트리트에 있으며, 데이 워싱톤은 그 거리를 걷다 자동차들 사이로 사라진다.

 JD는 연락을 기다린다. 좋은 소식이 들려오기를 말이다. 전화기를 주머니 어딘가에 넣어둔채 만지며, 침대 머리 맡에 두고는.


 내 몸은 그 부푼 꿈을 대신해 그곳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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