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바쁜 일은 거의 다 지났으니 토마토 모를 뽑아놓고 마르길 기다렸다가 집기들을 정리하고 모를 걷어내는 일만 남은 것이다. 모를 심고 열매를 수확하는 것은 때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힘든 것이지 근력으로 따지자면 내 키보다 더 큰 토마토 모를 뽑아내고 걷어내는 게 훨씬 힘든 농삿일이다.
다음 농사를 지으려면 정리마저 때를 맞춰야 해서 고된 노동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 엄마 아빠는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으실 테니 우린 우리 속도대로 쉬엄쉬엄 정리하면 될 일.
한시름 푹 놓고 한낮에 낮잠을 자는 게 얼마만인가.
몸이 고돼서 그런지,
아침에 일찍 일어난 탓인지,
점심을 먹고 나른해진 우리는
나란히 거실에 들어누워 낮잠을 잤다.
다음 날 식사를 하며 아빠는 나에게 500만 원을 주겠노라 했다.
남편도 떼놓고 와 3개월간 새벽 댓바람부터 하루종일 고생했는데 아빠가 이 정도는 해줘야지 않겠냐고. 그리고 이제 너도 집으로 돌아가야지 치우는 건 엄마 아빠가 쉬어가며 천천히 해도 된다고.
나는 크게 거절하지 않고 알겠노라 계좌번호를 적어주었다.
우리가 호주에서 제주도로 이사를 왔을 때도,
제주도에서 아산으로 이사를 했을 때도,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혼인신고만으로 부부가 됐을 때도,
아빠 엄마는 늘 금전적으로 도와주지 못한 걸 미안해하셨다.
오빠는 첫 차 살 때도, 결혼할 때도, 이만큼은 해줬는데, 나는 뭘 해준 게 별로 없다고.
다 큰 자식이 서른이 넘었는데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알아서 할 일이지 노후계획도 제대로 없으신 부모님의 돈을 받고싶지않았다. 그래서 한국에 온 이후 이것도, 저것도, 결혼식도, 해주겠다는 부모님의 말씀을 단호하게 거절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고생한 것 도 있지만 이 돈을 받음으로써 엄마 아빠가 나에게 미안해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내려놓길 바랬다.
대학에 가보니,
외국에 나가보니,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학자금 대출을 안고 20대를 시작하는지 알게 됐다. 나는 대학 등록금까지 당연한 몫으로 여기며 공부시켜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감사했다.
그렇게 주말을 기다려 친정집에 내려온 여보씨 손을 잡고 우리는 아산 우리 집으로 돌아간다.
아 내려올 땐 벚꽃이 흐드러지게 폈는데 올라가는 기차 창문으로는 녹음이 푸르르구나.
2017년 7월의 어느 날,
그렇게 여름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어렸을 때 엄마 아빠는 딸기농사를 하셨습니다. 집에는 생딸기, 얼린 딸기, 딸기쨈, 딸기음료가 늘 있었고 딸기를 많이 먹어 설사도 여러번 했죠^^;;
토마토 농사를 하시면서는 몇박스씩 보내주셔서 토마토도 원없이 먹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게 아닌데 당연하게 생각했네요. 팔아야 된다고 못 먹게하는 집도 있다고 그랬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