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페로, 야코프 그림, 빌헬름 그림 그리고 미상 씨 이렇게 네 명은 원고들에게 비슷한 이미지를 심어 많은 사람들에게 편협한 시선을 갖도록 만들었습니다. 특히 나이가 어려 아직 제대로 된 사리판단이 힘든 어린이나 청소년을 타깃으로 삼았음이 자명하게 드러났죠. 오늘 이 법정에 계신 분들도 원고들을 보자마자 어떻게 행동하셨습니까? 눈살을 찌푸리거나 욕을 하고 침을 뱉거나 손가락질을 하지 않았습니까?"
검사 측에 앉아있는 원고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험상궂다. 외모가 눈에 띄게 아름다운 여성도 있었으나 서늘한 눈매와 표독스러운 표정에 모두 묻혀버렸다.
"왜 이들은 공통적으로 만인의 적이 되어버렸을까요? 피고들은 마치 서로 짠 것처럼 저들을 악랄하게 만들어야만 했을까요?"
"재판장님. 지금 검사는 예술적인 표현과 상상력의 산물을 마치 거짓 뉴스를 배포한 선동자처럼 치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원고들이 저지른 행동으로 인해 진정 피해를 입었던 주인공들의 고통과 슬픔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가해자일 뿐 절대 피해자가 아닙니다."
변호사가 참지 못하고 나서자 검사 측은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반론을 이어나갔다.
"여러분. 엄마라는 단어를 듣거나 말하게 되면 어떤 느낌이 듭니까? 따뜻하고, 포근하고, 안전하고, 믿을 수 있고, 기대고 싶고 그렇지 않습니까?"
다들 수긍하는 눈치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검사가 강한 어조로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계모는 어떻습니까? 계모라는 단어가 여러분께 상기시키는 것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악독하고, 야비하고, 이기적이고, 추하고, 음흉하고, 계산적인 여성이 떠오르지 않나요?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미 유년시절부터 굳어진 그런 인상 때문에 '계모'는 일단 '나쁜' 새엄마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 원고들을 다시 한번 봐주십시오."
검사의 손짓에 따라 한 명씩 인사를 했다.
"신데렐라, 콩쥐팥쥐, 백설공주, 장화홍련, 심청전에 등장하는 분들입니다. 그들이 맡은 역할은 뭐였습니까? 새엄마였죠. 그런데 문제는 하나같이 새로 얻은 자식 그러니까 새로 맞은 남편의 자식들을 구박하고 못살게 굴거나 그것도 모라자 살인까지 저지르려 했습니다. 왜 피고 측은 이들에게 이런 프레임을 씌운 겁니까? 착한 새엄마는 어디 갔습니까? 새엄마는 무조건 나쁜 엄마입니까?"
변호사가 개입할 틈도 주지 않고 검사가 외쳤다.
"왜 괴롭힘을 당하는 '아들'은 없습니까? 왜 여자 아이들만 고난과 역경을 겪어야만 하는 겁니까? 같은 여자끼리 미워하고 헐뜯고 상처 입히는 이런 이야기를 만든 저의가 뭔지 저는 분명히 피고 측에 묻고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다들 남성처럼 보이는군요. 미상 작가님은 좀 애매하지만."
일어서려는 변호사 바로 옆에 앉아있던 작가가 저지하며 입을 열었다.
"저희 작가를 대신해서 잠시 제가 발언을 해도 되겠습니까?"
"네. 미상 씨."
재판장의 허가가 떨어지자 미상 작가가 일어나 법정 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이게 과연 여기까지 와서 판결을 받아야 하는 문제인지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가 유명한 동화 작가라서 그런 걸까요? 무엇보다 저희가 쓴 동화의 주제를 한번 잘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꿈과 희망을 가지고 힘든 시기를 버텨내면 좋은 세상이 펼쳐진다는 행복한 이야기지 않습니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인공과 그들이 이겨내야 하는 역경과 시련입니다. 새엄마들이 거듭 등장한 것은 한낱 우연에 불과합니다. 하나의 장치라고 이해해 주시면 좋겠군요."
검사가 급히 피고 미상 옆에 서더니 물었다.
"제가 드린 질문에는 답변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왜 등장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덧붙여서 아빠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죠?"
"두 분 다 그만 자리로 돌아가세요."
자칫 과열될 뻔한 분위기를 재판장이 정리하려 나섰다.
"혹시 증인으로 모실 분이 계신가요?"
검사가 손을 들고 증인 출석을 요구하자 재판장은 바로 수긍했다. 증인석에서 선서를 마친 남성에게 검사가 물었다.
"증인은 계모 밑에서 자랐죠?"
"네. 맞습니다."
"어떤 계모셨습니까?"
"예전에도 여러 차례 밝혔지만 무척 좋은 분이셨습니다. 특히 유머감각이 탁월하셨고요."
"증인의 성함이 어떻게 되신다고요?"
"링컨, 에이브러햄 링컨입니다."
장내가 잠시 술렁였으나 이내 가라앉았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저 계모라는 이유로 '새엄마'는 아주 오랜 시간을 핍박받아 왔습니다. 그 배경에 피고들이 만들어 놓은 캐릭터가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유명한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원고들은 매번 악한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자신이 낳은 딸이 아니라 해서 막연히 그녀들의 앞길을 막는 몹쓸 엄마라뇨? 이제는 계모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선입견에서 벗어나야 할 때입니다. 비록 원고들은 그 굴레를 벗진 못하겠지만 앞으로 저들과 같은 피해자가 다시 나오지 않도록 피고는 진심으로 사과하고 후배 작가들에게 주의를 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