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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Dec 20. 2023

무심코 던진 돌멩이

"원고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런 푸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말씀해 보십시오."


피고석에 변호사와 함께 앉아있는 그림(Grimm) 형제, 미상(未詳), 장자(子), 구전(口傳)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검사의 눈길을 피했다. 특히 장자는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니라고 여기는 듯 엉덩이를 들썩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인간들은 특정 동물을 업신여기거나 비하하는 일을 서슴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개'가 그 중심에 있습니다. 그 주변으로는 '닭', '붕어', '새', '돼지' 등이 자리를 잡고 있죠. 그런데 그런 동물들이 그런 취급을 받는 것에는 그럴듯한 이유가 존재하기도 합니다. 지능이나 외모, 행동 혹은 이미지에서 비롯된 경우입니다. 그런데! 원고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피고는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왜 아무런 근거도 없이 원고를 지금처럼 혐오스럽고 기피하고 싶은 동물로 만들었는지 그 저의를 솔직히 공개해 주시죠."


방청객들도 궁금해하며 피고 측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런 분위기에서 압박감을 느꼈는지 장자가 일어나서 외쳤다.


"저는 그저 [추수편( 秋水篇)]을 쓰면서 예로 들었을 뿐입니다. 사사로운 감정은 전혀 없었으며 그저 우물 안에서 흔히 보이는 원고를 누구나 알기 쉽게 가져다 쓴 것이죠. 그게 기분 나쁘셨다면 이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우물'과 '동해바다'는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그 크기에서 차이를 보이지 않습니까? 그저 그런 부분을 설명하기 위함이었음을 잘 헤아려주셨으면 합니다. 더불어 필요하다면 다른 방법도 찾아보겠습니다. 요즘에는 우물도 없고 하니......."


장자가 원고를 향해 고개를 숙이자 원고 역시도 같이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이 마땅치 않았는지 검사가 벌떡 일어나 자신의 의도에 따라 흐름을 바꿔나갔다.


"그림 형제와 미상, 세 분은 지난번에도 그 자리에 앉은 적이 있으시죠?"


"네."


"상습범이시군요?"


검사의 말에 발끈한 변호사가 판사를 바라보자 검사 측은 발언에 신중을 기하라는 주의가 주어졌다. 알겠다는 대답과 함께 검사는 발언을 이어나갔다.


"왜 왕자가 원고로 변해야 했는지 그 당위성에 대해서 해명해 주십시오. 그리고 왜 원고가 어머니의 말에 무조건 반대로 행동하는 패륜에 가까운 행동을 해야 했는지 납득이 가능하도록 밝혀주십시오."


무거운 침묵이 자리를 잡아가자 검사는 눈에 띄지 않을 만큼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방청객을 향해 돌아섰다.


"왜 마녀는 왕자를 개구리로 만들었을까요? 왜 공주는 처음부터 다짜고짜 개구리를 싫어했을까요? 여러분, 개구리가 그렇게 징그럽습니까? 선뜻 키스를 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며 그 정도는 참아내야 왕자를 만날 수 있다는 설정이 합당한가요? 원고는 그저 물과 곤충을 좋아하고 노래 실력이 뛰어난 작은 동물일 뿐입니다. 청개구리가 진짜로 어미의 말에 반대로 행동합니까? 냇물 옆에 묏자리를 쓰는 풍습이라도 가졌습니까? '개구리 올챙이 적 시절 기억 못 한다.'고요? 당신들이야 말로 그렇지 않습니까? 성공하고 나서 변하는 자들이 비지기수입니다. 왜 하필 개구리를 딱 집어서 그런 속담을 만든 겁니까? 개구리가 만만합니까?"


호흡을 고르며 이번에는 피고 측을 향해 몸을 돌렸다.


"혹시! 혹시 말입니다. 수영 잘하고, 점프 잘하고, 노래 잘하고, 눈망울은 크고 맑으며, 피부는 촉촉하고, 다리는 길고, 성형수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모습으로 삶을 누리는 개구리가 내심 부러워서 그런 표현을 한 거 아닙니까?"


헛기침을 하며 딴청을 피우는 피고를 두고 이번에는 판사를 향해 검사가 외쳤다.


"피고 측은 여전히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재판장님. 더 이상 수많은 동물들이 인간의 편협한 시선, 질투와 시기로 인해 고통받지 않도록 부디 현명한 판결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무심코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게끔 만들어주셨으면 합니다!"


검사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개구리가 가슴 위로 액자 하나를 들어 올리며 굵은 눈물을 흘렸다. 사진 속에는 사지가 바늘에 꽂혀 고정된 채 내장을 모두 드러낸 개구리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마치 구원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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