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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Jan 09. 2024

초등학생의 특이한 교과목

"버리고 와."


"싫어. 가져올 거야."


"쓸모도 없는데 왜 굳이 집으로 옮기겠다는 거야?! 정리할 때 얼마나 힘들고 귀찮은지 알아? 그리고 이번에 이사하면서 버린 네 책이 정말 어마어마했다고."


 방학하기 하루 전. 이미 한 학기 동안 전부 공부했던 교과서를 왜 부득부득 들고 오겠다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학교에 두고 오면 일괄적으로 모아서 폐기를 한다고도 하고, 학교 재활용 수거함에 버리면 잠깐의 수고로움만 감내하면 될 일을 무슨 심보로 그러는 건지. 가뜩이나 요즘 교과서는 종이질도 좋고 두툼해서 무겁던데.


 방학식을 하고 집에 일찍 돌아온 아이가 점심을 먹자마자 자신의 방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러려니 하고 소파에서 아내와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묵직한 무언가가 갑자기 제 옆에 후드득 떨어지는 겁니다.


 화들짝 놀라서 뭔지 확인해 보니 글쎄.


새로 나온 교과목이니? 그런데 천주학?^^ (출처 : 김재호)


 이러려고 낑낑거리며 교과서를 사수했던 겁니다. '국어'는 '무엇이든 물어보살', '수학 익힘'은 '천주학 익힘', '수학'은 '잠수함', '도덕'은 '비도덕'이 되었네요.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은근히 물어봅니다.

"요즘은 초등학교에서 잠수함도 가르친다고?"


"그럼~ 기본이지."

자신의 센스가 어떠냐는 듯이 웃는 딸을 보며 유치하거나 한심하기보다는 마냥 귀엽습니다.


"그런데 이런 장난을 칠 거였으면 그냥 겉장만 찢어서 갖고 오면 되잖아?"


"그럼 책 같지가 않아서 재미가 없지."


시적 표현이니? (출처 : 김재호)


"어!? 이게 뭐야? 이건 맞춤법이 틀렸는데? 이제 곧 6학년인데 '묶다'와 '묵다'를 아직도 구별 못해? 하룻밤을 어떻게 묶냐?"


"됐어. 흥! 어쩔 티뷔?"


 자신이 애써 작업한 결과물에 트집을 잡았더니 신경질이 났는지 아니면 내심 부끄러웠는지 쏜살같이 사라지더군요.


 그러고 보면 저도 어릴 때 교과서로 장난을 많이 쳤었습니다. '국사'는 '불국사'로, '미술'은 '마술'로, '체육'은 '제육' 등으로 말이죠.


 예나 지금이나 그 나이대에 유행하는 것은 거기서 거기인가 봅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저는 학기 중에도 저런 만행을 저질렀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책(교과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는군요.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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