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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Feb 27. 2024

밀려나는 자의 넋두리

우리라고 화려한 한 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영광의 순간이라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았던 그 시절.

잠깐이나마 나를 보기 위해서, 짧은 대화라도 하기 위해서

긴 줄을 선 사람들을 보면서 몸이 후끈 달아오르기도 했다.


지금은 차갑게 식어 홀로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지만

서운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세월과 세상의 흐름은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맡기는 편이 수월하다는 사실은 예전에 깨달았으니까.


요즘 동료들이 주로 일을 하는 곳은

장례식장과 편의점이다.

곡소리가 끊이지 않고

밤이나 낮이나 비좁은 곳에 처박혀 있어야 하지만

그곳에서 만큼은 아직 우리가 방귀 좀 뀐다.

우리를 써주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난다.


최근에는 명절에도 들여다보는 이들이 뜸하다.

예전에는 빳빳한 현금을 가득 채우고 쉴 틈 없이 손님을 맞이했건만

이제는 비슷한 처지의 동네 노인네들만 간혹 찾아오는 실정이다.

물론 그들이 반갑긴 하지만 씁쓸한 기분도 동시에 든다.

동병상련이라고 하면 좀 지나치려나?


편리한 것이 최고인 시대다.

나 같은 올드한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은 점점 쓸모를 잃어간다.

찾아오는 수고로움을 강요할 수도 없다.

그저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명맥이라도 이어가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래도 몸이 아프거나 컨디션이 좋지 못한 날이면

밀려드는 서운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잘 나가던 시절에는 나의 안위를 지속적으로 체크하던 

전담의가 항시 대기 중이었다.

내가 삐그덕 거리면 여지없이 달려와

내 상태를 살피고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는데.


외국에서는 아직도 내 몸값이 높다는 소문이 있다.

그래서 간혹 납치를 당하기도 하고

내 주머니를 털기도 한다는데

한국에서는 오히려

신종 범죄가 쉽게 일어나는 곳이라 여겨 꺼리는 눈치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지.

작지만 빠릿빠릿하고 

다재다능하고 스마트한 놈에게 

대부분의 자리를 내주었지만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내 방을 관리하며 누군가 찾아와 주길 기다린다.


어쩌면 곧 아이들에게

내 이름인 ATM (Automatic Teller Machine) 보다

기압의 단위인 atm (Atmosphere)이 더 유명해지겠지?

그나저나 오랜만에 내 이름을 봤더니 좀 쑥스럽구먼.

Automatic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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