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이는 이제 내가 데려가겠어!”
사자는 매서운 눈빛만큼이나 사납게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무슨 소리! 힘들게 여기까지 데려왔는데 너한테 그리 허무하게 빼앗길 줄 알아?”
할매 역시 사자의 기세에 눌리지 않고 당당하게 맞섰다.
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마치 그들의 대화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듯 자신의 일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 틈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누워있는 젊은 여성은 누가 보더라도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사자의 이빨과 발톱에서 새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싸움이라도 한 것처럼.
“다 신의 뜻이고 이 아이의 업보야. 나라고 좋아서 이러는 줄 알아? 사자에게는 사자의 역할이 있고 그것이 내 존재의 이유라고.”
금방이라도 아이를 집어삼킬 것 같은 어두운 기운이 사자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흥.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갓 태어난 아이의 목숨을 빼앗으면서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못 느끼는 거야? 그건 짐승만도 못 한 처사라고!”
할매의 목소리는 사자만큼 크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연륜에서 묻어 나오는 깊이가 있었다.
작은 방을 가득 채운 기계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연거푸 다급한 목소리가 오고 갔다. 젊은 여성은 바싹 마른 입술로 희미하게 기도를 읊조리며 옆에 서 있던 남자의 손을 꼭 붙잡았다. 남자는 나머지 손으로 땀으로 흠뻑 젖은 여자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걱정하지 말라는 말만 거듭할 뿐이었다.
사자의 차가운 손이 작디작은 손을 꽉 움켜쥐자 아이의 몸이 부르르 떨었고 연약한 심장은 금방이라도 움직임을 멈출 지경이었다.
할매는 사자를 밀쳐내려고 했으나 곧 힘이 모자란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이의 반대편 손을 잡아당기며 꼭 끌어안았다.
“내가 여기 있는 한 절대 못 데려간다. 이놈!”
할매의 온기가 전해지자 아이가 할매의 품으로 파고드는 동시에 사자의 손을 뿌리치려는 듯 버둥거리며 애를 썼다.
“너는 정녕 여기 모인 자들의 간절한 마음과 삶을 놓지 않으려는 이 아이의 가여운 몸짓이 보이지 않는단 말이냐!”
할매의 말에 다소 표정이 누그러진 사자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할매, 그만하라고. 할 일을 했으면 뒷일은 나에게 맡기고 더 이상 간섭하지 마. 누구보다 잘 알잖아? 그게 섭리라고. 이런저런 사정 다 봐주다가는 나도 굶어 죽는다니까!.”
“흥! 됐어. 우리도 이제는 변해야 한다고. 언제까지 그런 구닥다리 규칙에 얽매일 생각이야? 몇 천 년을 그렇게 해왔다고 앞으로도 그럴 필요는 없다고!”
그때 언제 그들 옆에 왔는지 모를 개량 한복 차림의 말쑥한 신사가 태블릿 화면을 들이밀려 근엄하게 말했다.
“싸움을 멈추시오. 당신들은 이번에 투표로 당선되신 제27대 옥황상제와 각료의 전달 사항을 아직 못 받았단 말입니까? 만 12세 미만의 아이에게는 건강한 삶을 보장해 주기로 했다고요. 출생률이 바닥인 이 나라에만 적용된 특별 긴급조치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지난주에 배포된 시행규칙을 반드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어안이 벙벙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멀뚱히 서있는 사자와 할매에게 신사가 다그쳤다.
"'저승'사자님! '삼신'할매님! 제 말 아직도 못 알아들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