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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Nov 02. 2024

벤담

 집 밖에 나서기 전 스마트폰을 통해서 오늘 하루에 대한 브리핑을 듣는다. '벤담'이라는 어플은 3년 전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더니 이제는 전 세계 대다수가 사용 중인 애플리케이션이 되었다.


 "오늘은 18.5퍼센트 행복할 것이며, 36.9퍼센트 불행할 예정입니다. 나머지 44.6퍼센트는 현재 변수를 계산하고 있지만 둘 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을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이번주는 계속 이런 식이다. 도대체 이번주의 행복은 행복을 누가 가져가버리는 것일까? 예정된 행복과 불행의 비율은 어긋나는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로 정확하다.


 기술의 발전은 인류에게 새로운 삶의 형태를 제시했고 이제는 그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얼굴 표정, 목소리, 심장박동수, 호흡 등을 분석하여 행복과 불행을 정량화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에서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공리주의로 유명한 철학자 '제레미 벤담'이 추구했다는 사상인데 '다수'라는 단어와 '행복'이라는 단어가 가진 모호함으로 인하여 그저 빛 좋은 개살구 마냥 실질적으로 활용되기는 힘든 이론으로 치부되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사용 중인 스마트폰과 도처에 설치되어 있는 CCTV와 카메라를 활용하여 사람들의 상태를 항상 측정하고 행동 패턴과 성격 등을 분석한 후 행동 지침을 내려주고 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목표로 행복과 불행을 적절하게 분배하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불만을 표시하기도 한다. 얼굴을 포함한 외형만으로 과연 사람의 내면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 과연 믿을 만 한가라는 의구심을 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거의 100퍼센트에 가까운 결과를 내놓았기에 그런 목소리는 금방 사그라들었다. 고도의 훈련이 된 사람이 감정을 숨기더라도 미세한 변화를 감지해 내는 센서와 무한에 가까운 데이터를 바탕으로 축적된 데이터는 그 속내를 완벽하게 간파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일부 음모론자 집단은 일부 권력자들이 행복을 독점하고 있다며 모든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나도 솔직히 그들의 의견에 조금 동조하는 편이지만 '벤담'을 운영 중인 회사는 기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일부 자료만 공표하며 그저 자신들의 투명성을 주장하고 있다. 정치인들이나 기득권들도 가끔 미디어를 통해서 본인도 평등하게 '벤담'의 울타리 안에서 관리받고 있다며 편집 없는 하루를 고스란히 공개하기도 한다.


 어쨌든 오늘은 다른 사람의 행복을 더 채워주기 위해 회사에 지각을 하는 루트를 이용해야 한다. 아침부터 기분이 상하긴 하겠지만 충분히 적응이 되어있어 그러려니 한다. 빈도가 떨어지긴 하지만 어떤 날은 행복이 과하다 싶게 몰리는 경우도 있긴 하다. 누군가는 불행했겠지만 그게 합리적이라면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오늘도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수치화된 행복을 믿고 살아간다. 내가 조금 더 불행해지더라도 더 많은 사람들의 더 많은 행복감을 위해 희생한다는 고결한 마음으로 기꺼이 나를 '벤담'에게 맡기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은 우울해하지 않는다. 내게 주어진 몫에 감사하며 타인의 불행과 행복을 함께 공유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받아들이고 있다.


 비록 오늘은 최대 다수에 포함되지는 않겠지만 곧 보상받을 날이 올 것을 알기에 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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