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중순께를 향하다 보면 한 번씩 한파가 찾아오곤 하지 않았나. 단풍 들고 선선한 바람 불어오는 데다 하늘까지 높고 쾌청하여 좋은 계절 가을이다가도 수능한파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두 볼을 스치다 이내 코끝까지 얼얼하게 하는 찬 바람, 겹겹이 입은 옷을 파고드는 때 이른 추위로 수능 때가 다가옴을 몸이 먼저 알아차렸다. 두꺼운 외투의 옷깃을 여며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시린 손을 주머니에 쑥 넣어 찬 바람을 가르며 출근하던 아침이면 으레 올 것이 오고 있구나 싶었고.
이래도 되나 싶은 이례적으로 푹한 가을이다. 아직까지도 반팔과 반바지도 종종 입다 보니 옷 정리도 어렵고, 애들 등교하는 차림새에 뭐라 코멘트를 주기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공기가 내려앉더라도 수능을 체감할 어떤 기운들을 찾지 못해 당황스러운 요즘. 모기 녀석들도 여직까지 살아남아 앵앵 대며 달겨드는 11월이라니 참으로 낯선 가을 아닌가.
수능이 다가올 즈음이면 옷장 속의 패딩과 시린 손끝을 녹일 핫팩이 생각나곤 했다. 진즉에 꺼낸 방한용품들로 무장하여 몰아닥친 수능한파를 가르고 꿋꿋이 걷던 이즈음의 풍경들을 작년에도 그렇고 올해도 찾아볼 수 없다.
내가 기억하는 보통의 수능날 아침은 그랬다. 수능한파로 세상도 수험생들도 꽁꽁 얼어붙어 마음이 절로 숙연해졌고, 12년 대장정의 마라톤 결승선을 눈앞에 둔 긴장한 수험생들은 언제나 짠했다. 사랑이 담뿍 담긴 보온 도시락을 들고 고사장을 향해 덤덤히 걷는 그 곁에 하얀 입김을 후후 내뿜으며 응원을 건네는 가족들과 후배들도 내 기억엔 애잔했다. 이미 걸어왔기에, 또 걸어가야 하기에 서로가 너무나 잘 아는 그 애틋함은 절절하게 끓었다. 수능한파와 극명한 대비를 이룬 따뜻한 응원들이 얼어붙은 마음들을 간신히 녹여 주었던 예년의 수능 아침,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던 것 같다.
올해 수능 당일은 아침 기온이 7~16도, 낮 기온 15~23도로 평년보다 높은 기온을 보이며 수능한파는 없을 것으로 기상청은 예보했다. 날씨가 비교적 따뜻하여 수험생들이 덜 긴장하려나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지구가 많이 아픈 것은 아닐지 내심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나의 그날로부터는 이제 이십여 년이나 멀어졌는데, 이제는 아이의 그날을 향해 달려가겠구나 살짝 떨리기 시작한다. 아이의 수능날이 이런 푹한 날씨라면 또 나름 다행이다 싶겠다마는, 11월이 11월 다울 수 있도록 경각심도 갖고 일상의 작은 수고들을 잊지 말고 살아야겠다 생각도 해보는 수능 하루 전날, 수험생들에게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수능 대박기를 전한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