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와 함께 걷는 기다림 (7)
기다리며 읽는 누가복음서, 대림절 첫 번째 주 토요일
“. . . 그런데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었는데, 예수께서 바리새파 사람의 집에서 음식을 잡숫고 계신 것을 알고서, 향유가 담긴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등 뒤에 발 곁에 서더니, 울면서,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발랐다. 예수를 초대한 바리새파 사람이 이것을 보고, 혼자 중얼거렸다. ‘이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저 여자가 누구이며, 어떠한 여자인지 알았을 터인데! 그 여자는 죄인인데!’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시몬아, 네게 할 말이 있다. . . 어떤 돈놀이꾼에게 빚진 사람 둘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또 한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둘이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돈놀이꾼은 둘에게 빚을 없애주었다. 그러면 그 두 사람 가운데서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대답하였다. ‘더 많이 빚을 없애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판단이 옳다. . .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것은 그가 많이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용서받는 것이 적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그리고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 죄가 용서받았다. . .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누가복음서 7:36-50)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습니다. 이름도 없이, ‘죄인인 한 여자’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그런데 지은 죄가 많은가 봅니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 많은 죄’, 그렇다면 그 사연 또한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은 그 많은 사연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죄인인 한 여자’이고 ‘죄 많은 한 여자’일 뿐입니다.
이 여인에게는 무슨 사연이 그리도 많았을까요?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쌓이고 쌓여 이름도 없이 ‘죄인인 한 여자’로 불릴까요? 한 여인의 삶이 그렇게 ‘퉁’쳐져도 될까요? 그 많은 사연들이 그렇게 간단히 ‘퉁’쳐질 수 있을까요? 그럴 수는 없을 텐데. 그런데 동네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저기 죄 많은 여자가 간다’, ‘저기 죄인인 한 여자가 있다’ 그렇게 말들을 합니다. 또 그렇게 여인을 대합니다. 동네 사람들에게 이 여인은 그 수많은 죄인들 중에 그냥 한 명, 그저 한 죄인일 뿐입니다. 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나는 관심도 없는, 나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한 죄인일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다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여인의 그 모든 사연을 이미 다 보셨고 들으셨고 아셨습니다. 그리고 벌써 이 여인의 모든 죄를 용서하실 작정으로 이 땅에, 그 동네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용서와 치유와 위로와 회복과 해방과 구원을 향한 여인의 간절함이 예수께 가 닿았습니다. 그렇게 소망이 주님을 만나 믿음으로 자랐고, 그 믿음은 사랑으로 피어났습니다. 구원은 그렇게 여인에게 왔습니다.
죄인이다, 죄 많은 인생이다, 그 몇 마디의 말로 어느 한 사람의 인생을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고, 그 사람을 다 안다 할 수 없고, 또 그래서도 안되는데. 왜 무슨 연유로, 어떤 상황 속에서 그랬을까, 서로의 사연 한 번 들어줄 짬 없고, 서로의 사연 한 번 보아줄 여유 없는 세상이면, 그것참 사람 살기에 고약한, 쌀쌀맞고 쓸쓸한 겨울 같은 세상일 것입니다.
‘쏟아진 물’처럼 있는 나의 그 사연을 들어주고 보아줄 분 오십니다. 찬 겨울 같은 세상에 따뜻한 봄으로 오시는 분과 함께, 우리 서로의 사연을 듣고 보는 짬을 조금 내는 대림절이면 좋겠습니다.
“주님, 나는 쏟아진 물처럼 기운이 빠져 버렸고 뼈마디가 모두 어그러졌습니다. 나의 마음이 촛물처럼 녹아내려,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나의 주님, 멀리하지 말아 주십시오. 나의 힘이신 주님, 어서 빨리 나를 도와주십시오. 아멘.” (시편 22:14,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