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와 함께 걷는 기다림 (6)
기다리며 읽는 누가복음서, 대림절 첫 번째 주 금요일
“너희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너희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너희 지금 슬피 우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고, 인자 때문에 너희를 배척하고, 욕하고, 너희의 이름을 악하다고 내칠 때에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아라, 하늘에서 받을 너희의 상이 크다. 그들의 조상들이 예언자들에게 이와 같이 행하였다. 그러나 너희, 부요한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가 너희의 위안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가 굶주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 지금 웃는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가 슬퍼하며 울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할 때에, 너희는 화가 있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예언자들에게 이와 같이 행하였다.” (누가복음서 6:20-26)
복(福)에서 화(禍), 화(禍)에서 복(福), 그 사이가 참 멀다, 각각 있는 그 자리와 위치가 너무 다르다, 복(福)이 화(禍)가 되고 화(禍)가 복(福)이 될 일은 전혀 없다, 복(福)은 계속해서 복(福)일 것이고 화(禍)는 계속해서 화(禍)일 것이다, 그렇게 오늘이 내일도 계속될 것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이 말씀이 누구는 오늘이 없는 내일의 위로와 위안을 주는 말씀으로만, 또 누구는 내일을 위한 오늘의 가벼운 겸손을 요구하고 자만/교만을 경고하는 말씀으로만 듣는 것은 아닌가요.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의 ‘뼈를 때리는’ 예수님의 말씀인데, 우리를 참 불편하게 만드는 주님의 말씀인데. 어느새 이것 저것 넣고 섞고 잘 세탁해서 영성화(spiritualization)하여, 듣기 좋고 나누기 좋은 그래서 소비하는 말씀이 된 것은 아닌가요.
이렇게 한 번 읽어 보면 어떨까요?
“가난하게 하는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도 가난하게 될 것이다. 굶주리게 하는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도 굶주리게 될 것이다. 슬퍼 울게 하는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도 슬퍼하며 울 것이다. 미워하고 따돌리고 욕하고 내치는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도 미움을 받고 따돌림을 당하고 욕을 먹고 내쳐질 것이다.”
그러나,
“부요하게 하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배부르게 하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너희도 배부르게 될 것이다. 웃게 하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너희도 웃게 될 것이다. 좋게 말하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너희가 기뻐하며 뛰놀 것이다.”
복(福)과 화(禍), 화(禍)와 복(福), 그 사이에 우리는 있습니다. 우리가 어느 길을 갈 것인가? 예수께서 그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예수께서 다시 그 길 보여 주시기 위해, 다시 그 길 되시기 위해 오고 계십니다.
“하나님, 나를 샅샅이 살펴보시고, 내 마음을 알아주십시오. 나를 철저히 시험해 보시고, 내가 걱정하는 바를 알아주십시오. 내가 나쁜 길을 가지나 않는지 나를 살펴보시고, 영원한 길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시편 139:2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