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와 함께 걷는 기다림 (5)
기다리며 읽는 누가복음서, 대림절 첫 번째 주 목요일
“. . . 예수께서 말씀을 그치시고,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깊은 데로 나가, 그물을 내려서, 고기를 잡아라.’ 시몬이 대답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밤새도록 애를 썼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대로 하니, 많은 고기 떼가 걸려들어서,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자기들을 도와달라고 하였다. 그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히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시몬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예수의 무릎 앞에 엎드려서 말하였다.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 베드로 및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은, 그들이 잡은 고기가 엄청나게 많은 것에 놀랐던 것이다. 또한 세베대의 아들들로서 시몬의 동료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다. 예수께서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그들은 배를 뭍에 댄 뒤에,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갔다.” (누가복음서 5:1-11)
‘저기 떠나가는 배’가 아니라 ‘저기 떠나가는 베드로’입니다. ‘나를 두고 떠나가는 배’가 아니라, ‘배를 두고 떠나가는 나’입니다. 왜일까요?
‘이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히도록 해주십시오’,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나 오늘도 빈 그물, 빈 배입니다. 만선의 꿈은 그냥 꿈이었습니다.
“깊은 데로 나가, 그물을 내려서, 고기를 잡아라.”
주님의 말씀대로 했더니 . . . 만선입니다.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고 배가 가라앉을 지경입니다. 이제 일이 술술 풀려 가기 시작합니다. 이제 주님만 꼭 붙잡으면 됩니다. 어디 다른 곳으로 가시지 못하도록 하면 됩니다. 바짓가랑이라도 부여잡고 ‘제발 여기 계십시오, 우리 곁에 계셔 주십시오, 길게는 아니어도 다만 얼마간이라도 여기 계십시오’ 떼를 써서라도 어디 못 가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
밤을 낮으로 알고 몇 날 며칠을 그물질, 노질을 하고 또 해도, 아무리 애를 쓰고 또 써도 빈 그물, 빈 배인 것이 두렵지, 잡은 고기 너무 많아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되고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된 것이 두려울까요? 더 크고 짱짱한 그물, 더 크고 튼튼한 배를 빌리던 사던 하면 될 일 아닐까요?
그토록 원하고 바라고 기도하고, 갖은 애를 쓰며 걷고 달리고, 드디어 그것을 손에 넣고, 그 자리에 앉고, 그 위치에 서고, 되고 싶던 그 ‘나’가 되었는데. 조금 더 하면,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 . . 그럼 정말 제대로 성공인데, 성공한 삶이 되는 건데 . . . 그런데, 뭐가 두려울까요? 뭐가 두려워, ‘제발 떠나 주세요’ 할까요?
소망, 기도, 믿음, 신뢰, 순종, . . . 그리고, 응답, . . . 그리고, 성공.
이 순서가 맞을까요?
여기 열린 문 앞에 멈칫하는 베드로입니다.
"이 문턱을 넘을까, 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맞을까, 나에게 열린 문일까, 아니면 나를 닫는 문일까?"
호사다마(好事多魔), 좋은 일에는 안 좋은 일, 방해되는 일이 많이 따를 것이니 조심하고 또 조심해라,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 어르신들 말씀 때문일까요? 좋은 일 앞에 항상 겸손해라, 그런 걸까요? 그러나 호사다마와 그리스도 신앙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럼 왜일까요?
내 손이 꼭 쥔 이 그물로는, 내 발이 딱 딛고 있는 이 배로는, 그것이 빈 그물이던 꽉 찬 그물이던, 텅 빈 배이던 가득 실은 배이던, 도저히 잡을 수 없고 담을 수 없고 모실 수 없는 주님이 지금 내 눈 앞에 계시기 때문이 아닐까요?
“주님께 나는 너무 초라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담기엔 내 배는 너무 작습니다. 감당키 어려우니 그만 나를 떠나주십시오. 내 배는 쳐다보지도 마십시오. 주님을 온전히 맞을 수 없는, 나는 죄인입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입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우리는 주님을, 주님의 사랑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럴 이유도 없습니다. 나를 부르시는 주님의 그 배에 그냥 올라타면 됩니다. 대신, 내 그물과 내 배는 거기 버려 두고 주님의 배에 타야 합니다. 사실 두렵다면 그게 두려운 것입니다.
그 두려움을 함께 조금씩 조금씩 덜어내는 대림절이면 좋겠습니다.
“주님, 내가 교만한 마음을 버리게 하시고, 오만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시고, 너무 큰 것을 가지려고 나서지 않게 하시고, 분에 넘치는 놀라운 일을 이루려고도 하지 않게 하소서. 내 마음이 주님 안에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시고, 젖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듯이, 내 영혼이 젖뗀 아이와 같게 하소서. 이제부터 영원히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게 하소서. 아멘.” (시편 131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