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遊)신부의 사순절 ‘함께 걷는 어둠’
사순절 다섯 번째 주간 목요일, 걸으며 읽는 마가복음서 (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 조심하고, 깨어 있어라. 그 때가 언제인지를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사정은 여행하는 어떤 사람의 경우와 같은데, 그가 집을 떠날 때에, 자기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서, 각 사람에게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명령한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저녁녘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무렵일지, 이른 아침녘일지, 너희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인이 갑자기 와서 너희가 잠자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 (마가복음서 13:32-37)
내 사전에 포기란 없다.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포기도 있습니다.
긴 겨울이 지나 감나무 드디어 잎 나오고 있는데 벌써 잘 익은 감 내 입 안으로 떨어지는 꿈은 아예 꾸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제 겨우 그 감꽃 예쁘게 폈는데 그 밑 어디쯤에 서서 입을 벌릴까 그 좋은 위치 찾을 생각도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 감꽃 하나 둘 지기 시작하는데 혹시 모르니 시험삼아 한 번 서 볼까 그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마침내 열매라고 할 수도 없는 것 하나 보이는데 누가 먼저 딸까 싶어 그 밑에서 입을 벌리고 서 있는 짓은 정말 시작도 않는 것이 좋습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포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저 감나무에 감이 열릴 때를 정할 수 있다면, 그 때를 알 수 있다면, 어느 가지에 달린 감이 떨어질까 알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떨어질 곳을 내가 정할 수 있다면, 포기는 없을 텐데.
그래서 포기를 모르는 나는 의지의 한국인입니다.
내 맘대로 시간을 정하고, 내 시계에 세상의 모든 시계를 맞추게 하고, 때론 늦게 때론 빠르게 나 하고 싶은 대로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글쎄 좋을까요? 그러나 그건 아마도 세상은 정지했고, 아니 정말은 끝이 났고, 용케 나 혼자만 살아 남았다는 뜻일 겁니다.
저기 감나무의 잎이 돋는다 싶게 멈추고, 감꽃이 피었다 싶게 지고, 그 감이 맺었다 싶게 땅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그 감나무 밑, 벌린 나의 입으로 떨어진 것은 설익은 감이고, 그 딱딱함에 나의 이빨은 죄다 부러지고, 내 코는 망가지고 깨지고, 내 눈은 스모키 화장한 쿵푸 팬더의 눈 되고, 엉망진창일 것입니다. 세상의 끝이겠지요. 종말입니다.
시계방의 시계
봄밤 어느 것이
정말인가*
지금 시간이 얼마나 되었을까? 이 밤 벚꽃놀이는 언제 끝날까? 여기 땅에 활짝 핀 벚꽃을 닮은 저기 하늘에 활짝 핀 불꽃들, 이 불꽃놀이는 언제 끝날까?
시계방을 기웃기웃, 아무리 그래봐야 주인 없는 시계방 지금 몇 시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쇼윈도 유리창에 비친 화려한 벚꽃과 불꽃, 그 사이를 애써 비집고 헤집고 들어가 그 안쪽 그 시계방 주인 맘대로 여기에 저기에 걸고 세우고 올려놓은 제각각의 시간을 가리키는 수많은 시계들, 제 아무리 쳐다보아도 지금이 언제인지 알 수 없으니 포기하고.
거기서 그러지 말고 그만 포기하고,
“깨어 있어라.”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 하시니,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 하시니, 그저 깨어있을 밖에 별 도리가 없다 말씀하시니. 벚꽃나무, 벚꽃 엔딩, 그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기 시작하면 어느새 봄이 한창인 줄을 알아, 그만 그 사 놓고 한 번도 못 입은 겨울옷은 잊고. 무화과나무, 그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을 알아, 그만 그 지난 벚꽃놀이 불꽃축제는 잊고.
거기서 그러지 말고 그만 잊고,
“깨어 있어라.”
깨어 있어, 이 봄밤, 그 고운 벚꽃 충분히 마음에 담고, 그 밝은 불꽃 넉넉히 눈에 담아, 남은 봄 포근히 지내고, 뜨거운 여름 제대로 채비하고, 맑은 가을 착실히 준비하고, 그리고 오는 겨울 따뜻하게 맞아야 겠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아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 때가 언제인지를 아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아니,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묻고 또 묻습니다. 듣고 또 듣습니다. 침묵 속에 잠잠히 기다립니다. 기도합니다. 분별(spiritual discernment)입니다. 그리고 믿음입니다.
시간을 정하시는 하나님,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 시계방 주인이신 그 하나님을 믿고, 서두르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고 크게 불안해하지도 걱정하지도 않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내가 걸어야 할 길을 걸으며, 내가 살아야 할 그 삶을 사는 것,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닐까, 벚꽃을 보며 드는 생각입니다.
벚꽃의 엔딩과 함께 사순절도 엔딩으로 가고 있습니다.
* 일본 시인 구보타 만타로의 하이쿠. 류시화의 하이쿠 읽기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