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遊)신부의 사순절 ‘함께 걷는 어둠’
사순절 다섯 번째 주간 금요일, 걸으며 읽는 마가복음서 (33)
“예수께서 베다니에서 나병 환자였던 시몬의 집에 머무실 때에,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는데, 한 여자가 매우 값진 순수한 나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그런데 몇몇 사람이 화를 내면서 자기들끼리 말하였다. ‘어찌하여 향유를 이렇게 허비하는가? 이 향유는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서,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겠다!’ 그리고는 그 여자를 나무랐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가만두어라. 왜 그를 괴롭히느냐? 그는 내게 아름다운 일을 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늘 너희와 함께 있으니, 언제든지 너희가 하려고만 하면, 그들을 도울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곧 내 몸에 향유를 부어서, 내 장례를 위하여 할 일을 미리 한 셈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마가복음서 14:3-9)
“아니 어쩌자고 그 귀한 걸 . . .”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1 데나리온이니, 300 데나리온이면 노동자의 1년치 수입에 해당합니다. 300 데나리온의 값어치가 있는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들이부었으니 지켜보던 사람들이 놀랄 만도 합니다. 비싼 값에 팔아 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도 있었는데 그 귀한 걸 허투루 쓰느냐고 여인을 나무랄 만도 합니다.
“아니 어쩌자고 그 귀한 걸 . . .”
어쩌자고 그 귀한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쏟아부었는지 이 여인의 행동이 사람들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향유가 든 옥합을 깨뜨리는데 그냥 보고만 계신 예수님도, 게다가 그 귀한 향유를 당신의 머리에 붓는데 말리지도 않으시고 가만히 계신 예수님도 이해가 가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귀한 걸 귀한 일에 쓰고, 좋은 걸 좋은 일에 써야지, 그런 말일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 귀한 걸 허비느냐, 왜 그 값비싼 걸 낭비하느냐, 왜 그렇게 허투루 쓰느냐, 왜 그런 쓸데 없는 일에 쓰느냐, 그런 말일 것입니다.
“아니 어쩌자고 그 귀한 걸 . . .”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어떻게 속임수를 써서 예수를 붙잡아 죽일까’ 하고 궁리하고 있었다.” (마가복음서 14:1)
한 쪽에서는 모여서 저들은 그랬답니다. 어떻게 하면 큰 소동 없이 예수님을 붙잡아 죽일까, 언제가 좋을까 그 궁리를 하고 있었답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그러고 싶지만, 이틀 후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예루살렘에 사람들이 워낙 많고, 게다가 사람들이 예수님을 저렇게들 좋다고 따르니 당장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 명절이나 끝나고 해야겠다, 그러고들 있습니다. 아주 난리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쪽에서는 웬 여인이 예수님께 다가와 옥합을 깨뜨려 그 귀한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들이붓는다고 불평과 불만에, 꾸짖고 나무라고, 투덜투덜 웅성웅성, 여기도 아주 난리가 아닙니다.
이 쪽도 저 쪽도 난리가 났습니다. 그리고 그 생(生) 난리 한가운데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아니 어쩌자고 그 귀한 걸 . . .”
“이 여인을 가만두어라. 그리고 저기 저들도 내버려두어라. 지금 이 여인은 내게 아름다운 일을 했다. 그리고 앞으로 저들은 내게 정말 아픈 일, 슬픈 일을 하려고 한다. 그러니 이 여인은 이 여인대로 가만 두어라. 그리고 저들은 저들대로 그냥 내버려두어라.
가난한 사람들은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늘 너희와 함께 있어 왔고, 또 앞으로도 너희와 늘 함께 있으니, 언제든지 너희가 하려고만 하면 그들을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고 또 도울 수 있으니, 괜한 내 핑계는 대지 말고, 가서 도와라. 사실 그게 나를 위한 일이고 또 나의 일이고, 그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고 기뻐하시는 일이니, 늘 너희와 함께 있는 그 가난한 사람들을 내 핑계 말고 하나님 일 핑계도 말고 도와라.
그런데, 지금 여기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지 않으니, 저기 저들이 저렇게 날 언제 어떻게 죽일까 궁리를 하는 중이니, 이미 죽을 날 잡은 것이나 진배없으니, 그리고 이 여인은 그런 나의 죽음을 어떻게 알고 왔는지, 그래서 곧 죽을 나를 위해 좋은 일, 아름다운 일을 하고 있으니, 그만 이 여인을 괴롭히고 가만두어라.”
곧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옥합이 깨뜨려지고,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고 그 값도 매길 수 없는 향유가 쏟아지려 합니다.
곧 깨진 옥합이 되고, 쏟아진 향유가 되실 분, 그리스도 예수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때, 깨지고 쏟아질 그때에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까요?
“아니 어쩌자고 그 귀한 걸 . . .”
“아니 어쩌시려고 그 귀한 아들을 여기로 보내셔가지고 . . . ”
“아니 어쩌시려고 그 귀한 아들이 고난의 길을 가는데 막지 않으시고 . . .”
“아니 어쩌시려고 그 귀한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게 그냥 내버려두시고 . . .”
“아니 도대체 어쩌시려고 . . .”
“복음이 전해지는 곳이면 세상 어디든지 이 여인이 오늘 한 일도 전해질 것이고, 사람들은 이 여인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여인은 주님의 이 땅에서의 마지막 여정,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여정을 준비하는 귀한 여인, 아름다운 여인이 되었습니다. 비록 주님 곁에서 그 길을 끝까지 따라서 갈 수는 없지만, 그러나 이 여인은 오늘 그리고 앞으로도 어떻게든 그 여정을 함께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다 소식을 듣고 순종과 감사, 그리고 두려움과 떨림 속에 준비하고, 마침내 때가 되어 온 몸으로 온 존재로 느끼고 알고 또한 그 오시는 길에 있었던 한 여인,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우리는 잘 압니다. 그 한 여인의 몸에서 당신의 첫 여정을 시작하셨던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그 아프고 외롭고 힘겨운 고난과 고통과 죽음의 여정이 쓸쓸하지 않도록 여기 다른 한 여인이 있습니다. 그 깨뜨려질 몸, 그 쏟아부어질 피를 대신해 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붓고 있습니다. 그 마지막 여정이 너무 쓸쓸하시진 않도록 그 가시는 길을 배웅하는 한 여인, 그 한 여인이 보여주는 이별의 정, 그래서 너무 외롭지는 않으신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압니다. 그 부활의 아침, 거기 빈 무대를 찾는 이들, 그 부활의 주님을 맞는 이 또한 여인이라는 것, 그리고 그 여인을 반갑게 맞으시는 예수님입니다.
그때 거기 예수님의 머리 위로 부어진 향유와 함께 전해지는 여인들의 향기입니다.
이 사순절이 끝나면 라일락 꽃 향기도 전해 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