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둑이야기
마당에는 폭신폭신한 백설기 가루를 뿌린 듯 따뜻한 눈이 한가득 내렸다.
목공소 천막이 지금은 볼 수 없을 것 같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달을 이고 있다.
여동생이 이름 붙여준 마당에 있는 기세네 집 개 황진이는 잠이 부족한지 졸고 있다.
주물공장을 하시는 아버지는 수금을 해오는 날 저녁이면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운다고 엄마랑 다투신다.
어디서 그렇게 기분 좋게 한잔을 하신 건지, 거나하게 취하신 아버지는 찐빵과 야채만두를 식지 않게, 가죽잠바 안에 넣어가지고 온 것을 꺼내어 눈 비비는 기세와 동생들에게 풀어 놓으신다.
왜 맛없는 야채만두를 이렇게 사 오시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기세는 동생들이랑 팥이 들어 있는 찐빵만 골라 먹는다.
기세는 야채만두 몇 개를 들고 마당으로 나간다.
황진이는 기세가 먹을 거를 들고 나오는 걸 아는지
졸다가 뛰어와 입을 벌리고, 꼬리를 살랑대며 빤히 쳐다본다.
선심 쓰듯 기세가 던져주는 야채만두를 뭐가 좋은지 황진이는 연신 한입에 넣었다 뱉었다를 한다.
누가 뺏어 먹기라도 하는 것처럼 욕심을 부리는 것처럼 보인다.
기세네 집식구는 5명인데 한방에서 잠을 잔다.
가족이 자는 방 옆에는 일하는 형들 방이 있는데, 형들 코고는 소리가 대단하다.
보름달은 목공소 천막 한참 위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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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들 방에서 나는 코 고는 소리가 잠잠해질 무렵.
방 미서기 문을 누가 조심스럽게 드르륵 열고 나간다.
“기세야 어디 가니?”
시커먼 그림자의 뒷모습을 보고 엄마는 잠에서 깨어 기세 이름을 부르신다.
아마 엄마는 기세가 화장실 가는 뒷모습처럼 보였나 보다.
근데 방 한쪽 끝에서 자고 있던 기세 또한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잠에서 깬다.
엄마는 아버지를 깨우고, 일하는 형들을 깨운다.
어느 사이 집집에 있는 아저씨, 아줌마들과 형들이 수돗가에 모였다.
아저씨와 형들은 기세네 주물공장에서 보기 흔한 쇠 파이프 등 공구를 하나씩 들고 있다.
마당 위에는 집집마다 들어갔다 나왔는지 발자국이 모여 변소 옆 귀퉁이로 나있다.
변소 옆 담벼락 구석에는 집집에서 가져왔는지
더블데크 카세트, 커다란 배터리를 묶어놓은 라디오, 소형 텔레비전, 지금에는 흔하지만 그때는 값어치 나가는 가전제품 등이 쌓여 있다.
모인 사람들은 변소 옆 담을 넘어 집 밖으로 나간 것을 확인하고, 가지만 앙상한 아카시아 길을 따라 교회로 나있는 길로 몰려갔다.
보름달이 아카시아 나무와 눈 내린 길을 비춰줘서 인지
교회에 있는 야외 변소로 나 있는 발자국을 쉽게 확인한다.
교회 변소 한 칸에는 집집에서 가져온듯한 가재도구와 가전제품 등이 쌓여있고,
한쪽 구석에는 겁에 질린듯한 얼굴 시커먼 형이 벌벌 떨고 있다.
주인 집 대청마루에 끌려온 형이 무릎 꿇고 있고, 아저씨, 아줌마와 형들이 둘러앉아 있다.
선생님에게 꾸지람을 듣는 거 같은 모양새다.
기세는 눈밖에 안 보이는 그 형이 안되어 보였는지,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야채만두 봉투를 그 형 무릎 앞에 놓고 엄마 뒤로 숨는다.
그 형은 사람들 눈치를 보는 거 같다.
주인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이자
기세가 가져온 야채만두 봉투를 기다렸다는 듯이 뜯는다.
기세가 싫어하는 야채만두를 두 손으로 마치 황진이처럼 먹어치운다.
이어서 쌍둥이네 아줌마는 쟁반에 라면을 끓여오시고 젓가락도 쥐어주신다.
뜨거워서인지, 목메서인지 닭똥 같은 눈물을 보이며 헛구역질을 하면서도 라면 국물마저 들이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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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파하고 운동장에서 실컷 놀다 집에 가니
마당에 사람들이 수돗가에 모여 있다.
하얀 얼굴을 한 처음 보는 형과 평상 위에 만두와 찐빵이 잔뜩이다.
아마 하얀 얼굴을 한 그 형이 사가지고 온 것 같다.
두런두런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만두와 찐빵, 그리고 아저씨들이 좋아하는 막걸리로 시끌벅적이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눈을 한 그 형이
기세 손에 야채만두 하날 쥐여주며 밝게 눈웃음을 짓는다.
기세는 이상하게 그렇게 싫던 야채만두가 이렇게 맛있는지 처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