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극장 이야기-
동네 형들이 하는 말 중에는 귀담아들어 좋은 쓸만한 이야기가 많다.
특히나 만홧가게 이야기는 기세 귀를 매우 솔깃하게 한다.
동네 멀지 않은 곳에 기세가 잘 가는 만홧가게가 있다.
기세는 요즘 출입이 잦아졌다.
이유는 단순히 만화를 보기 위함이 아니다.
만홧가게 아주머니와 친하면 좋은 일이 생길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그 좋은 일은 다름 아닌 극장 초대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초대권은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부쩍 자주 찾아가고 인사도 더 잘한다.
하루는 가게 아주머니와 어느 정도 눈에 익고 친해졌다고 생각했는지 용기 내어 여쭤본다.
“아주머니! 초대권을 혹시 얻을 수 있나요?”
아주머니는 “초대권은 있는데 몇 장을 살거니?”
‘초대권을 사다니?’ 동네 형들이 말하는 것과 사뭇 다르다.
기세가 다시금 여쭤본다.
“그럼 초대권 한 장에 얼마에 살 수 있나요?”
쉬운 아주머니 대답 “장당 50원”
극장 입장료보다는 엄청 쌌지만 기세에게는 호주머니를 뒤적여 봐야 할 돈이다.
며칠 동안 기세는 엄마에게 심부름시키실 일이 없는지 자꾸 여쭙는다.
엄마는 이유를 아셔서 그런지 빙그레 웃으시며 머리를 쓰담으신다.
칭찬도 받고, 잔돈도 생기고, 벌써 기세의 머릿속엔 초대권 생각만 가득이다.
성인이 되어서 안 사실이지만
집 근처에 있는 극장은 최근 영화를 한편만 볼 수 있는 일류가 아니고,
지난 영화지만 두 편이나 동시에 볼 수 있는 좋은 곳이다.
물론 한 번도 극장 구경을 못 해본 여동생에게는 원래 그런가 보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기세에게는 신나는 곳이다.
호주머니에서 고이 꺼낸 한 장의 극장 초대권.
기세는 여동생을 불러 자랑스럽게 두 손으로 쥔 초대권 한 장을 보여준다.
며칠 동안 여동생은 기세의 하녀 역할을 톡톡히 한다.
드디어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가는 날이 왔다.
기세에게 잘 다녀오라며 엄마가 여동생을 끝까지 당부하신다.
극장까지는 꽤 먼 거리지만 버스 타고 가기에는 차비가 아까웠다.
기세는 초대권을 꼭 쥔 것처럼 동생 손을 잡고 신나게 걸어간다.
매표소 앞에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드디어 순서가 되어가자,
기세가 갑자기 동생 앞으로 가서 자기 등에 업히라는 시늉을 한다.
의아해 하는 동생은 오빠 말에 충실하게 등에 업힌다.
동생을 엎고 몇 걸음 걸어 매표소 앞으로 다가간다.
국민학교 저학년인 기세에게 매표소는 상당히 높다.
기세는 발꿈치를 들어야 간신히 매표소 안을 볼 수 있었다.
투명한 아크릴 너머로 매표소 누나를 올려본다.
반원형으로 뚫린 사이로 기세는 동생을 업은 한쪽 손을 빼서 앞으로 뻗힌다.
이어 뻗힌 손을 펴자 꼬깃꼬깃한 초대권 한 장.
매표소 안에 있는 누나는 기가 막히다는 듯이 둘을 쳐다본다.
기세 얼굴 옆으로 업힌 여동생은 누나 보고 해맑게 웃는다.
(이러한 생각은 아마도 엄마가 여동생을 업고 버스를 타고 내릴 때
토큰 하나만 내는 걸 본 것 때문일 것이다.)
몇 초였지만 기세는 누나의 표정에서 뭐가 잘 안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기세에게는 얼굴이 붉어지기에 충분한 긴장된 시간이었다.
누나는 한숨을 쉬고 잠깐 주위를 살피더니 극장 안쪽으로 고개를 빨리 끄덕인다.
순간 기세는 내민 손을 내려 동생을 다시 한 번 더 들쳐엎고, 잰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간다.
극장에는 상영하고 있는 건 바로 그 당시에 인기가 많은 성룡이 나오는 무술영화 두 편.
그중에 취권은 부모님을 졸라서라도 꼭 보고 싶은 영화였다.
극장 좌석엔 지금처럼 번호 표시가 없던 시절.
꽤 많은 좌석이 군데군데 비어 있다.
그래도 기세는
한자리에 자리 잡고 앉아 칭얼대는 동생을 무릎 위에 앉혀 놓는다.
(버스에서 엄마가 여동생을 안고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처럼)
여동생 어깨너머로 헤벌린 멍해 보이는 입과 눈만 초롱초롱이다.
영화가 끝나가고 영화관 천정에 불이 켜진다.
영화 한 편을 다보고 난 사람들은 잠시 화장실에 향하면서 두런두런 영화와 주인공이야기로 무성하다. 다시 입장하는 사람들 손에 매점에서 산듯한 음료수와 먹을거리에 입가에 침을 연신 닦아내는 기세의 선망의 눈길이 꽂혀 있다.
기세는 영화관이 어두워지며 다음 영화가 상영될때까지 머릿속 긴장이 가득이다.
혹시 영화관에서 근무하시는 아저씨들에게 쫒겨날것 같은 두려움, 동생이 갑자기 화장실급하다고 해서 오며가며 들통날까봐 하는 괜한 두려움이 머릿속 그득이다.
사방을 살피는 기세의 고개와 달리 기세의 양손은 동생의 무게에 감각을 잃어가는 다리를 연신 주물러 대기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