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한국인 여성들의 이야기
흔히 파리에 사는 사람을 ‘파리지앵’이라고 칭하곤 한다. 프랑스어는 단어의 성이 남성과 여성으로 나뉘어 있어 ‘Parisien’은 파리에 사는 남성을 뜻하고 파리에 사는 여성은 ‘Parisienne’, 즉 파리지엔느가 된다. 결혼한 여성과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나누어 마담과 마드모아젤이라고 하는 구분을 없애고 똑같이 마담으로 부르는 추세처럼, 파리지앵과 파리지엔느처럼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 명칭을 없애자는 움직임도 있다. 언어에 성을 부여하는 특성을 이해하기 힘든 한국어가 모국어인 나는 성 구분이 없어지면 Le table인가 La table인가 고민할 필요가 없어 좋지만 때론 성이 나누어진 명칭은 효율적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제목처럼 말이다.
<Ses souvenirs, Peichen Chi>
학교를 다니는 동안 한국인 여성 유학생으로 졸업 후 어떻게 프랑스에서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컸다. 그 고민에서 이 인터뷰 프로젝트가 출발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인터뷰 대상은 나처럼 유학생으로 시작해 지금은 프랑스에서 자리를 잡아 일하는 한국인 여성들로 한정되었다.
대학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와 취업을 하리라는 애초의 계획은 프랑스에서 살며 점점 흐릿해졌다. 프랑스에 오기 전 마냥 품었던 환상은 깨진 지 오래였지만 나의 모국도 아니고 가족도 없는 이곳이 점점 익숙해지고 떠나기 싫어졌다. 하지만 언제까지 마냥 학생 신분으로 프랑스에 거주할 수는 없었다. 만료되는 학생비자도 비자지만 언제까지 부모님의 도움을 받으며 프랑스 생활을 이어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학사를 마치고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한국과 달리 프랑스는 대게 석사까지 마친 다음 취업을 한다. 4년 제인 한국의 학사 과정과 달리 프랑스는 보통 3년 과정이기 때문에 따져보면 1년 정도 더 공부하는 것이다. 또 석사 과정은 물론 학사 과정에서도 졸업을 위해 스타쥬(Stage, 인턴)를 하는 것이 의무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에서 보다 전공 분야에서 조금 더 빨리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취업난인 극성인 한국처럼 프랑스의 취업난도 만만치 않다. 스타쥬를 구하는 것도 그렇다. 그래도 ‘결국 어떻게든 구하더라’라고 말하던 교수님들도 팬더믹 이후로는 스타쥬를 에세이로 대체할 수 있게 해 주었으니 취업은 물론 스타쥬도 구하기 힘든 요즘 프랑스의 현실을 잘 알려주는 일화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본인의 능력을 살려 외국인이라는 핸디캡을 넘어 당당히 프랑스에서 일하는 한국 여성들이 있다. 가깝게는 평소에 알고 지냈던 이제 막 리치몬드에서 스타쥬를 시작한 언니부터 수업을 들은 적은 없지만 다니던 대학에서 강의를 했던 교수님, 파리 한국 영화제에서 무턱대고 말을 걸어 인터뷰 요청을 드린 프랑스 한국 문화원에서 재직 중인 분까지 그동안 내가 관심이 없었을 뿐, 조금만 고개를 돌려봤을 뿐인데 내 주위에는 이렇게나 많은 멋진 한국 여성들이 있었다. 감사하게도 이제 막 학사를 졸업한 학생의 인터뷰 요청에 모두들 흔쾌히 응해주셨다. 한 때 본인들도 했던 고민이라며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직접 몸으로 겪으며 얻은 노하우와 경험담을 가감 없이 공유해주신 일곱 분이 없으셨더라면 이 인터뷰 모음집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터뷰를 하며 먼저 프랑스에 나와 능력을 인정받은 한국인 선배가 있기에 자신들이 좀 더 수월하게 취업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글이 프랑스 취업을 꿈꾸는 분들과 이미 길을 닦고 계신 분들과의 단단한 연결 고리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