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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조 Sep 20. 2021

퇴사한 프랑스 회사에서 복직 제의를 받기까지 2

두 번째 만남 곽경혜

그렇게 회사를 그만두고 보르도에서 어학을 시작했는데요. 어학연수 생활은 어떠셨나요?. 


너무 좋았어요(웃음).


저도 어학 시절이 너무 좋았어요. 아무 걱정 없이 어학원만 꼬박 가면 되고 또 친구들과 짧은 불어로 놀기만 해도 뿌듯하곤 했죠(웃음). 


저는 퇴직금 덕분에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그땐 아직 유로 감각도 없었고(웃음). 또 어학을 6월에 갔거든요.


좋은 시기에 갔었네요. 


보르도 알리앙스 프랑세즈에 3개월 등록했는데, 그때가 유럽인들이 바캉스 겸 단기 어학연수로 많이 오는 시기거든요. 그래서 덩달아 저도 바캉스를 보내는 느낌이었어요. 점심도 레스토랑 저녁도 레스토랑... 그간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다 풀어버리고 불어도 즐겁게 배웠어요.


2년 전에 보르도에 짧게 여행을 갔었는데 도시가 예뻤던 기억이 나요. 프랑스의 많은 도시를 여행했는데 보르도처럼 야경이 아름다운 도시는 못 봤어요. 조명을 굉장히 건물과 조화롭게 잘 써서 물의 거리(Miroir d'eau)가 있는 부르스 광장은 해가 지고 나서 갔었는데 정말 아름다웠어요.


맞아요. 보르도 하면 많은 분들이 와인을 생각하시지만 도시 미관이 굉장히 아름다운 도시거든요. 그런 도시에서 연애도 하고 참 좋았죠(웃음). 


부르스 광장 (출처 https://www.musement.com/us/bordeaux/)



어학 후 파리 4 대학 도시 계획 석사 과정에 입학하셨는데, 학사와 석사의 차이가 있겠지만 한국에서의 대학 생활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학교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제가 다닌 학교를 비교해보면 일단 한국은 도시 계획을 공학적으로 접근하는데 프랑스는 이론 쪽으로 접근해요. 그래서 실용적인 면은 한국이 나아요. 프랑스 석사과정의 학생들은 정말 그 전공을 깊게 공부하기 위해 석사에 진학했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해요.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강의가 있기 때문에 열정이 없으면 계속 다니기 힘들죠. 또 한국에서는 대학원생들이 교수님 심부름도 많이 하잖아요. 프랑스 대학원은 그런 분위기는 아니에요. 대신 박사과정은 교수와의 컨택이 많기 때문에 한국의 대학원 분위기와 비슷하다 들었어요.


빡빡한 학업 일정 속에서도 중간중간에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들었는데 어떤 아르바이트를 하셨나요? 


가장 처음에는 여행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한국 여행사에서 현지 여행사에 손님들을 '토스'하면 호텔, 레스토랑 예약 등 전반적인 일정을 꾸리는 일을 했어요. 국내로 1박 2일로 여행 가는 것도 할 일이 많잖아요 해외여행, 게다가 단체 여행은 오죽하겠어요. 일이 정말 많았어요. 월급은 적게 받았는데 일 때문에 돈을 쓸 시간이 없어서 돈은 잘 모였어요(웃음). 그다음에는 오페라 근처에 있는 면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나라별로 부서가 나뉘는데 저는 당연히 한국부에 속했죠. 그 면세점이 한국인에게 유명한 면세점이 아니라서 매출 압박도 많이 받았어요. 일본인이 사장이었는데, 길거리에 나가서 호객 행위를 하라고 시키기도 했어요. 그래도 일이 잘 맞았는지 제가 일하고 난 후 한국 부서가 6년 만에 목표치를 넘겨서 보너스를 받기도 했어요. 그러고 나서 논문을 써야 해서 그만뒀죠. 


본격적인 구직활동은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학교를 졸업하면 남은 체류증 기간 동안 일을 찾아야 하는데 자칫하단 체류증이 만료됐을 때까지 취직을 못할 수도 있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잖아요. 또 당시 불어가 그렇게 유창하지 않았고 분야가 도시계획인데 외국인을 그리 반가워하지는 않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조금 더 안전하게 하고자 석사를 1년 더 연장했어요. 그렇게 논물을 제출하고 이력서를 90장 정도 보냈는데 95%가 거절이었죠.


면접까지도 못 간 건가요?


맞아요. 제 분야에서 면접까지 간 회사는 하나도 없었어요. 분야를 바꿔 국제기구에 지원을 할까도 했지만 이미 지원시기가 끝나 있었죠. 그때 심리적으로 압박이 심해 한국으로 돌아가려 했어요. 룸메이트에게 말해 방도 내놨었죠.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프랑스에서 첫 직장에 취직을 하게 되었나요? 


프랑스존이라고 지금도 활성화된 프랑스 한인 사이트에서 한국 의료기기 회사에서 영업지원 공고가 났길래 일단 지원을 했어요. 그렇게 면접을 보고 합격을 해서 다니게 됐죠. 면접을 볼 때 지금 내 비자가 학생 비자고 취업비자로 변경하기 위해서는 회사에서 내 월급의 한 달치를 세금으로 내야 하는데 해줄 수 있냐 물어봤는데 받아들여줬어요. 그렇게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취업비자를 가지고 일을 하게 됐죠.


그곳에서 어떤 업무를 맡으셨나요? 


당시 지위가 Assistant commercial(영업 지원)였으니깐 한국에서 하던 일과는 전혀 다른 일을 했어요. 인보이스 제작, 배송 스케줄 관리, 본사 연락, 매출 보고 등의 일을 했죠. 일단 프랑스에서 합법적으로 체류할 자격을 얻었으니 만족을 했지만 월급이 최저시급보다 아주 조금 높은 정도였어요. 당시 제가 한국 나이로 서른이었는데, 한국에서는 업계에서 알아주는 회사에 다니다가 여기 와서 석사까지 하고 최저시급보다 조금 더 높은 연봉을 받는 것이 그다지 달갑지는 않았죠. 또 보통 한국 지사는 팀이 작기 때문에 한 사람이 맡는 업무 양도 어마 무시하게 많아요. 포토샵도 해야 하고 홈페이지도 제작하고... 일이 많다 보니 실수가 많이 생겼는데 그러다 보니 자존감도 많이 낮아졌어요. 결국 생활 전반의 리듬감이 떨어지는 수준까지 달했죠. 그래서 법인장님에게 솔직하게 저는 당신들의 기대치만큼 못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고 Rupture conventionnelle라는 계약 파기 절차를 거쳤어요. 그렇게 프랑스에서의 첫 직장을 그만두게 됐죠.


이직할 회사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보면 무모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 그만두어도 당장의 체류는 보장되나요? 


당연히 돼요. 만약 1년짜리 체류증이 있는데 6개월 정도 회사를 다닌 후 그만둔 상태에서 후에 체류증을 연장할 때 실업 상태여도 연장을 해줘요.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에요. 실업 수당을 포함한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Pôle emploi라는 실업 기관에서 하는 프로그램에 성실히 참여해야 해요.


그렇군요. 두 번째 회사는 어떻게 취직하게 되셨나요? 


Pôle emploi 담당자가 기관과 파트너십을 맺은 취업 컨설팅에 가볼 것을 추천해줬어요. 사실 무료로 진행되는 컨설팅이라 큰 기대는 없었는데 거기 담당자께서 너무 열심히 제 CV(이력서)를 봐주셨어요. 이 부분은 없어도 된다, 이건 ~게 써봐라 열심히 조언해주셨죠. 그리고 그분이 가장 간단하면서도 쉬운 팁을 줬는데, 바로 영어 이름을 쓰라는 것이었어요.


한국에서는 이력서에 사실만 적어야 되잖아요. 나중에 그 사실이 문제가 되진 않나요?


저도 그 부분을 걱정했는데 담당자가 전혀 상관없다 이야기를 해줬어요. 계약서를 쓸 때만 신분증에 적힌 이름을 적으면 된다고요. 실제로 컨설팅을 받은 당일 저녁 시범차 조언을 얻은 대로 영문 이름으로 수정해 이력서를 냈는데 바로 다음 날 그 회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경혜님이 찍은 파리의 늦은 오후



좋은 일이지만 어쩐지 좀 허무하고 어이없네요.


맞아요. 이름 하나 영어 이름으로 고쳤을 뿐인데 그렇게 안 오던 연락이 바로 오다니...


그동안 한글 이름으로 냈던 제 CV들이 떠오르네요. 그래서 연락이 없던...(웃음)


그 후로 직장을 구하는 한국 후배들을 만나면 영문 이름을 쓸 것을 추천하고 있어요. 특히 이름이 어려운 경우에는 더더욱 그래요.


제 이름도 간단해 보이지만 프랑스인들이 절대 발음을 못해요. 특히 ‘희’ 발음을 여기 사람들은 굉장히 어려워해요.


제 이름은 난이도가 더 높아요(웃음). 


그렇네요. '곽'도 그렇고 '경'도 그렇고 하나도 쉬운 글자가 없네요. 그렇게 연락 온 회사는 어떻게 되었나요? 


프랑스에서의 저의 두 번째 회사가 됐어요. 전 회사는 한인 회사였으니 드디어 온전한 프랑스 회사에 입사하게 된 거죠.


어떤 회사인가요?  


BENE라는 회사예요. 가구도 만들고 사무 공간을 직접 설계도 하는 회사죠. 그렇기 때문에 AutoCAD(오토캐드)라는 설계 프로그램을 다룰 수 있어야 했는데 도시 계획을 전공한 저는 당연히 다룰 수 있었어요. 사무 공간을 설계하는 일은 작은 도시를 만드는 일이라고 볼 수 있기에 저의 전공과도 약간의 접점이 생겼죠.


설계 프로그램을 다룰 수 있다는 점, 영문 이름으로 수정한 점과 같이 전과 다른 점도 있겠지만 한인 회사에서 쌓은 경력도 취직을 하는데 도움이 됐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심지어 인터뷰 때 전 회사를 왜 그만두었다는 질문에 일이 너무 많아서라고 답하기도 했어요(웃음). 나중에 들어보니 본사가 오스트리아이기 때문에 영어를 할 줄 알아야 했고 앞서 말한 대로 건축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알아야 했는데 제가 두 사항에 모두 충족이 됐다고 하더라고요. 게다가 영업 지원 경력도 있고. 그리고 제가 한국인인데 일이 너무 많아 그만뒀다는 건 그 회사가 이상한 거라고...(웃음)



다음 편에 계속




인터뷰어 조소희 

파리 8 대학 영화과를 졸업한 후 단편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인터뷰이 곽경혜 @kate.in.paris

프랑스 생활 11년 차.

파리 4 대학 도시계획학 석사 졸업. 

현 오스트리아 가구회사 Bene의 프랑스 지점 운영책임자(Operation Manager)




사진 출처

배경 사진 <Ses souvenirs>, Peichen 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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