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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딘 Mar 12. 2024

그냥 이런 날이 있었지.

하루종일 아이와 함께 하는 소소한 일상.

 아이가 기존 어린이집에서 수료 후 1주일간 가정보육을 해야했다.

아침, 점심, 저녁 하루종일 쌩으로 아이와 붙어있을 시간이 생겨버린 것이다.

다행히 온전히 하루종일 보는 날은 단 하루였다. 하루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고, 다른 하루는 아내가 시간을 만들어서 함께 보내기로 했다. 그래도 아내는 내가 힘들까봐 오전에만 일을 하기도 해서 나름 괜찮았다. 단 하루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러나 그 다음 주 적응기간이 남아있어 아찔하긴 했다. 눈을 감으니 앞이 안 보이는 것처럼 아득했다.

그래도 단 하루 아이와 온전히 시간을 보낼 생각과 무엇을 할지 계획을 세우는 생각에 살짝 흥분되었다.


예전부터 여행을 갈 계획을 세울 때 꼭 흥분되었다. 분단위로 쪼개서 계획을 세우곤 했다. 늘 그렇듯 계획된 대로 이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음에도 오랜만에 계획을 세우는 것은 즐거웠다.


이번에도 그러했다. 이 주 전부터 아쿠아리움을 갈지, 바오가 이제 3월 4일에 떠난다는데 에버랜드를 갈지, 아님 그냥 롯데월드에서 하루종일 놀아볼지. 이런 거창한 것들이 생각이 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에버랜드는 안 가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전해 듣기로는 봄방학과 겹치면서 오픈런이 장난 아니었다고 들었다. 이런 저런 계획들은 모두 평소에는 엄두도 안 내던 계획들이었다.



지만 시간이 지나고 수료하는 시점에 와서는 나의 생각들이 전부 리셋이 되어버렸다. 당장 내가 하루를 바깥에서 온전히 보내야 함에 힘듦이 예상되었다. 감당하고 싶지 않아 졌다.


그럼에도 하루를 보내야 했기에 다시 계획을 수정했다. 새로운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 국민건강보험과 예방접종도우미 사이트를 통해 알아보니 다행히? 아이가 검진을 받아야 했고, 예방접종 주사도 맞아야 했다. 아이와 함께 해야 할 일들이 생긴 것이다.

당일날 가벼운 마음으로 아침을 먹이고 슬슬 움직였다. 집 주변에는 소아과병원이 없어 30분 거리를 걸어갔다.

도착해서 유모차에 잠들어 있는 아이를 깨우지 않고, 기다렸다가 접수를 하였다.

문진표 작성 등을 온라인으로 했는지 물어봤지만, 하질 않았다. 해야 하는지도 까먹고 있었다. 스마트하지 않아 육아가 가끔은 힘들다. 그래도 자리에서 있게 해 주셨고, 아이가 얌전히 있어 수월하게 검진과 접종까지 마쳤다.


"열이 날 수도 있어요."


마지막의 의사 선생님의 에 또 괜스레 열나면 어쩔지 걱정이 되었지만 오전을 잘 보냈다는 생각에 나름 뿌듯해졌다. 돌아오는 길에는 아이와 오랜만에 마트에 들러 가볍게 장도 봤다. 이제는 다시 부지런해질 시간이 되었다. 아침에는 간단하게 들깨죽을 끓여주었지만 점심 때는 구운 조기와 청경채 볶음을 비롯하여 기존 반찬들로 꽤 가볍게 점심을 준비했다.


점심 식사 후 설거지를 하고는 아이와 그냥 누웠다. 함께 잘 생각이었고 성공했다. 나는 1시간, 아이는 30분을 더 잠들고는 일어났다.


이제는 오후에 할 일을 찾아야 했다. 문득 아이가 어릴 때 종종 가던 집 근처 도서관이 생각이 났다. 따뜻하게 옷을 입히고, 부랴부랴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역시 유모차에 태우고 출발했다. 이 일을 계기로 디럭스 유모차를 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이기도 하고, 그래서 한동안 유모차를 끌일이 없어 당근 할까 했었는데 안 팔린 것이 다행이었다.


도서관 1층에 위치한 어린이 구역 내부에는 미취학아동들이 신발을 벗고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꽤 넓은 공간이 있다. 이미 많은 아이들과 그 부모 아니 아이 엄마들이 있었다. 그곳에 남자라고는 나와 남자아이들 뿐이었다. 신경을 안 쓰려 하지만 이런 상황들이 나에겐 약간 민망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아이와 한쪽에 가서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고, 이내 주변의 공기들은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그것도 잠시... 옆에 앉은 한 아이 엄마가 책을 읽어주기 시작하자 아이는 등을 돌린 채 그쪽에 집중했다. 씁쓸해졌지만 곧 극복하고 살짝 긴장했다. 아이가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살짝 거리를 둔 채 아이를 따라다녔다. 이곳에 있는 아이들은 꽤 어리기 때문에 어느 정도 놀이도 가능하다. 아이가 심하게 뜀박질을 시작하거나 큰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니라 지켜보기만 했다. 아이들이 갑작스러운 행동들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블랙박스를 달아놓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주의해야만 한다.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을 경우 앞뒤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큰 문제없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제는 저녁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최근 제일 좋아하는 간식을 샀다. 밤에 아이를 재우고 먹기로 마음먹었다.

집에 돌아와 어느덧 늘 지내오던 저녁시간을 아이와 보냈다. 아내가 돌아왔고, 아이는 그렇게 아내와 잠에 들었다. 이제야 나에게 평화로운 밤이 허락되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샀던 간식을 뜯어먹었고, 아주 꿀맛이었다.

하루의 고됨이 사라지는 맛이었고, 그렇게 아이와의 소소한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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