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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딘 Mar 07. 2024

울보아빠

ㄴr는 ㄱr 끔 눈물을 흘린ㄷr ....

ㄴr는 ㄱr 끔 눈물을 흘린ㄷr ....

청승맞다.



언젠가부터 매일같이 그냥 갑작스럽게 눈물을 흘린다

ㄴr는 ㄱr 끔 눈물을 흘린ㄷr ....


이렇게 눈물샘이 터지게 된 계기를 생각해 보면 아마 그때부터 인 것 같다.

평소와 다름없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여유 있게 점심을 먹으며 킬링타임으로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워킹맘 관련 미드였는데, 아기엄마가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 중에 곰을 만났는데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맨 몸으로 곰에게 소리를 치는 장면이었다.(그 곰은 도망갔다. 역시 엄마는 강하다)

그 장면에서 그런데 갑자기 울음이 터져버렸다. 온몸에 힘이 빠질 정도로 오열했다.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집안에 아무도 없었고, 그 장면을 본 것은 인삼이 밖에 없었다.


울고 있으면서도 내 지금의 모습이 너무나 궁상스러웠다.

별거 아닌 장면일 수 있는데, 그 부분이 무슨 트리거가 되어

여태까지 참고, 꽁꽁 싸매왔던 나도 피하고 모른 척했던 내 감정을 마구잡이로 풀어헤쳤다.

그 뒤로는 ㄴr는 문뜩 울컥하고, 자주 슬픈 감정을 마주한다.

 

그동안 눈물이 메말랐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사실 나는 잘 우는 아이였다.

어릴 때 엄마가 매를 들기만 해도 도망 다니다가 맞으면 꼭 눈물이 났다. 

사춘기가 되고부터는 울고 싶지 않아 몸부림쳐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냥 엄마가 화가 나서 매를 들고 때리기 시작하면 눈물을 흘렸다.

맞는 게 아파서 운건 아닌 것 같다.

초등학교 때나 중학생 때, 고등학생 때에도 학교에서 매를 맞을 때는 운 적이 없으니까.

유독 엄마가 때릴 때는 그렇게 울었던 건 나를 생각하는 엄마의 감정에 동화되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런 나의 내면을 아내는 어떻게 알아봤는지, 나보고 완전 F라고 한다.

(내 아내는 T가 분명하다. 진짜 우는 거 보기 힘든 여자. 대단해)

그런데 MBTI 검사를 해보면 꼭 T가 나온다. 

물론 인터넷에서 심리게임처럼 진행하는 MBTI검사 결과일 뿐이지만,

T는 좀 더 이성적인 사람유형이고. F는 좀 더 감정적인 사람유형으로 알고 있다.

생각해 보면 나는 판단할 때는 이성적인 편이지만 사실 모든 상황에 있어 매우 감정적인 것 같기도 하다.


신병훈련소에서 동기들과 훈련을 잘 마치고 나서 각자 교육을 받으러 헤어질 때도 나는 울었다.

왜 울었는지는 모르겠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전우애라는 것이 생긴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장례식장에서 엄마가 울면서 할머니를 보내드릴 때 같이 울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가족이라고는 근처에 우리 가족 밖에 남아있지 않은 외삼촌께서 암이 재발하셨고,

내가 병간호를 가서 식사시간이 되어 밥을 국에 말아 먹여드렸을 때 기도가 막혀 어이없이 돌아가셨다.

엄마는 나 때문이 아니라 해주셨지만 그때의 죄책감과 엄마에 대한 미안함에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났다. 그러곤 더 이상의 울음은 없다고 생각했다.


근데. 왜 나는 요즘 많이 우는 것일까.

나의 울음 버튼의 메커니즘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잘 모르겠다.


요즘 들어 나의 눈물샘은 신생아가 되었다. 거의 하루 한 번은 울음을 터트린다.

나도 적잖이 나에게 놀라는 중이다.

녹슬었던 수도꼭지를 새 걸로 바꾼 것인지, 아니면 그냥 수도꼭지가 망가졌는지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되어버린 시점은 아마 주부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하면서 인 것 같다.

 

괜히 아내에게 미안했다.

아이한테 미안했다.

부모님께 죄송했다.

장모님, 장인어른께 죄송했다

아니 미안해해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결혼 후 열심히 회사를 다녔다. 큰돈은 되지 않더라도 나름 열심히 돈도 모으고 적당히 아끼며 살아왔다.

집안 문제로 점차 모은 둔 돈도 쓰게 되고, 빚이 늘어났다. 이제는 직장도 없어졌다.

취업을 위해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고 있지만 연락 오는 곳도 없다.

그렇게 나는 무능한 남편이자 아빠가 되어 버다.

차라리 돈이라도 많았다면 이런 감정은 아니었을 것 같다.

아내를 고생시키고, 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부족하게 만드는 것이 나 때문이라 생각이 들었다.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쓸데없는 남편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주부일을 더 열심히 하는지 모르겠다.


고장 난 나의 눈물꼭지는 가끔 아이나 아내의 얼굴만 봐도 뚝뚝 흐른다.

한 번은 부모님, 아이와 시간을 보내며, 할머니묘에도 다녀왔는데

이제는 하다 하다 수많은 묘지들만 봤을 뿐인데, 그곳에서  수많은 슬픔이 있었음이 떠올라서 울컥했다.

같은 날 집에 돌아오는 길 아빠가 태워주셨는데, 밤길이 어두워졌다는 담담한 그의 말에 울컥해 버렸다.

그 얘기를 아내에게 하면서 결국 울어버렸다. 아내는 이런 나조차 보듬어 주었다.


곰에게 맨몸으로 소리치는 워킹맘 장면 이후 ㄴr는 ㄱr 끔 운다.

그때 그 장면이 떠올라 그다음 날에도 울었다. 그렇게 한바탕 혼자서 오열을 하고 나니 후련했다.

그때, 내 안에 응어리가 눈물로 쏟아진 것 같다. 그 이후에도 나는 자주 울컥한다

퇴근한 아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아이가 자고 있는 모습, 어느 날 문득 부모님 생각에,

인삼이와 산책하다가도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에 울컥. 이런 내 모습이 청승맞은 것 같다.

그래도 이제 조금 더 스스로에게 솔직해진 기분이 든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주부로 살아가는 엄마들의 육아스트레스가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모습이 나인 것이다. 밖에서 일하고 돈을 벌어야 책임을 다하는 사람인 것 같은 분위기. 집에 어린아이와 있으니 단어 수도 줄어들고 내가 없어지는 기분이 든다는 엄마들의 이야기들도 들었다. 사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도 이런 감정들을 쏟아낼 공간이 필요해서였다. 사람들이 몰라줘도, 가족들이 몰라줘도 내 마음을 내가 알아줄 수 있다. 나 스스로 고생했다. 말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나도 바란다.

요즘 부모님이 이제는 늙었다는 생각에... 나도 이제는 정말 어린 나이가 아니라는 생각들이 눈물 버튼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아이 앞에서 울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그래 나는 울보아빠다.

좀 울면 어떠한가. 울고 또 아이를 보면 그 눈물 쏙 빠지게 힘들어서. 언제 우울한 생각을 했었나 싶은 게 육아다.

그렇게 또 심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서지고 잘리고 꼭지밖에 남지 않은 당근이지만 다시 새싹을 틔우고 자라는 것처럼 나도 부러지고, 꺾여버린 마음이지만 다시 새싹을 틔우려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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