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딘 Mar 04. 2024

아이가 커서도 아빠로 남아있고 싶다.

아버지라 부르지 말아 다오.

학교에 입학을 하고, 졸업을 하면서 또 다른 삶이 시작된다면  그때뿐, 또 평범한 일상으로 곧 돌아왔다.

취업을 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듯 보이지만 역시 평범한 삶으로 돌아왔다.

결혼을 하고서도 역시 그러했다.

그저 그런 삶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날 나의 삶은 달라졌다.

삶이 평범하지 않아 졌다.

매일매일이 새로움이 있다.

아직 어려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사랑과는 다르게 아빠의 사랑은 천천히 만들어지는 것 같다. 아이와 엄마의 유대는 뱃속에 있을 때부터 시작되니 이미 10개월간 차이가 있을 것이다. 또한 신생아 때는 아빠가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많지는 않다. 씻겨주는 것, 분유를 주는 것, 안아주는 것. 육아서적이라든지 아기들의 발달과정에서 아빠라는 존재는 몇 개월이 더 지나서야 비로소 진정한 아빠가 되는 것이다. 이것도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칭호 같은 것이라 생각된다.


문득 자식 앞에서 부모님을 어머니, 아버지라 불러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아니 자식 앞이 아니더라도 서른 살이 지나마흔을 바라보는 나이 되었음에도 엄마, 아빠라 부르는 것이 합당한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초등학교 때 존댓말에 대해 배우고는 딱 하루 집에서 어머니 학교 다녀왔습니다. 아버지 다녀오셨어요.라고 했던 것 같다. 그 뒤로 다시 엄마, 아빠라 불렀지만 말이다.


엄마도 할머니를 엄마라 불렀다. 아빠는 할머니를 뭐라 불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반말과 존댓말에 대해 생각해 보니 엄마와 아빠에게 사용하는 존댓말이 달랐다.

아니 엄마에게는 존댓말보다는 반말이었고, 아빠는 계속해서 존댓말이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엄마에게 하는 말도 달라지긴 했다.

엄마에게 하던 "나 왔어."는 "왔어요."로 바뀌었다.

엄마에게 "배고파."는 "배고파요."로 바뀌었다.

사실 아빠하고는 대화를 안 했다. 특별한 날 외에는 할 이유도 없었다. 그저 인사만 잘하면 됐었다.


결국, 엄마가 아빠보다 친숙하고, 편하다. 그 차이다.


손주가 생기고 나서 엄마는 예상이 되었지만, 아빠는 예상하지 못한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요즘 아이를 부모님께 데려가면, 아주 좋아하신다.

손주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평생을 자식들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안 하던 아빠가 손주에게 사랑한다 표현을 한다.

한 번을 보지 못한 표정이 얼굴에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했다.


아빠도 저런 표정이 있구나. 아빠도 저런 말을 할 줄 아는구나.


그렇다고 섭섭하거나 하진 않았다.

지금에 와서 내가 듣고 싶은 말도 아니었다. 오히려 듣는 기회라도 생긴다면 내가 피하겠다.

하지만 만약 듣는 다면 나는 괜스레 눈물, 콧물을 쏟을지도 모른다.

이유는 모르겠다.

사실 엄마도 내가 다 커서야 가끔 사랑한다고 말을 하긴 했었는데 그것도 잠깐이었다.

어디서 들은 얘기가 있어서 그랬나 보다.

그 뒤로는 또 듣는 일은 없었다.


만약 아이가 크면서 존댓말을 배워 집에서 아버지라 부른다면, 나는 내 앞에서 절대 그렇게 부르지 말 것을 요청할 것이다. 명령할 것이다. 그러지 말아 달라고 애원할 것이다.

아버지라는 단어는 너무 친하지 않은 느낌이라 내가 거부할 것이다.

난 아빠와 다른 아빠이고 싶다.

아이에게 사랑을 늘 표현하는 아빠이고 싶다.

그래서 매일 몇 번이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아이가 커서도 아빠라 불렀음 좋겠다.

내가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아빠라 불렀좋겠다.

내가 죽어서도 아이가 아빠라고 불렀좋겠다.

나는 평생을 아이에게 아빠로 남아있고 싶다.

22년 12월달 첫 걸음마를 시도하기 위해 일어난다.



작가의 이전글 부모님 집에서 1박 2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