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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딘 Mar 20. 2024

가족의 중심은 언제나 바뀐다

하지만 나는 중심이 아니다.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다.

이런 소리를 정말 많이 들어보기도 하고 하기도 했던 것 같다.


얼마 전 아이의 어린이집을 옮기면서 적응기간을 가졌다. 그 기간 동안 아내는 같은 반 엄마들과 티타임을 가졌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적응기간이 끝날즈음 아내가 대뜸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다고 얘기를 꺼냈다.

엄마들끼리 얘기를 해보니 다들 먹고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면서도 그 안에서 아이를 잘 보살피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한다는 얘기였다.


모두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니 사는 환경은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각 가정들이 가지고 있는 크고 작은 문제들은 모두 다를 것이다.

또한 각 가정들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도 다를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 집의 중심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

아빠인 나, 엄마인 아내, 아이, 각자의 부모님, 돈, 혹은 반려견. 이렇게 생각을 해보았다.


먼저 아빠인 나는 처음 결혼하면서부터 전반적인 운영자로 활동해 왔다. 집의 재정상황들을 조절하고, 필요한 건 무엇이 있는지 살피고, 없으면 구매하고 등의 일을 한다든지, 반찬, 국 등을 만들어 둔다든지의 일들을 한다. 지금의 재정상태가 좋지 못한 것으로 보아 실패한 거 같긴 하지만 말이다.


다음으로 아내는 어쩌면 우리 집의 실세이며, 행동대장이다. 나는 고민할 일들을 거리낌 없이 실행에 옮긴다.

여기까지 적어보니 이 글의 주인공은 이미 정해졌다. 어쨌든 내가 주말에 무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아내는 이미 약속을 잡아두고 나에게 통보한다. 가끔은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도 많지만 그래도 함께 하는 것이 즐겁기도 하다.


세 번째로 아이는 중심이 될 확률이 높다. 아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해주고 싶고, 좋은 것을 보여주고, 재미난 곳에 데려가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한번 다시 생각해 본다. 과연 모든 것을 다 해주는 것이 우리가 아이를 위하는 일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라떼는 말이야. 아빠가 집에 오면 리모컨을 빼앗겼어."


그렇다. 나의 부모님 세대 때는 좀 더 아빠가 중심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 어린이 방송이라든지 아이 영상들을 24시간 볼 수 있다 보니 거실의 TV가 더 이상 아빠의 것이 아닌 아이에게 포커스가 맞춰진다.(아이의 것이 아닌 경우에는 엄마의 것이 되어버린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가 잠들어야 그제야 음소거로 TV를 켜서 본다. 부모님 댁에 가면 아빠가 TV를 본다. 아이가 보는 방송프로그램은 켜둔 적이 한 번도 없다. 처음엔 TV가 신기했지만 이제는 켜놔도 TV에 신경을 안 쓴다. 본인 놀거리를 찾아다닌다.

그냥 이런 경우도 있다고요.

아무튼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아이 중심인 집들은 뭐든 것들이 아이가 원하는 것이라든지 기분을 맞춰 준다든지 그런 경우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에선 우리 집은 아이 중심은 아니다.


네 번째로 언급한 각자의 부모님의 경우이다. 이 경우는 좀 드물지 않을까 싶다. 우선 우리는 따로 살다 보니 가족이지만 현재 우리 집에서의 부모님들은 제삼자가 아닐까 싶다. 만약 편찮아지셔서 우리 집에 들어오신다면 또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아니다.


다섯 번째, 우리 집 반려견 인삼이.

나는 인삼이만 생각하면 눈물이 흐를 정도는 아니지만, 그저 미안함 뿐이다.

좀 더 좋은 반려인을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좀 더 자유로운 견생으로 살아가지 않았을까.

좀 더 넓은 공간에서 호의호식하며 살아가지 않았을까.

우리 집은 그렇지 못한 집이라 매번 미안함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돈이다. 오늘날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 기초적인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이건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빠나 형은 나보고 돈욕심이 없다고 한다. 나도 동의했다. 그러던 중 보게 된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에서 저자는 얘기한다.

'돈 욕심 없다는 사람들은 당장 일을 그만둬야 한다.'

자극적인 말이고, 틀린 말 같기도 하다. 그런데 결국 이 말에 동의하기로 했다. 나는 돈욕심이 없다 할 수 있지만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 그 생계는 그저 밥만 해서 먹는 삶이 아닌 밥도 있고, 반찬도 여러 개 있어야 하는 것이다. 가끔은 시켜도 먹어야 한다.

죽지 않으려 먹는 삶이 아니라 행복을 위해,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나는 돈을 벌어야 한다.

이것이 돈 욕심이 있는 게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또한 아이가 원하는 것 좋아할 것들을 사주고, 경험시켜 주기 위해 나는 돈욕심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집의 중심이 돈이 되는 것은 내가 못 참겠다.

돈은 수단일 뿐이라 늘 다짐하고 너무 욕심내지 않기 위해 균형을 잡아야 한다.

돈돈돈 거리며 살고 싶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럴수록 돈욕심을 가져야 하는 현실을 부정해 본다.


결론적으로 우리 집은 돈과 아이 엄마, 나의 아내가 중심인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집안의 중심은 매번 바뀌는 것으로 하겠다.

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내가 중심일 때도 있고, 아내가 중심일 때도 있다. 또한 아이가 중심일 때도 있는 것이다.

웬만하면 아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있다. 아내가 아이와 함께 어디를 가고 싶다고 하면 보내주거나 같이 간다. 결국 아내가 원하는 것이 아이를 행복하게 해 준다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한 이것이 가정의 평화를 위하는 길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아내에게 의견을 제시하지만 아내가 반박한다면 그녀말이 다 맞다.

그것이 가정평화를 위해 내가 선택한 일이며, '나는 지금 행복하다'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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